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용교수가 제시한 차기 대통령 채점기준 또는 자격조건
저더러 차기 대통령 후보로 누구를 지지하는지 빨리 밝히라고 요구하는 페친이 더러 있습니다. 이런 무례한 요구에 답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제가 생각하는 ‘채점 기준’을 페친 여러분께 알려드리는 건, 각자의 ‘채점 기준’을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분이 만든 ‘자격 조건’을 보면 제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고요.
1. 역사의식이 있을 것.
‘이승만 시대’나 ‘박정희 시대’라는 말을 쓰는 데에서 알 수 있듯, 대통령은 ‘자기 시대’를 만드는 직책입니다. 대통령은 우리 공동체가 어떤 역사를 거쳐 왔으며, 어떤 역사적 과제를 앞에 두고 있는지, 자기 견해를 명확히 제시하고 대중의 동의를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대통령에게 역사의식이 없으면,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반복할 뿐 아니라 시간을 과거로 되돌릴 수도 있습니다.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들은 시대의 변화에 맞는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낡은 구호에 집착하곤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기대는 것은 주로 대중의 익숙하면서도 막연한 ‘공포감’입니다. 하지만 시간은 모든 것을 상대화합니다.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이라야, 어떤 변화에도 대처할 수 있습니다.
2. 박식할 것.
대통령이라고 해서 세상 모든 일에 통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각 분야의 주요 의제가 무엇인지 정도는 알아야 합니다. 대통령 주변에는 각 분야의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몰려들게 마련입니다. 대통령이 전혀 모르는 분야가 있으면,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기꾼에게 휘둘리기 쉽습니다. 예컨대 대통령이 원전의 안전성과 경제성 논쟁의 쟁점을 모른다면, 자기와 가까운 사람의 주장만을 믿고 따르는 위험천만한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무식한 지도자는 주술에 의존하기 쉽습니다. ‘원전 조기 폐쇄 반대는 하나님의 확신’이라고 주장한 최재형 감사원장이 그 예입니다. 또 특정 분야의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사람도 대통령으로서는 부적격이라고 봅니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는 자기 분야의 중요성을 과도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문가의 견해’라는 말에 종종 ‘현실성 없는’이나 ‘균형 감각을 상실한’ 등의 수식어가 따라 붙는 이유입니다. 어떤 분야의 최고 전문가는 대학이나 연구소에 있어야 합니다. 어설프게 전문가 행세하는 정치인은 오히려 진짜 전문가를 배척합니다. 전문성에 경도되면 통찰력을 갖기도 어렵습니다. 통찰력은 여러 분야를 넘나들어야 생깁니다. 윤석열씨가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성찰’이라고 쓴 것은, ‘통찰’이 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3. 부지런할 것.
대통령은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책임져야 하는 직책입니다. 사건과 사고는 대통령의 생활리듬을 배려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수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고 수많은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부지런’도 생활 습관입니다. 게으른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부지런해지지는 않습니다. 박근혜가 부지런했다면, ‘박근혜의 7시간’은 논란거리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물론 ‘부지런’을 검중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밤에 술자리에서만 부지런한 생활습관을 기른 사람을 짚어내기는 어렵지 않을 겁니다.
4. 신중하되 과감할 것.
대통령의 명령은 법률에 준합니다. 대통령은 어떤 사안이든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심사숙고한 뒤에 결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결정하기 어려운 일들의 결정권이 최종적으로 모여드는 곳이 대통령직입니다. 몇 달씩 숙의와 고민을 거친 뒤에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있지만, 문제가 발생한 즉시 결정해야 하는 일도 많습니다. 대통령은 누구에게도 결정을 미룰 수 없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직감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직감은 타고 나는 게 아닙니다. 어려운 결단을 수없이 내려본 사람만이 키울 수 있는 감각입니다. 다만 신중과 우유부단, 과감과 경박은 서로 혼동될 수 있습니다. ‘그’가 심사숙고하는 것인지 ‘간’을 보는 것인지는 주권자가 판단할 문제입니다.
5. 약자 편에서 살아왔을 것.
“내가 돈버는 데 나라가 보태준 것 있냐?”고 하는 부자들을 가끔 봅니다. 이런 사람들은 국가를 거추장스럽게 여기거나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무한경쟁을 방치하거나 부추기는 정부라면, 사회적 약자에게는 정부가 곧 맹수입니다. 국가는 부자와 강자보다 빈자와 약자에게 더 절실히 필요합니다. 빈자와 약자는 국가가 편을 들어주어야 겨우 ‘인간답게’ 살 수 있습니다. 빈자와 약자 편에서 살아본 사람이 아니면, 이 이치를 모르기 쉽습니다. 게다가 ‘사회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은 거의가 부자와 강자들입니다. 이런 사람들 사이에서 빈자와 약자의 사정을 생각하려면, 인생과 철학이 서로 결합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 성공은 순전히 자기 능력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부적격입니다. ‘능력 지상주의’는 ‘성공한 자’들만의 이념입니다. 어느 나라에든, ‘성공한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이런 이념은 사회 구성원 사이의 대립을 심화하고 국가 공동체의 기반을 와해시킵니다.
6. 후덕(厚德)할 것.
덕(德)은 카리스마와는 다른 동양적 리더십입니다. 덕을 명료히 정의하기는 어려우나, 자신을 낮추고 자기 공을 내세우지 않으며 어려운 사람 돕기를 반복함으로써 생기는 평판 또는 이미지라고 해도 좋을 겁니다. 대통령은 국민 모두의 머슴이라는 민주주의적 원칙과는 별도로, ‘덕치(德治)’를 중시하는 동양적 정치관은 여전히 시민 다수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억울함이 없는 나라를 꿈꿀 수는 있으나 만들 수는 없습니다. 대통령은 어떤 하소연이든 들어줄 것 같은 사람, 억울함을 풀어주진 못해도 진심으로 위로는 해 줄 것 같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갑작스레 해고당한 뒤 사정하는 테니스장 관리인에게 귀찮다는 듯 2만 원을 집어 주는 대통령을 다시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 역사학자 전우용
#전우용교수가제시한차기대통령채점기준또는자격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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