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자연을 예찬한 책 몇 권 읽었다. 특히, 전우익 선생의 글은 '자연에서 배우는 지혜와 철학'으로 맛깔스런 입말로 살아난 글이었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사람이 뭔데」는 선생이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소중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글 모음이다. 주로 농사일과 농촌 생활에서 길어 올린 알토란같은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풀어놓은 책인데, 도라지와 나무를 심고 가꾼 이야기, 부들로 자리를 매며 깨달은 세상의 이치를 조근조근하게 들려준다. 더구나 노신의 사상과 철학에 대한 고찰과 독후감은 선생이 떠난 지금도 그 목소리가 당차게 울리는 듯하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는 씨앗을 부리는 농부의 마음으로 자연에서 얻은 삶의 지혜와 철학을 담아 '삶이란 그 무엇인가에, 그 누구에게 정성을 쏟는 일'임을 일깨워준다. 또, 「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는 뿌리 깊은 나무처럼 '진하게 산다는 일'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쏟아낸다. 선생의 나무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은 참 따뜻하고 애틋하다. 그런가 하면 「사람이 뭔데」는 흙을 일구고, 나무를 가꾸며 살아가는 소박한 삶의 지혜를 들려준다. 선생은 겸손해 하지만 풀과 나무에 대한 관심이 사람에게로, 마침내 자연과 사람이 상생하는 모둠살임을 일깨운다.
요즘 누구나 바쁘게 산다. 그렇기에 자연에 순응하며, 조금 느린 듯 겸손하게, 단출하고 소박하게 사는 일에 눈 돌릴 겨를이 없다. 참삶이란 어떤 모습일까? 잠시나마 전우익 선생의 삶을 통해서 자연에 대한 융숭한 시선을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듬성듬성 살거나 알뜰살뜰 살았다고 해서 잘 사는 게 아니다. 작은 씨앗 하나가 마침내 숲을 일으키듯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좋은 뜻을 나누어 묻는 일이 많아질 때, 아주 작은 일에 서로 부담감을 주지 않고, 소리 없이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아질 때 우리 삶은 더욱 빛을 발한다.
논밭에 어우러진 잡풀을 뽑다말고 농부으 한숨이 겨워진다. 뽑아도 뽑아내어도 사라지지 않는 잡풀의 생명력은 질기다. 사람은 필요에 의해서 곡식만을 가꾸려하지만, 잡풀도 제각기 자신만의 독특한 생존방식을 가졌다. 옥수수처럼 길고 가는 식물들 곁에는 대개 바랭이나 달개비가 붙어살고, 콩이나 감자 같은 식물 주위에는 어김없이 까마중이나 비름, 명아주가 함께 자란다. 감자밭에 바랭이나 달개비가 자란다면 금세 눈에 띄어 사람 손에 거들난다. 해서 그네는 보호색으로 자신을 감추듯 가장 닮은 곡식 곁에서 여유작작하게 자란다. 풀도 곡식과 어우러져 살아가다 보니 자신의 삶을 터득했다.
사람 사는 이치도 이와 같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소로의 참삶이 담긴 역작도 일독해 봄 직하다.「소로우의 일기」는 헨리 D. 소로우가 살았던 콩코드 거리라든가 즐겨 산책한 월든 호숫가에서의 생활을 중심으로 쓴 이야기다. 소박한 삶은 모두 자연으로부터 비롯되듯이 그의 생활은 극히 소박했다. 호숫가 근처 통나무집 내부의 모습이나, 산책길, 가족사진, 스케치된 그의 전신 초상 등을 통해서 그의 삶을 엿보인다.
또다른 그의 저서「월든」,「숲속의생활」,「야생의 사과」는 대부분이 이 일기를 바탕으로 쓰였으며, 번잡하게 사람 속에서 부대끼는 일을 철저하게 배격하면서 개인주의적 삶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켰다. 또한 '고독만큼 친해지기 쉬운 벗을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며 '우리는 대개 방안에 홀로 머물 때보다 밖에 나가 사람 사이를 돌아다닐 때 더 고독하다'는 소로에게 고독을 상쇄시킬 벗은 자연이었다. 그는 숲 속의 자연물과 생물이 내는 소리와 그것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풍경에서 '무한하고도 설명할 수 없는 우호적인 감정'을 느꼈다.
그가 진정으로 아꼈던 만병통치약은 '희석되지 않은 순수한 아침 공기'였고, 더불어 산책을 즐기고 싶었던 거의 유일한 대상은 '우주를 창조한 뿐이었다. 소박하고 검소한 삶, 자연과 더불어 식물성 순수의 에너지로 평화를 갈구했던 소로는, 현대문명의 엄청난 속도 앞에 휘둘리는 현대인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우리가 깨어나지 않은 한, 아침이 와서 태양이 떠도 그 태양은 단지 밤하늘의 별에 지나지 않는다”고.
자연 속에서 풀들에게 배울 삶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모질고 척박한 땅에서도 꿋꿋이 일어선 잡풀들 뿌리의 힘을 함부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 모든 알곡이 그러하겠지만, 바랭이·달개비·비름·맹아주·까마중의 뿌리 힘이 제각각 다르다. 풀 한 포기를 건사하는데도 온갖 정성과 노력을 다해야 한다. 자연의 가르침은 작디작은 소박한 일에서부터 비롯된다.
어제 살짝 내린 비로 산기슭 풀꽃이 일제히 향연을 베풀었다. 유월 신록의 짙푸름에 눈이 시리다. 그만큼 자연예찬사가 절로 읊조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