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민주노동당 정당 후원금 관련 정치자금법 위반 등 재판 최후 진술입니다.
최후 진술문
박 종 국(창녕동포초등학교 교사)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초등학교 교사로 30년 동안 근무하면서 단 한 번의 양심의 가책을 받을 일을 하지 않은 제가, 피고, 그것도 범법자의 신분으로 이렇게 법정에 선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때문에 최후진술문을 준비하면서 너무나 당혹스럽고 참혹해서 며칠을 불면의 밤으로 뒤척였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제 잇속을 좇아 남과 얼굴 붉힌 적이 없습니다. 세파에 내둘리지 않고 교사로서 본분을 지키고, 그 소임에 충실하며 살았습니다. 제겐 아이들이 희망이자 믿음입니다. 해마다 아이들을 만나면 친구를 위하고, 더불어 지내자고, 좋은 일 궂은일 함께 나누자고 애써 부추깁니다.
그런 제가 이 자리에 서서 최후 진술을 합니다. 다소 법리 형식에 맞지 않고 진술 내용이 서툴더라도 오직 평교사로 아이들과 살아온 제가 세상 문리에 해밝지 못함을 너그러이 이해하시고 경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말씀드리지만 저는 제 합리화에 그렇게 영악하지 못합니다.
저는 1983년 2월에 진주교대를 졸업하고 같은 해 거제도 학산국민학교(현재 초등학교)에 초임발령을 받았습니다. 첫 해 6학년을 맡았고, 이후 5년 동안 근무했습니다. 그 당시 남학생들은 거의 교대를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한창 경기가 좋은 때였으니 교사의 박봉으로는 생활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런 것 따지지 않고 초등학교 교사로서 떳떳하게 생활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생활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채 햇병아리 교사의 때깔을 벗기도 전에 저는 참으로 암울한 교육현실을 맛보아야했습니다. 그때 학교는 너무나 비민주적인 전횡이 자행되었습니다. 교장의 권한은 가히 권위적이며 무소불위였습니다.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고 전체 교사들이 보는 앞에서 교감마저 꿇어앉히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빈발했습니다. 그러니 교사들을 어떻게 다루었겠습니까? 잘못된 학교행정에 대해서 입 한번 뻥긋하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사회적으로 무서운 공안 정국이었습니다. 그 무렵 암울한 교육 현실을 직시한 선배 교사들이 전국교사협의회를 조직하여 교사 집단이 자기 목소리를 낼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교사들은 마음대로 단체를 결성할 권리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교사로서의 제 양심을 지키고자 전교조 결성에 주체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그 결과 온갖 핍박을 받고는 남해라는 섬으로 좌천되었습니다. 비록 가담 정도가 밋밋해서 해직의 굴레는 쓰지 못했지만 참담했습니다. 이후에도 전교조 교사라는 것 하나만으로 갖은 핍박과 폄하를 이겨내야 했습니다.
