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생의 종교관
박 종 국
“선생님, 어느 교회에 나가시나요?”
“글쎄다. 그렇게 보이냐?”
“성당에 다니시죠?”
“…….”
“아니, 선생님은 교회도 가고, 성당도 가고, 절에도 가신다더라.”
“…….”
한 아이가 불쑥 물었다.
녀석, 연신 까만 눈망울 돌돌 굴리며 답변을 기다렸다.
“너는 어느 종교를 믿니?”
라고 되물었더니 다른 아이가 나서 얘기 꼬리를 물었다.
절에 간다는 아이, 교회에 다닌다는 아이, 성당에 나간다는 아이, 아무데도 나가지 않는다는 아이도 많았다.
어릴 때부터 신심을 돈독히 하면 좋다. 때 묻지 않은 마음으로 신앙을 가지면 좋은 심지를 가진 사람으로 거듭나게 한다.
어느 종교를 가져도 좋다. 그렇지만, 신앙생활이 하나의 틀 안에 갇혀버리게 되면 문제가 된다. 어느 종교든 그 종교의 제도나 형식에 노예가 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근데도 더러 교인 중에는 자기가 믿는 종교만을 절대적으로 내세운다. 그런 까닭에 눈살을 찌푸릴 때가 많다. 심지어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적대감까지 품는 맹신자도 만난다.
어제도 그랬다. 하굣길 교문 앞에 얼없는 종교인들이 봉고차를 대령해 놓고 가기 싫다는 아이들 윽박지르며 데려가려고 실랑이를 벌였다. 이즈음이면 차마 신앙 자체를 반목하게 한다. 판단력이 없는 아이들에게 사탕발림까지 하면서 모셔(?)간다. 이미 다른 교회 나가는 아이들까지 자기들 믿음 밭(?)으로 데리고 가겠다고 야단이다. 오직 자기가 믿는 종교만이 전부라고 여기는 듯.
성경에 진리가 불경의 진리다. 코란이나 탈무드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의 종교관은 갈망된 믿음이 확실할 때 저절로 이루어진다. 종교는 배워서 얻어지지 않는다. 부단한 실천과 수행이 아름다운 종교관을 돋우게 한다.
내가 믿는 종교 이외의 모든 종교를 배척한다거나 함부로 무시하는 태도는 신실한 종교인으로서 참다운 모습이 아니다.
무엇보다 순수한 아이들의 양심에 맹목적인 종교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일수록 교회도 가보고, 성당도 찾아보고, 절에도 다녀봐야 한다. 그래서 자기 의지로 종교를 믿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부모가 믿으니까. 집안 대대로 믿어왔으니까 당연히 믿어야 한다면 그것은 아이의 주체적인 품성을 짓밟는 일이다.
나는 무신론자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어떠한 종교관에 내세우지 않는다. 어떤 종교를 믿든 간에 아이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해서 아직까지 누구에게도 특정한 종교를 믿으라고 권유하거나 강요한 적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지인 중에는 교회 목사, 집사나 전도사는 물론, 신부님, 수녀님, 스님과 비구니스님도 두텁게 교유하고 지낸다. 또 집안사람들 대부분 절에 다니지만, 교회 장로를 맡은 분도 계신만큼 종교선택지가 자유롭다. 자신의 종교가 최고라면 남의 종교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아름다운 구도를 향해 수행자적 삶에 충실하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무엇보다 맹신적으로 자기 종교만을 강요하려 드는 삿된 종교는 경계해야 한다. 모든 종교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사랑과 자비가 아닌가?
일전에 산사를 찾았을 때 그곳에서 세 분의 수녀님을 만났다. 스님과 차를 나누며 담소하는 모습이 퍽 인상 깊었다. 아마 어느 날인가 스님께서도 답방하실 거다. 내침이 없는 구도자의 여유, 쌍생의 아름다운 종교관에 손 모았다.
오늘 같은 날, 특히, 순정하게 커가는 아이에게 어른이 먼저 아름다운 종교관을 드러내보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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