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사람
눈물 흘려본 사람은 남이 흘리는 눈물 닦아줄 줄도 안다.
시장에 강아지 몇 마리를 가지고 나와 앉았는데, 한 사내아이가 다가와 강아지를 사겠다고 했다.
그 아이는 강아지값을 물어보고, 제가 가진 돈과 견주어보기도 하고, 여러 마리를 사도 되느냐고 물어보기도 그러다가 그중 한 마리를 사겠다고 했다.
그 아이가 사겠다고 한 강아지는 다리 하나를 못 쓰는 강아지였다.
강아지 주인은 그 아이에게 되물었다.
"이 강아지는 한쪽 다리를 쓰지 못하니 이왕이면 다른 강아지를 사는 게 어떻겠느냐?"
그러나 그 아이는 굳이 마다하며 한쪽 다리를 못 쓰는 강아지를
사겠다고 말했다.
강아지 주인은 할 수 없이 한쪽 다리가 불구인 강아지를 그 아이에게 팔았다.
"아주 좋아라!"
하며 강아지를 품에 안고 일어서서 걸어가는 아이를 바라보다가 강아지 주인은 가슴이 찡한는 장면을 발견했다.
그 아이 역시 한쪽 다리가 온전치 못했다.
한쪽 다리가 불구인 강아지를 안고 다리를 절며 걸어가는 한 소년의 모습이 오랫동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소년은 왜 불구인 강아지를 굳이 사려고 했을까? 동정심 때문이었을까? 가엾어 보여서였을까? 동병상련의 마음 때문이었을까?'
그중 어느 하나일 수도, 전부 그런 마음이기도 하리라.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도 그 강아지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의 마음이
컸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쪽 다리를 쓰지 못하는 강아지의 처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그것이 얼마나 불편하며, 어떤 도움이 필요한 지, 그러나 서로를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얼마나 기쁘게 살아가는지, 그런 걸 소년은 알았을 거다.
그렇게 이해해주고, 편하게 지내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편견에 시달려야 하는지 소년은 알리라.
잘못된 선입관이 다리 한쪽이 불편보다 훨씬 더 견디기 힘들다는 걸
소년은 충분히 알았으리라.
다른 사람에게 팔려갔으면 천덕꾸러기였을 강아지는, 그 소년을 만남으로 해서 얼마나 행복했을까?
연민이나 값싼 동정이 아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이해와 사랑 그런 게 소년과 강아지 사이에 오갔으리라.
더할 수 없이 귀한 만남으로, 더할 수 없이 따스한 마음이 둘 사이에 오고갔으리라.
남을 도울 줄 아는 사람은 인생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다. 남에게 베풀 줄 아는 사람은, 고생을 알고, 가난을 알고, 삶의 고통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다.
자기의 아픔 때문에 눈물 흘려본 사람은, 남이 흘리는 눈물을 닦아줄 줄도 안다.
많이 알고 많이 가진 사람이 큰 사람이 아니다.
내가 겪었던 고통으로 남이 겪는 고통을 아는 사람, 내가 아파보았기 때문에 남의 아픔을 나누어 가지려는 사람이 큰 사람이다.
-도종환 산문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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