그곳인들 바람불지 않겠나
오인태
그곳인들 바람불지 않겠나
이 사람 내 친구 박 선생
가슴이 뜨겁고 달변이던 자네가
전교조 탈퇴서를 쓴 이후
말을 잃고 모임에도 보이질 않더니
결국 섬으로 들어갔다는 소문 들으며
젖어 오네 자네 외로움과 분노
발 담그고 있을 바닷가 파도로
어디 섬으로 숨을 사람 자네이겠나
조상 대대로 뿌리박고 살던 고향
그 씨나락 같은 고향 등지고
낯선 도회 공사판 사글세방으로 떠돌며
'선생자식' 기대 하나로 살아온
하늘같은 부모 뜻 차마 거역할 수 없어
끝내 눈물로 손도장을 찍으며
아이들 앞에서 퍽퍽 가슴을 쳤을 자네나
티 하나 없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선생 하나만 쳐다보고 있는 아이들
그 아이들 앞에 양심이라고 믿고 있는 것
차마 꺾을 수 없어 교문을 나서며
자네 부모와 똑같은 부모를 떠올리곤
가슴을 쳐야 했던 이 친구나
아니네 섬으로 숨어야 할 사람
이 땅 수천의 선생의 가슴에 못질한 사람
이 땅 수만의 부모의 가슴에 못질한 사람
이 땅 수십만의 아이들의 가슴에 못질한 사람
그런 사람이네 그런 사람 향해
자네 일어서 나오게
나와서 함께 가세
어디 그곳인들 바람불지 않겠나
더 큰 바람 더 큰 파도에
몸부림치고 있을
이 사람 내 친구 박 선생
- 오인태 시집『그곳인들 바람불지 않겠나』모두
오인태 시인은 저와 교대 동기동창으로 사는 형편이 비슷했습니다. 평생 농투성이로 살아 부모는 선생 자식 하나 두었다는 게 모든 희망이었는데, 친구는 해직교사로, 저는 비굴하게도 타인의 손에 옥죄어 탈퇴각서를 쓰고 섬으로 묻혀들었습니다. 이후 전교조 합법화를 위해 10년 여 거리에서, 명동성당으로, 연세대 성균관대 학생회관에서 새우잠을 잔 게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나날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참담한 시기에 우리 교사들은 전교조는 반드시 합법화된다는 일념으로 두터운 현실의 벽과 싸워냈습니다. 우리의 고통의 나날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전교조는 합법화되었습니다. 국민적 합의를 얻어내었지요. 그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을 거라고.
한데 지금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2012년 또다시 그런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정당에 가입한 것도 아니고 직접 정치 활동을 한 것도 아닌데, 열악한 군소 정당에 소소한 후원금을 냈다고 교사들이 검찰에 불려 다니고 재판까지 받습니다. 저를 비롯한 모든 후원금 계류 교사들은 범법자가 아닙니다. 재판장님!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실로 어이가 없고 이 땅의 민주주의 역사가 거꾸로 치달아가는 건 아닌지요?
현재 저는 창녕동포초등학교 6학년 1반 담임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면 머리가 굵어서 담임이 하는 말을 잘 헤아려듣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그럽니다. 자기보다 힘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지 말고 서로 돕고 생활하자고. 조그만 일 하나도 나누며 살자고. 30년 교직생활을 했어도 그다지 넉넉하게 사는 편이 아닙니다. 그러나 매달 월급을 받으면 먼저 아이들 몫으로 창작동화책을 사서 같이 읽고, 대안학교를 비롯하여 운영재정이 열악한 데 기부금을 냅니다. 많아야 1,2만원이지만 그들에게는 금쪽같은 힘이 된다고 합니다. 제가 정당 후원금도 그러한 맥락이었습니다.
그런데 현행 정치자금법이나 국가공무원법상 교사·공무원이 정당에 가입하거나 당비를 내는 게 실정법 위반이라고 단정합니다. 하지만 소액의 후원금을 낸 행위가 과연 기소 대상이 될 만큼 중대한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는 실로 의문입니다. 고작해야 ‘경고’ 정도로 넘어갈 사안에 검찰은 무자비한 법의 칼날을 휘두르는 현실입니다.
2009년부터 시작된 이 수사는 정권에게 비판적인 공무원노조와 전교조를 와해시킬 목적으로 기획된 정권과 검찰의 정치탄압이 명백합니다. 공공의 이익이 되는 사안들에 관한 평화적 시국선언을 빌미로 치졸한 탄압을 자행한 처사도 모자라, 또 다시 소액 정당후원금이라는 꼬투리를 잡고 전교조와 공무원노조에 대한 정치모략을 일삼습니다. 정치탄압에 혈안이 되어 수사 또한 불법ㆍ부당한 방법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별건수사라는 사회적 비난에도 아랑곳없이 마구잡이로 사무실을 압수수색했으며, 사건과 무관한 자료들을 광범위하게 빼앗아 가고 노조 간부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계좌추적, 핸드폰 추적, 이메일 압수수색 등 인권유린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검찰이 치졸한 법 해석을 앞세워 칼춤을 추는 의도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이번 기회에 눈엣가시와 같은 전교조와 전공노 등을 손보고, 진보정당의 숨통을 조이겠다는 논리가 빤합니다.
