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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계산은 안 돼요

박종국에세이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8. 4. 16.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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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계산은 안 돼요

 

박 종 국

 

철호는 속상했습니다. 모처럼 엄마아빠랑 바깥나들이 나갔는데, 배를 쫄쫄 굺고 부아만 잔뜩 쌓인 채 돌아왔어요.

왜냐구요?카드 때문이에요. 신용카드.

벌써 석달째 월급을 타 오지 못한 아빠, 그래서 엄마는 돈 한 분 없이 카드로만 마트에 가고, 꼭 필요한 물건만 사요.

그런데 오늘은 가는 데마다 카드로 물건값 계산이 안 됐어요.

 

행사장은 핀 꽃보다 사람이 더 많았어요.

복작대는 둑방길을 따라 엄마아빠 손잡고 또박또박 걸었을 때 철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습니다.

널따란 유채밭에는 노란꽃이 무더기로 폈습니다.

올망졸망 터놓은 산책길을 따라가며 사진도 펑펑 찍었어요.

"여보, 인제 자주 바깥바람 쐬어요. 이렇게 밖에 나오니 얼마나 좋아요. 마냥 좋아서 폴짝폴짝 뛰는 철호를 봐요. 제 가슴이 확 열려요."

"그래요.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아요. 대체 언제까지 이럴련지 앞이 안 보이오. 그나마 잘 돌아가던 회사도 사정이 눈에 띠게 안 좋아요. 게다가 은행에서는 대출만기라며 원금 20%를 갚아야 대출 연기가 가능하다고 목줄을 죄네요. 생각할수록 참담해요."

"날마다 그 얘기예요. 전 시집 와서 그 많은 돈 구경도 못했고, 단 한 푼도 써보지 못했어요. 대체 세상을 어떻게 살았기에 이 날 이때까지 빚잔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거예요?날마다 전 그 놈의 빚 땜에 잠도 제대로 못잔다구요. 흑흑흑!"

 

철호는 엄마아빠가 빚 때문에 다투는 날은 간이 콩알만 해집니다. 그때마다 서로 엄마아빠가 철호를 나몰라라하고 곧장 헤어져 돌아서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오늘은 다행이었어요.

멀리 차를 타고 나왔기에 주차장에서 토라진 엄마아빠를 만났어요.

잔뜩 볼이 부은 엄마가 뒷자석에 턱하니 앉았어요.

순간 철호는 제자리에 쭈뼜섰습니다.

평소 같으면 엄마는 앞자리에 앉고, 뒷자리는 철호가 차지였습니다. 오래된 차라서 그렇지 뒷자석은 아빠가 특별히 만들어준 철호의 자그마한 왕국이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철호가 좋아하는 장난감도 인형도 한 가득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뒷자리에 앉은 엄마가 도무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아직 시동을 걸지 않아 차안이 찜통같을 텐데 말에요.

아니, 시동을 걸어봤자 에어콘이 안 되니까 마찬가지 일거예요. 차문도 잠기지 않는 차예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아빠는 대뜸 시동을 걸더니 창문을 쫙 내렸어요. 순간, 답답하게 갇혔던 바람이 훅하고 도망갔어요.

엄마 얼굴을 보니 잘 익은 토마토처럼 발그레했어요.

그래도 엄마는 행사장 조각품같이 굳은 표정이었어요.

 

한참을 머뭇대던 아빠가 철호의 손을 잡아 당겼어요.

아빠랑 함께 간 곳은 지글지글 맛난 꼬지를 구워내는 가게였어요.

"닭꼬지 하나 얼맙니까."

"3천원인데요."

"세 개만 싸주세요."

가게주인은 큼지막한 닭살을 촘촘하게 꽨 길다란 꼬지를 화덕에 얹졌어요. 잠시 후 양념을 발라 다시 한번 구워냈어요.

"자, 알맞게 잘 익었습니다. 9천원되겠습니다. 꼬마손님, 받으세요"

은박호일을 두른 닭꼬지는 노릿노릿하게 익어 냄새가 구수했습니다. 절호는 얼른 닭꼬지가 먹고 싶어 몇 번이나 꿀꺽 군침을 삼켰습니다.

그 말을 듣고 아빠가 휴대폰껍데기 지갑에서 카드를 꺼냈습니다.

"네, 9천원 계산해 주십시요."

"아니, 오늘 같은 날 카드로 계산하면 어떡합니다. 현금으로 주세요. 우리는 논 팔아 장사하는 거 아녜요. 단 일주일 임대료가 얼마나 비싼데요"

"......"

아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철호 손에 쥔 닭꼬지를 가게 아저씨한테 돌려주었어요.

"아니, 이거 장난합니까? 애써 가스불로 구워놨는데, 뮙니까? 안 사겠다는 겁니까, 씨팔! 사내가 왜 그렇게 쫀쫀해요! 단돈 만원도 없어요!"

한껏 화가 나서 괄괄대는 아저씨한테 아빠는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어요. 그 모습을 보고 철호는 왈칵 눈물이 났어요. 그렇게 좋아하던 닭꼬지도 싫어졌어요.

 

포장가게늘 벗어나 아빠랑 한참 거리를 두고 타박타박 걸었습니다.

축 쳐진 아빠의 어깨가 참 무거워보였습니다.

철호는 아빠가 가여웠습니다.

사실 아빠는 용돈이 없습니다.

월급을 타면 고스란히 은행이자 갚기 바쁘고, 할아버지할머니 병원비도 빠듯합니다.

더군다나 은행빚 장기연체로 신용불량자가 된 아빠는 누구나 갖고 다니는 신용카드 한 장 없습니다.

그나마 엄마카드로 필요할 때 요긴하게 사용하는데, 오늘 장터국수도 닭꼬지도 살 수 없었어요.

 

올해 네살배기 철호네는 팔순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삽니다. 두 분은 몸이 편찮으셔서 거동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간병인이었던 철호엄마가 직장을 그만두고 꼬박 매달려 병수발을 도맡아 합니다.

아빠도 11년에 걸친 할머니 병원치료로 빚을 많이 져 그걸 갚느라 밤낮이 없어요.

철호가 태어나기 전에는 큰아빠 고모네와도 친하게 지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산더미같이 늘어난 병원 빚 땜에 지금은 남보다 못하게 본 체 만 체 인연을 끊고 산대요.

더구나 그 빚을 고스란히 혼자 떠앉은 아빠로 인해 엄마는 늘 잠도 못자고 한숨만 푹푹 내쉬어요.

 

차 타러 가보니 엄마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낙타가 바늘 빠져나가듯 길이 밀렸어요.

차안 온통 후텁지근했습니다.

그래도 엄마아빠는 말 한마디 권네지 않았습니다

철호도 괜히 시무륵해져서 자는 체 눈을 감았습니다.

종일 굶어 빈 속이어서 그런지 자꾸만 꼬르륵 소리만 크게 들렸습니다.

 

얼마나 달렸을까요. 잠결에 철호는 꿈을 꿨어요.

엄마아빠랑 나란히 손잡고 엘리베이트를 타는 모습을.

엄마가 먼저 환하게 웃었습니다.

 

|박종국또바기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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