어느 수인의 일상 보고
박 종 국
세상, 참 많이 변했습니다.
사람대접대과, 옷과, 식사까지, 그가 구속된 후 달라진 일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게 바로 쾡한 몰골이었습니다.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후 서울동부구치소로 향할 때 해묵은 체증이 싹내려갔습니다. 정말 시원했습니다. 이럴 때 축하떡과 축하주를 돌려야지요.
더이상 더 이상 그가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국민도, 그도 현실이 달라졌음을 실감했습니다.
감옥에 들어가는 순간, 그리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영어의 몸이란 사실을 깨닫는 순간, 십여년 오리발만 내밀고, 모르쇠만 일관했던 일련의 사건들을 새롭게 인식하는, 즉 현실을 인식하게 될 시점에 섰습니다.
한때 셀러리맨 신화를 썼고, 정치가로서 야망도 최고로 이끌었던 그였지만, 이제 구치소에서 선택할 옷은 '수의' 뿐입니다. 물론 영장 집행과 동시에 그간 이 전 대통령에게 제공되던 청와대 경호실의 경호는 중단됐습니다.
구치소에 도착한 그는 일반 구속 피의자와 똑같은 입소 절차를 밟았습니다. 그에게 적용되는 조처들은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과 시행령·시행규칙 및 관련 법무부 지침에 따라 이뤄집니다.
이제 그의 신분은 검찰 수사를 받는 형사 피의자입니다. 구속영장이 집행돼 교정시설에 수용된 ‘미결수용자’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수용자들은 교도관에게 이름·주민등록번호·주소 등 인적 사항을 확인받은 후 간단한 건강검진과 신체검사를 받습니다. 휴대한 소지품은 모두 영치합니다.
이후 몸을 씻고, 미결수에게 제공되는 수용자복(수의)으로 갈아입고, 왼쪽 가슴 부분에 수용자 번호를 달게 됩니다. 영화처럼 이름표를 받쳐 들고 키 측정자 옆에 서서 수용기록부 사진도 찍어야 합니다. 일명 ‘머그샷(mug shot)’입니다.
마지막으로 구치소 내 규율 등 생활 안내를 받은 뒤 의류·세면도구·침구·식기세트 등을 손에 들고 자신의 ‘감방’(수용거실)으로 향하면 입소 절차는 모두 종료됩니다.
그런데 서울동부구치소는 그가 전직 대통령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 독거실(독방)을 배정했다고 합니다. 특별난 예우입니다. 이 곳에는 박근혜 정부 ‘비선실세’ 최순실씨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수용됐습니다. 크게 축하드릴 일입니다.
그의 일상을 따라가볼까요. 그는 미결수 신분이라 암청회색의 춘추복을 지급 받았습니다. 다만, 최순실처럼 자비로 다른 색, 다른 디자인의 수의를 사입는 건 가능하다고 합니다. 또 조사에 참석하기 위해 외출할 때는 사복도 가능하답니다. 그런데 그는 일체 조사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니 누구처럼 예쁜 수의나 사복으로 갈아입을 기회가 없습니다.
그는 지난달 23일 새벽부터 '대통령님' 대신 '716번'으로 불리워졌습니다.
서울동부구치소는 "이 전 대통령이 모든 절차를 마치고 화장실을 포함해 13.07㎡(3.95평)의 12층 독거실(독방)에 수용됐다"며 "수용자번호(수인번호) 716번을 부여했다"고 알렸습니다.
구치소측은 전직 대통령 예우 등을 고려해 12층 해당 '라인'을 모두 비웠습니다. 동부구치소의 경우 운동시설도 매층마다 마련돼 그는 다른 수용자와 마주칠 일은 거의 없다고 전했습니다.
교도관들은 원칙적으로 수용자의 이름 대신 수인번호를 부릅니다. 이에 따라 그는 왼쪽가슴에 '716'번이 달린 남성용 미결수 춘추복을 입고 영어의 나날을 보내야합니다. 어째 잘 적응이 잘 안 될 겁니다.
