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영산도의 밥상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9. 11. 7. 14:14

본문

728x90

영산도의 밥상  


쾌속선으로 흑산도까지 달려 다시 배를 갈아타고 10여 분을 더 가야 닿는

작은 섬 영산도. 한때 80여 가구가 살았지으나, 이제는 20여 가구만 남았다.  게다가 초등학생 둘에 선생님 한 분. 폐교가 되지 않는 게 신기하다.

  

몇 년 전, 국립공원 지역 마을을 대상으로 한 '명품 마을'에 선정되어 주민들이 섬 가꾸기에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다행인지 예약하지 않으면 주말에 숙박하기 어렵다. 더 놀라운 변화는 마을 특산품인 미역, 톳, 홍합을 사겠다고 뭍사람들이 채취도 하기 전에 돈을 보내온다. 무인도가 될까 봐 걱정했는데 이런 사랑을 받을 줄이야.


미역을 팔러 가는 아주머니 몇 분이 광주 어느 시장에 갔을 때였다. 3000~5000원은 받아야 하는데, 품질로 따지면 어느 미역에도 뒤지지 않는 돌미역이었다. 중개인들이 짜고 한 가닥에 1000원으로 가격을 후려쳤다. 파도에 흔들리는 바지선에 몸을 실은 채, 가파른 벼랑 주변 갯바위에서 한 올, 한 올 채취해 만든 미역을 그 먼 곳에서 나이 많은 아주머니들이 이고 지고 왔는데, 1000원에 넘겨야 했던 심정은 오죽했을까.

  

그 미역이 요즘 1만2000원에 팔린다. 가만히 두어도 주문이 들어온다. 섬에서 하룻밤 지내고 섬 밥상을 받아 본 사람은 미역과 홍합을 사 간다. 주민들도 미역 채취 시기 조절하고, 작은 홍합 채취금지 등으로 화답을 한다. 깨끗하고, 맛 좋고, 공정하게 유통하는 특산물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다.  파도와 바람 소리만 들리는 작은 섬마을에서 섬 주위를 걷고 주민들이 차려준 섬 밥상을 맛보는 게 전부다.

  

올겨울엔 이마저 잠시 중단된다. 주민들이 영산도를 사랑해 주신 탐방객들에게 더 나은 섬과 섬마을을 보여주기 위해 몇 달간 재충전 시간을 갖기로 했다.  이후 영산도는 여행객에게 '일회용 사용 금지' '쓰레기 가져가기' 등 더 많은 요구를 할지도 모른다. 눈앞 이득을 생각하지 않고, 손님을 우선하는 영산도에 박수를 보낸다.

  

- 보길도 남쪽 끝 민박집에서 받은 '내 인생의 밥상'

인터넷 카페(http://cafe.daum.net/sara3040/3qGF/11377)에서 펌글입니다.

'세상사는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버지와 아들  (0) 2019.11.13
모든 게 밥으로 통하는 대한민국   (0) 2019.11.11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  (0) 2019.11.07
입동  (0) 2019.11.07
상한 사과 한 상자   (0) 2019.11.07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