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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시지탄

박종국에세이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9. 2. 21.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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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시지탄

 

학년말, 졸업식과 종업식, 그리고 봄방학 했다. 그렇지만 학교는 2월 한 달이 여느 때보다 바쁘다. 한 해 마무리에다 전출전입 선생님 배웅과 맞으랴, 새내기들 챙기려니 이월 끝자락이 짧기만 하다. 게다가 오라는데 많아 연일 밤공기 이슥해지도록 발발거리고 다닌다. 그렇다고 일체 술 담배 입에 대지 않으니 긴긴 자리가 바늘방석 같다.

 

이런 고충을 익히 아는 후배는 은근슬쩍 자리 박차고 가라고 은근 꼬드긴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 교감의 위치 때문이 아니라, 예전에 내가 범접해 놓은 처사 때문이다. 그저 맹물만 홀짝이려니 속으로 부아가 쳐댔다. 하지만 어쩌랴. 애써 자리 파하자는 말이 쉽지 않다. 근데도 불행 중 다행은 하나, 한층 더 엄격해진 음주단속 땜에 그나마 체면 구기지 않고 자리를 뜰 때가 많다.

 

어제도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니 자정 무렵이었다. 그렇다고 그 시간까지 미련하게 보내는 건 아니다. 자리 하다 보니 잡동사니 얘기가 꼬리 물었던 탓이다. 그만큼 우리의 대화 자리는 아직도 쉽게 떨지 못한다. 사내들 네댓만 모이면 동기동문회가 만들어지고, 호형호재가 먼저다. 그러니 자연 궁둥이가 무거워진다. 한데도 기를 쓰고 함께 얼굴 맞대는 걸 보면 남자란 동물(?)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세상 그 어떤 여성이 객기를 부려도 결코 감다하지 못하는 일 아닐까?

 

초중고대학, 하고 많은 동기들 많으나, 고교동창들은 그 어울림이 사뭇 다르다. 뭔가 진액이 다르고, 점액질 또한 끈끈하다. 올해, 신임 동기회장님의 요청에 못 이겨 총무를 맡았다. 이미 동기회장을 연임하고, 졸업30주년추진위원장으로 소임을 다했다. 그런데도 막무가내로 그 역할을 엉겨 메치니 마다한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2년 동안 동기회 규합하는데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당장에 호응이 컸다.

 

첫 월례회, 열화 같은 동기애를 실감했다. 평일 수요일, 바쁜 때라 선뜻 짬 내기 어려워도 창원마산은 물론, 서울과 인천, 울산, 진주에서 한달음으로 달려와 주었다. 참으로 도타운 점액질이었다. 더구나 통영에서 잘려온 친구는 발목을 깁스한 체 목발을 짚고 왔다. 정말이지 가슴 깊숙이 뜨거운 불덩이가 한가득 일었다. 그랬다. 6백여 동기들 한데 모이기 어려워도 마음만은 늘 하나라고. 이만하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랴.

 

오늘도 후배가 한 자리를 요청한다. 그이는 현재 내가 금주금연 상태인지 모른다. 해서 전화 받자마자 숨넘어가듯 단정지어버렸다. 생면부지의 김해, 반갑게 챙겨주어 고맙기 한량없지만, 출퇴근하는 입장에서는 여간한 고역이 아니다. 모임 자리 일찍 파해도 집에 도착하면 어김없이 자정에 임박한다. 때문에 아무리 맘 좋은 아내라도 반김이 냉랭하다. 더더구나 최근 감기몸살로 곤죽이 되었는데, 멀찍이 벗어나 나대니 좋게 보일 리 만무하다.

 

오늘도 일찍 귀가하려했으나, 결국 여덟시 넘어서야 퇴근길이다. 처리해야 할 일 많고, 챙겨야 할 게 한둘 아니다. 요즘 같으면 몸이 서너 개이거나, 유체이탈이라도 했으면 싶다. 그래도 정신이 말짱한 걸 보면 스스로 가상타. 아직 지난해 유월 중병치레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않았는데, 겉만 멀쩡한데. 만시지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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