결국 검찰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확립이라는 미명 아래 스스로 정치에 개입했습니다. 검찰의 기소 결정은 형평성 차원에서도 어긋납니다. 검찰은 지난해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에게 후원금을 낸 교사들은 무혐의 처분했습니다. ‘정당 후원금은 불법, 국회의원 후원금은 합법’이라는 기괴한 논리가 만들어진 셈입니다.
하지만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한나라당 관련은 무죄, 진보정당 관련은 유죄’가 검찰이 정한 불변의 법칙입니다. 게다가 검찰의 이번 수사는 2009년 시국선언 사건 때 전교조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면서 몽땅 가져간 컴퓨터 서버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시작된 사안으로 수사 자체가 편법이었습니다.
교사와 공무원의 정치참여를 금지한 현행법이 지나친 기본권 제약이라는 사실은 전문가들 사이에 이미 정설로 굳어졌습니다. 특히 정당 가입 자체를 형벌의 대상으로 삼는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우리가 유일합니다. 검찰은 정당성 자체도 인정받지 못하는 치졸한 민주노동당 후원금 수사를 당장 중단하여야 합니다.
더욱이 2011년 12월 9일 인천지법 행정1부(최은배 판사)가 판결문을 통해 선고 취지를 밝혔듯이, 재판부는 8일 민주노동당에 불법 후원금을 냈다는 이유로 해임 또는 정직 처분을 받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소속 교사 7명이 나근형 인천시교육감을 상대로 낸 징계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습니다.
이 판결은 전국에서 진행 중인 민주노동당 후원 교사 관련 징계 처분 취소 소송 가운데 첫 번째였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공무원에게 요구하는 정치적 중립성은 공무원이 정치적 신념을 가지거나 의사를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게 아니다"고 전제하고서, "시민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정치적 기본권 행사인 정당 후원금 납부로 직무상 어떤 위험이 초래됐다고 단정할 수 없고, 이 때문에 징계가 이뤄지는 건 헌법이 정한 사상과 양심의 자유,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이른바 정부 반대 세력을 형성하는 정당에 대한 후원금 납부를 두고 이뤄지는 징계는 정권 반대자에 대한 탄압으로 비쳐 시민의 정치적 자유에 대한 침해로 오인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징계는 신중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국가공무원법상 정치 운동 금지 조항을 위반했다는 징계 사유에 대해서는 "특정 정당에 금전을 기부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정당을 지지한다고 볼 수 없어 위법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재판부는 또 "원고들에게 징계사유가 일부 기인하더라도 공개적으로 소액을 기부한 데 불과하고, 형사재판에서 가벼운 벌금형을 선고받았을 뿐"이라며, "한나라당에 정치자금을 기부한 교장 등에 대해 징계 절차가 개시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할 때, 이 사건 처분은 비례의 원칙과 평등의 원칙을 위반해 징계 재량이 남용됐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지난해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에게 수백만 원의 후원금을 낸 교사들은 무혐의 처리해 편파적인 법적용 논란이 제기됐었습니다. 검찰은 교사, 공무원이더라도 의원 개인 후원회에 후원금을 내는 게 합법적이라고 판단했는데, 교육과학기술부는 교사들이 특정 정치인에게 후원금을 기부도 국가공무원법 위반이라는 입장입니다. 교육과학기술부 해석은 법제처 법령해석에 근거합니다. 이것에 대해서 재판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검찰부터가 썩을 대로 썩은 나라에서 국격을 논하고, 공정을 논하는 게 어불성설입니다. 그 어떤 선진국이 만 원의 정치후원금을 범죄시하고 이토록 집요하게 탄압한단 말입니까. 심지어 소액 후원을 이유로 해고를 일삼아 노동자에게 삶의 유일한 기반마저 빼앗으니, 정권의 뻔뻔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울러 이러한 검찰의 정치탄압이 가능한 게 교사ㆍ공무원의 정치활동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악법 때문입니다. 선진 OECD 가입국으로서 교사ㆍ공무원에 대한 정치탄압은 대한민국의 부끄럽고, 후진적인 자화상입니다.
