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맥 총각
숙(菽)은 콩이요, 맥(麥)은 보리다. 이것은 불능변숙맥(不能辨菽麥)이라는 다섯 자를 줄인 말이다. 쑥맥은 콩과 보리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사리분별도 못하는 어리석고 못난 놈을 쑥맥(菽麥)이라 한다.
천석꾼 부자 최첨지는 놀부 뺨치는 수전노에다 머리 굴리는 게 바퀴 같아 그 집에서 머슴을 살다가, 울지 않고 나가는 사람이 없더라! 이번에는 주인의 구두쇠 용병술에 견디지 못한 머슴이 가을 추수도 마치기 전에 훌쩍 떠나버렸다.
초겨울 찬바람은 불어오는데 머슴은 나가버리고 할 일은 태산인데 첨지의 악명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백방으로 찾아봐도 머슴 구할 방도가 없더라.
머슴 구한다는 소문을 듣고 어깨가 떡 벌어진 총각이 찾아왔다. 첨지는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총각의 손을 붙잡고 윗목 상전자리에 모셨다. 자세히 보니 총각은 들창코에 사팔뜨기였다. 거기에다 두뇌회전이 태엽 감은 유성기다. 그러니 첨지의 잔머리는 재빠르게 돌아갔다.
추수만 하고 나면 긴긴 겨울 동안 머슴 녀석, 할 일 없이 빈둥거리며 밥만 축낼 터, “여보게 우리 집 추수만 좀 해주게. 넉넉잡아 한 달이면 족할 게야!”
사팔뜨기 쑥맥 총각이 눈만 껌벅거리는데, 마음이 급한 첨지가 물었다. “한 달 새경을 얼마나 주면 될까?”
바보처럼 히히 웃던 총각이,
"나리! 일한 그날 저녁에 주시지요."
“그게 무슨 소린가? 새경을 매일 저녁에 달라니?”
쑥맥 총각은 히죽 웃더니, 첫날은 콩 한 알만 주시구요, 둘째 날은 콩 두 알, 그 다음날은 전날의 두 배인 네 알, 이렇게요. 참 쉽죠!"
첨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 녀석 좀 부족한 게 아니라. 많이 모자라는 쑥맥이로구나.’
겉으로 태연한 척
“그렇게 하세.” 해놓고 혹시 중간에 나자빠질 새라, 지필묵을 대령하라 해서 약정서 두 장을 자세히 썼다. 각자 손도장을 찍고 증인으로 마누라까지 세웠다, 빼도 박도 못하게 하여 한 장씩 나눠가졌다.
그리고 “총각! 앞으로 이름을 무어라고 부를까?” 대답 하나 시원하게 한다.
"우리 할매가 그러는디 쑥은 찰져서 요기가 되고 보리는 금방 방귀로 나오니 이 둘을 합해 놓으면 밥이 되니라!"
하셨습니다.
“오 그래! 그렇게 깊은 뜻이! 나도 쑥맥이라고 부를까 했는데 거 참 잘 되었네!.”
저녁을 물리고 문간방에 퍼질러 자빠진 머슴에게, 첨지는 그까짓 꺼! 하며, 콩 한 알을 던져주었다. 이튿날도 총각은 새벽같이 일어나 황소처럼 일했다.
첨지가 콩 두 알을 주자 쑥맥은 고맙다고 두 손으로 받으니 첨지는 속으로 희희낙락했지만, 그때마다 짐짓 표정 관리하느라고 애를 썼다.
11일째 되는 날 밤이었다.
“나리, 어제 새경이 콩 512알이었습니다요. 오늘은 1,024알입니다. 한 홉이 넘는데 한 홉으로 치고, 내일은 두 홉이 됩니다. 그러니 18일째 되는 날은 한 말 두되 여덟 홉이니, 요량해서 주시지요."
숙맥이 자루 가득 콩을 받아가자 첨지는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낌새를 직감적으로 느꼈다. 호롱불 밑에서 곰곰이 계산하다가.
“굼벵이 인줄 알았더니, 나는 놈이었구나”
하며 화들짝 놀랐다.
이럴 수가! 백주에 귀신에 홀렸다. 28일째는 콩이 256가마, 29일째는 512가마, 30일째는 1,024가마! 콩 대신 나락으로 주다보니 곡간은 비고 집안이 거덜이 났다.
“아이고 어리숙한 쑥맥한테 된통 당했구나.”
첨지는 어리숙한 머슴 놈에게 사기를 당했다며 펄펄 뛰면서 약정서를 빡빡 찢어버렸다. 그래도 쑥맥은 눈만 껌벅거리며 쓰다 달다 말이 없이. 이튿날도 일찍 일어나 황소처럼 일했다.
그리고 한 달 만에 추수를 끝내고 벼 가마니와 콩을 수레에 바리바리 실고 의기양양하게 대문을 박차고 나섰다.
사기를 당했다고 첨지는 고을 원에게 고했다.
얼마 후에 첨지는 사또의 호출을 받고 동헌에 다다르자 동헌 마당에는 쑥맥 총각이 기다렸다.
첨지는 사또에게 어리석은 쑥맥이라는 놈에게 여차저차 사기를 당했다고 고변을 했다.
그러자 사또는
“이방은 듣거라! 멀쩡한 놈이 2에 24를 곱하면 46이라고 대답하는 어리석은 놈에게, 당한 죄가 더 큰 법이다. 그러니 첨지에게 곤장 10대를 치렸다!”
첨지는
"소인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억울합니다."
하고 우기다가 곤장을 10대를 더 맞았다.
"첨지는 듣거라! 전부터 네놈이 구두쇠라는 걸 익히 안다. 모든 화가 네놈의 탐욕이서 나왔다. 나쁜 버릇을 고치는 방법은 네 재산을 몰수하는 일뿐이다. 어떻게 할 텐가?"
어느 안전이라고, 그래서 하는 수 없어 첨지는 관아에 구렁이 알 같은 문전옥답 열 마지기를 바치고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기도는 짧게 하라 (0) | 2019.09.10 |
---|---|
이런 사람과 만나라 (0) | 2019.08.31 |
백만 달러 (0) | 2019.08.29 |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가지 말들 (0) | 2019.08.24 |
혼자 살 수 없는 나무 (0) | 2019.0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