그는 어떤 수의를 입을까요. 법무부령 제655호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일부 개정령 제1장제4조에 따라 수형자는 형 확정 여부에 따라 기결수와 미결수의 색깔(규격, 디자인)이 다릅니다.
기결수의 평상복은 동복과 춘추복이 동일하게 남자는 암청회색, 여자는 청록색이다. 하복은 남자는 밝은 하늘색, 여자는 아쿠아색입니다.
미결수의 경우 동복과 춘추복은 남자는 카키색, 여자는 연두색이고, 하복은 남자는 갈대색, 여자는 밝은 바다 녹색입니다. 미결수에 한해 교도소에서 지급하는 수의 대신 영치금으로 사제 수의를 구입해 입기도 합니다.
이제 수형자의 일상입니다. 우선 식사는 정해진 대로 해야 합니다. 첫 끼 아침식사는 모닝빵과 쨈, 두유, 양배추샐러드였고, 점심식사는 돼지고기김치찌개, 마늘쫑중멸치볶음, 조미김, 깍두기였으며, 저녁식사는 감자수제비국, 오징어젓갈무침, 어묵조림, 배추김치였다고 합니다. 근데 입맛이 없었던지 거의 손대지 않았다고 합니다. 끼니당 비용이 1400원 내외이니 오죽하겠습니까. 식판과 식기는 스스로 닦아 반납해야 합니다.
벌써 그가 구치소 입방한 지 여러 날 밤을 보냈습니다. 독방에 수감된 그는 다만, 이 독방에서 양변기와 세면대, TV, 매트리스 및 책상 겸 밥상을 사용합니다.
수감됐던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감옥에 들어가면 일단 세 번 눈물이 난다고 합니다. 신체 검사받을 때 옷을 전부 다 벗는데 비참함에 울고, 수의를 입을 때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박탈감에 울고, 밥 먹을 때 1식 3찬이 나오는데 입에 맞을 리가 없어 숟가락 물고 운답니다. 게다가 독방에 갇혀서 혼자 첫술을 뜰 때 서러움과 외로움에 감정이 복받친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힘든 건, 갇혔다는 두려움이 가장 공포스럽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회 저명인사가 들어오면 수인번호 대신 직함이나 이름을 불러주기도 하고, 보안과장이 가끔 불러서 차도 한 잔 주고 위로한다고 합니다. 그나마 특혜라면 특혜였지만, 이목이 집중된 전직 대통령이다 보니 이마저도 어렵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구치소에 들어가면 이제 모든 걸 다 혼자 해결해야 합니다. 설거지도 직접하고, 속옷도 독방에 쪼그리고 앉아서 수돗물에 비누로 빨래도 해야 합니다. 일어나서 누울 때까지 혼자 힘으로 모든 걸 다 해야 하는 수감생활 자체가 그의 입장에서는 대단한 곤혹입니다. 더 이상 뻔뻔함과 호의호식은 불가하겠지요.
구치소의 일상은 빤합니다. 6시에 일어나서 8시에 취침하고, 하루 3번 식사시간과 30분 운동시간을 빼면 독방에만 머뭅니다. 말동무가 없으니 그는 독방이라 TV 라디오를 듣거나 책 읽기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을 겁니다.
하루에 물 2ℓ를 주는데 아껴 마셔야 하고, 샤워는 일주일에 한 번밖에 못 합니다. 그래도 누군가 옥바라지라도 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입니다. 미결수는 변호인 접견에 제한이 없습니다. 그래서 특별접견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변호인들과 함께 하등의 소용없는 재판 전략을 짜는 데 주력할 겁니다.
고소를 금치 못할 일입니다.
분명 대한민국 민주주의, 정의가 바로 섰습니다. 혹여 그가 필요 이상의 예우를 받지 않을까 냉정하게 지켜보아야 합니다. 아직도 잘못없다고 분노를 삼키지 못했을 그라지만, 청송교도소 같은데 처해져야 제 잘못을 인식할 겁니다.
세상, 참 많이 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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