결국, 검찰은 민주노동당과 한나라당에 후원한 교사들에게 다른 잣대를 적용하며 한나라당만 봐줬습니다. 민주노동당 등 야당과 전교조, 공무원노조 등은 현행법을 개정해 교사나 공무원의 정치활동도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따라서 검찰은 교사들의 정치후원금 제공과 관련해 명명한 판단기준을 갖거나, 교사들의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에 대한 후원금은 불법이어도 봐주고,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에 대한 후원금만 처벌하는 이중 잣대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표명해야 합니다.
재판장님! 문제의 근원은 대학 교수와 달리 교사의 "일체의 정치활동 금지"를 규정하는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제3조와, 공무원의 정당 가입을 금지하고, 또한 "선거에서 특정 정당 또는 특정인을 지지 또는 반대하기 위한 정치운동의 금지"를 규정한 국가공무원법 제65조입니다. 2004년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제약은 "우리나라의 정치적 현실과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교원의 활동이 미성숙한 학생들의 가치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주므로 교육자로서의 특별한 처신이 요구되고, 피교육자인 학생들의 기본권 또는 학부모들의 자녀에 대한 교육권과의 갈등을 예방하기 위해 부득이하고 필요한 조치"라고 판단하면서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헌법재판소의 우려는 일말 이해가 갑니다. 교사가 교단에서 수업 내용과 무관하게 특정 정당을 홍보하는 일, 선거 시기 교내에서 특정 정당 후보를 위한 선거운동을 벌이는 일, 자신의 정치활동을 위하여 학생을 동원하는 일, 근무시간 중에 정당 활동을 하는 일 등은 금지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교사가 정당에 가입하고 정치활동을 하는 행위 일체를 금지하는 건 과도한 기본권 제약이며, 위헌의 소지가 강합니다. 교사는 교사이기 이전에 정치적 기본권의 주체라는 점이 망각되어선 안 됩니다.
헌법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헌법 제31조 제4항)을 규정하며, 교육기본법은 "교육이 정치적·파당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교육기본법 제6조)되어서는 안 됨을 선언하였습니다.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교육의 정치적 중립'은 '교사의 정치적 중립'이 아닙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교사는 그 자신이 먼저 '능동적 시민'이어야 하고, 또한 학생을 '능동적 시민'이 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정치활동은 '능동적 시민'의 미덕입니다. 물론 교사가 자신의 정치적 견해에 따라 교육 내용을 왜곡하고 자신의 견해를 학생에게 강요하는 건 금지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다른 제도적 조치로 해결되어야 하며, 교사의 정치활동 자체를 금지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건 민주주의에 반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을 판단력이 미숙한 존재로만 보는 주장은 경직되고 획일화된 교육을 받고, 정보부재의 환경에서 성장한 자신들의 과거경험만을 기억하는 건 기성세대의 낡은 시각에서 오는 편견에 불과합니다. 교사가 교실 바깥에서 표명한 정치적 의견을 학생이 접하였다고 해서 학생이 이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한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도 경험적으로 입증되기 어렵습니다. 또한 교사가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의사표현을 하였다는 이유로 형사 처벌받는다면 학생들은 민주주의의 의미에 대하여 회의하게 되는 바, 교사들의 정당 후원금을 형사 처벌하는 건 오히려 반교육적입니다.
사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부분이 교사의 정당 가입과 정치자금 모금을 허용합니다. 이에 더하여 독일에서는 '정치교육'이 교육의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되기에 교사는 선거기간에 학생들과 수업시간에 후보자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으며, 프랑스의 교사는 한국의 교수처럼 정계 진출 시 휴직·복직이 허용됩니다. 덴마크 스웨덴 네덜란드 핀란드 등에서는 교사의 정치 활동을 제약하는 법률 자체가 없습니다. OECD 나라의 국회의원 중 상당수가 교사 출신이며, 이들은 임기를 마치고 교직으로 복귀합니다.
