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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룽지 할머니

세상사는얘기/삶부추기는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8. 4. 3.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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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룽지 할머니


한 고등학교 남학생.
집이 멀었던 그는 학교 인근에서 자취했다.
자취하다 보니 라면으로 저녁을 해결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학교 앞 할머니 혼자 운영하는 식당에서
가끔은 밥은 사 먹기도 했다.

식당에 가면 항상 가마솥에 누룽지가 부글부글 끓었다.
할머니는 남학생이 올 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오늘도 밥을 태워 누룽지가 많네.
밥 먹고 누룽지도 실컷 퍼다 먹거래이.
이놈의 밥은 왜 이리도 잘 타누."

남학생은 돈을 아끼기 위해 친구와 밥 한 공기를 시켜놓고,
항상 누룽지 두 그릇 이상을 거뜬히 비웠다.
그런데 하루는 할머니가 연세가 많아서그런지,
거스름돈을 더 많이 주셨다.

남학생은 속으로 생각했다.
'돈도 없는데 잘 됐다.
이번 한 번만 그냥 눈감고 넘어가는 거야.
할머니는 나보다 돈이 많으니까.'

그렇게 한 번 두 번을 미루고,
할머니의 서툰 셈이 계속되자
남학생은 당연하다는 듯 주머니에 잔돈을 받아 넣게 되었다.
그러기를 몇 달, 어느 날 식당의 문은 잠겼다.
일주일이 지나도 할머니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조회시간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모두 눈 감아라. 학교 앞 할머니 식당에서 식사하고,
거스름돈 잘못 받은 사람 손들어라."

순간 그는 뜨끔했다.
그와 친구는 서로를 바라보다 부스스 손을 들었다.
"많기도 많다. 반이 훨씬 넘네."

그리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할머니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본인이 평생 모은 재산을 우리 학교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에 사용하면 좋겠다고 유언을 남기셨디."

잠시 목소리가 떨리시던 선생님은 다시 말씀을 이었다.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만난 지인분한테 들은 얘긴데,
거스름돈은 자취하거나 형편이 어려워 보이는
학생들에게 일부러 더 주셨다더라.
그리고 새벽부터 일어나 그날 끓일 누룽지를 위해
밥을 일부러 태우셨다는구나."

그는 그날 학교를 마치고 나오는데,
유난히 할머니 식당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굳게 닫힌 식당 앞에서 죄송하다며 엉엉 울고 말았다.

 

어린 학생들의 자존심을 지켜주면서
말없이 그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준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은 잔잔한 감동으로 전해진다.

어쩌면 할머니가 배고픈 학생들에게 내민 건
'누룽지' 한 그릇이 아니라 '희망'을 나누고자 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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