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손녀사랑
유난히 추운 겨울날, 하루 종일 감기몸살로 열이 펄펄 끓던 언니가 기어이 자리에 눕고 말았다.
할머니와 엄마는 끙끙 앓는 언니의 이마에 찬 수건을 연신 갈아붙이며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밤이 깊어지면서 언니는 조금씩 정신을 차리는 듯했다.
엄마는 하루 내내 하나도 먹지 못한 언니한테 먹고 싶은 걸 말하라고 했다.
그러자 언니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초코우유가 먹고 싶어'라고 했다. 하지만 가게는 읍내까지 십리 떨어진 먼 길이었다.
버스도 끊긴 지 오래여서 읍내까지 나갈 일은 꿈도 못 꾼 채 식구들은 초코우유 대신 꿀차를 먹이고는 잠을 자게 했다.
그때 할머니가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셨다.
"아이고, 와 이리 밤이 기노? 변소 좀 갔다 올란다."
그렇게 자리를 뜬 할머니는 몇 시간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으셨다.
화장실에도 없고, 혹시 어디에 쓰러지기라도 하셨나 걱정이 되어 집안 구석구석을 다 뒤지고 동네 앞까지 나가 보았지만 헛일이었다.
그렇게 온 식구가 집 밖에서 초조하게 할머니를 기다렸을 때, 저만치 어둠 속에서 희끄무레한 물체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할머니였다. 우르르 달려간 우리는 오들오들 떠는 할머니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다그쳤다.
그러자 할머니는 가슴께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셨다.
그것은 놀랍게도 초코우유였다.
"돈이 없어 하나밖에 못 샀다. 이름 까먹을까 봐 계속 외면서 갔다아이가."
얼른 받아든 초코우유는 할머니의 품안에서 따듯하게 데워졌다.
숙연한 마음으로 할머니 뒤를 줄줄이 따라가는 우리 가족의 머리 위로 또랑또랑한 별빛이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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