1966년 국제연합(UN)에서 정한 '교사의 지위에 관한 권고'와 1997년 유네스코(UNESCO)에서 제정한 '(고등)교육 종사자의 지위에 관한 권고'는 "교사 역시 모든 시민이 누리는 권리를 자유롭게 누려야 하고, 이러한 권리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그 어떠한 부당한 처벌을 받아서는 안 된다"라고 밝혔습니다.
요컨대, 교사의 정치참여 문제에 대한 국제 표준은 원칙적 허용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교사의 정당 가입과 정치활동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법규는 전교조를 표적으로 삼았습니다. 한나라당과 뉴라이트 단체 등에 후원금을 제공했거나 직함을 가지며 정치활동을 한 교장이나 교사에 대해서는 징계도 수사도 전혀 이루어지지도 않았습니다.
예컨대, 2006년 '뉴라이트교사연합'을 창립한 체육교사 두영택씨는 2007년 이명박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국민승리연합'의 직능조직 본부장을 맡았고, 2008년 현직 교사의 신분으로 한나라당 비례대표에 공천 신청을 했지만, 아무 제재가 없었습니다. 이군현 한나라당 의원은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직전인 현직 교장 3명으로부터 총 1,120만원의 후원금을 받았음이 확인되었고, 사립학교법 개정 당시 한국사학법인연합회 소속 교장들은 한나라당을 위하여 조직적으로 후원금을 모았음이 확인되었으나, 이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습니다. 교사의 정치활동 금지 법규가 편파적으로 적용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과거 교사들의 노동조합 결성 당시 추진 교사들은 "교사가 무슨 노동자냐"라는 맹비난을 받으며, 해직과 투옥 등 고초를 겪었습니다. 교원노조는 합법화되었지만, 여전히 교사의 정치활동은 원천 봉쇄되었습니다. 교사의 정치활동이 교사로서의 직무를 방해하는 건 막아야 하겠지만, 그러한 직무방해를 염려해서 정치활동 자체를 금지하는 건 온당하지 못합니다.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면 부작용이 생기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표현의 자유 자체를 금지할 수 없습니다.
제 짧은 소견으로 정치자금이나 정치후원금은 정치인 ․ 정당 또는 그 밖의 정치단체가 정치적인 활동을 함에 필요한 재원을 뜻하는 바, ‘정치활동을 위해 소요되는 경비’라고 정의됩니다. 현행 정치자금법에서 허용되는 정치자금으로는, 당원의 당비, 후원금(후원회 회원의 후원금, 후원회 회원이 아닌 자의 후원금), 선거관리위원회에의 기탁금, 국가의 국고보조금 등입니다. 예에서 보듯 교사들이 낸 정당 후원금은 ‘후원회 회원이 아닌 자의 후원금’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교사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거론할 때마다 항상 인용는 게 헌법 제7조②항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와 제31조 ④항 ‘교육의 자주성 ․ 전문성 ․ 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라는 조항입니다. 저는 이 헌법 조항을 아무리 뜯어보아도 교육의 중립성과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은 의무가 아닌 권리 조항이라고 해석됩니다. 단지 정당에 후원금을 냈다는 이유로 교사를 법정에 세우는 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정치적 탄압이라고 여겨지는 까닭도 여기에 준거합니다.
정말 이 땅의 양심 있는 교사라면 근무 중에 자신의 직무와 관계없는 정치 활동을 하지 않습니다. 만약 당파적 이유로 국가 정책에 충실하지 않고, 공정하지 않다면 당연히 제한받아야하고, 처벌받는 게 마땅합니다. 그러나 직무를 파하고 사회인으로 귀속되는 시점에서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입장을 밝히거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교사들은 정치활동과 마찬가지로 종교 활동에도 중립성을 가져야합니다. 그런데 교사가 종교를 가졌다고 학생들에게 특정 종교를 심어줄 우려 때문에 교사의 종교 생활을 금지하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맥을 같이 하면 교사의 정치 기본권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교적 중립 의무는 교사나 공무원도 사적인 종교 활동은 자유롭게 보장되듯이, 공적 영역이 아닌 사적 영역에서의 정치 활동을 허용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국가공무원법이나 정당법 및 정치자금법은 공무원 및 교사에 대하여 정치적 기본권을 포괄적으로 부정합니다. 그런 논리라면 교사는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할 수 없습니다. 교육공무원법에도 종교 행위를 하거나 종교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가져야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교단에서 자기 종교를 선교하거나 종교적 행위를 하면 처벌을 받습니다. 그러나 종교를 가졌다는 이유로 처벌되지도 않고, 교회에 헌금을 하는 행위 또한 처벌 받지 않습니다.
저는 소시민으로, 평교사로 살면서 매달 월급에서 자동이체 되어 나가는 후원단체가 많습니다. 더욱이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그것도 최소한의 액수로 이루어진 후원금일 따름입니다. 민주노동당 후원금은 제 소득을 이웃과 사회에 나누는 소박한 일이었습니다. 근데 어떻게 그것이 교사의 직분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정치 행위가 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공무원 및 교사 신분이라는 이유만으로 민주주의의 이방인으로, ‘정치적 한정치산자’로 취급하여 민주시민권을 박탈하는 건지요? 저는 다양한 정치적 의견과 정당 활동이 이 나라의 정치를 발전시킨다고 확신합니다. 그 당시 저는 막 시작한 약소 정당,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하겠다는 기치로 깃발을 든 정당에 참으로 작은 힘을 보탠 게 제 후원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80년대를 30년이나 지난 지금 이런 사유로 법정에 세웠다는 데 저는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더군다나 한때는 세금 공제까지 받으며 권장되었던 정치 후원금이 어느 날 갑자기 위법이 된다니 아연실색할 따름입니다. 그럼에도 후원금을 중단하지 못한 건 저의 불찰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법령이 과거에 회귀한다고 해도 실제적인 실행에 이렇게까지 후진적인 탄압으로 이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단지 저 혼자만의 안일함이었을까요? 이 나라 민주주의를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이들 앞에 서는 교사라는 직업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가 자신감이라는 걸 교사 생활을 하면서 늘 되짚어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존경하고 좋아하는 선생님은 바로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으로 가르치는 선생님입니다. 교사의 자신감은 부단한 지식연마에서도 나오고 가르치는 기술에서도 나옵니다. 그렇지만 제가 아이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는 사람이라는 건 지적인 양심과 ‘나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한다.’라는 삶의 태도와 소신에서 발현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매달 만 원씩 후원해 온 민주노동당 후원금은 저의 일관된 삶의 빛깔과 교육적 소신에 결코 어긋난 일이 아니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30년 동안 교단에 선 교육자로서 저는 아이들을 정치적 편견에 사로잡히게 하는 일을 일체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정치적 중립의 의무를 저해하는 행위를 한 적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정당 후원금으로 인하여 공무원으로서 범법행위를 하였다면 그것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참여하는 정치를 가르쳐야 하는 교사로서 실천하고자 하는 양심으로 하였던 소박한 기부였고 후원이었습니다. 부디 그 순수한 의도를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내일 학교에 가면 우리 반 아이들에게 반드시 저의 오늘 재판을 이야기 할 겁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교사로서 이 땅의 약자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하였던 작은 행위마저 법으로 재단당하고 처벌받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했던 떳떳한 교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무엇보다 큰 가르침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충심으로 우리 아이들이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주눅 들지 않고, 사회 구성원들과 함께하면서 자기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고 살아가도록 가르치고 싶습니다.
긴 진술문을 끝까지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최후 진술을 마치겠습니다.
2012년 4월 24일
박 종 국
/ 이 진술문을 작성하는데 다음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1. 전국국어교사모임, 어린이와 함께 여는 국어교육, 2012, 봄호, p100-104.
2. 대법원 판결문, 인천, 제주, 창원, 충북지방법원 판결문 참조.
3. 전교조, 공무원노조 시국선언, 정당 후원금 관련 자료, 신문인쇄매체, 인터넷 웹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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