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적한 쓰레기더미를 보며 생각한다
박종국(에세이칼럼니스트)
게으른 장마니 늦장장마니 심지어 지각장마라고 힐난했다. 그만큼 열흘 넘게 늦게 도착한 장마는 성질도 까탈스러웠다. 심지어 국지적으로 게릴라 성 폭우를 퍼부어댔는데, 이를 두고 혹자는 한반도가 아열대성 기후로 바뀌었다고 걱정했다.
그런 조짐은 이미 나타났다. 이미 거덜난 명태어장만해도 그렇고, 유명사과 집산지도 철원까지 올라갔다. 십년이내 평양사과, 만주사과를 맛볼 날이 머잖았다. 남쪽지역에서는 열대과일채소가 재배된 지 오래다. 바닷고기도 제주도 해안은 물론, 남해미조, 울릉도해안에서도 열대성어류가 심심찮게 잡힌다고 한다. 앞으로 방어잡이도 울릉도에서나 가능할 거란다.
이밖에도 미국을 비롯한 지구촌 곳곳에서 폭염과 산불, 산사태를 겪었다. 비단 이러한 이상기후징후가 단박에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아기공룡 둘리가 빙하타고 나타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남태평양 투발루가 국가포기 선언을 했을 때 정신 차려야했었다. 히말라야 만년설녹는다고해도 본 체 만 체했던 인간의 무심함은 결국 화를 키웠다(태평양과 인도양의 아름다운 섬이 해수에 잠기고, 일본 후지산이 바닷물 속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안전할까).
자연오염과 훼손에 따른 보복은 부메랑과 같다. 당장에 편하다고, 더 많이 얻는다고 산허리를 파헤치고, 우후죽순처럼 시멘트로 빌딩을 올리지만, 자연을 거슬려는 대가는 혹독하다. 태초에 인간은 하늘에 이르겠다고 바벨탑을 쌓았다. 하지만 지난한 억겁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 짓을 계속한다. 사십오십층의 마천루에 산다는 못난 선민의식이 그것이다.
오늘 아침에도 양계장 게이지를 나서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건물붕괴사고를 보면 겁난다. 우리의 건물도 안전하지 않다. 첨단컴퓨터시대를 구가하며 살아도 결국 대재앙 앞에서 인간은 하찮은 존재로 나약하기 마련이다. 당장에 모기 한 방에도 목숨을 잃는 게 인간이다.
수요일이면 내가 사는 아파트 분리수거를 하는 날이다. 이른 시간인데도 산더미같이 쌓인 생활쓰레기를 보면 아연실색한다. 팬데믹으로 외식이 자유롭지 못한 이유도 크겠지만. 그에 따라 배달음식이 일반화되었다는 현실반영이다. 쓰레기를 너무 많이 만든다.
그밖에도 지구촌을 살리자는 목소리가 빈발하다. 더는 환경문제를 나몰라라 할 일이 아니다. 50년, 100년 후의 지구를 생각할 때, 그 예측 결과는 심각하다. 아마 제2의 빙하기를 맞을 만큼 지구촌의 모든 생물은 괴멸할지도 모른다. 지구생태계가 멈추면 자연 인간의 삶도 저당잡힌다. 그때도 농아의 방주를 기대하련가? 이미 때가 늦었다.
하지만 처방전이 없는 건 아니다. 단적으로 표현해서 지구멸망시계 시침을 늦추는 게 가능하다. 먼저 전쟁과 기아를 일소하고, 지구촌생태계를 되살려야 한다. 환경오염을 줄이고, 무분별한 자연훼손도 멈춰야한다. 가장 바람직한 자연보호는 자연상태 그대로를 보전하는 일이다. 근데도 고층건물에 대한 인간의 망상을 떨쳐내지 못한다.
아침 출근하다 말고 쓰레기더미를 보고는 또 한번 경악했다. 읍내 곳곳에 실려나가는 양이 어마어마하다. 오죽하면 쓰레기를 만드는 동물은 인간뿐이다고 했을까. 그런데도 나는 차 시동을 건다. 탄소중립을 하려면 걷거나 자전거를 타야할텐데, 괜한 넋두리만 읊어댔다. 자가당착이다.
탄소중립(net zero,
순 배출 영점화, 純排出零點化)탄소중립(넷제로)은 화석연료 사용 등으로 배출되는 온실 가스를 최대한 줄이고, 불가피하게 배출된 온실가스는 나무를 심거나 청정에너지 분야에 투자함으로써 실질적인 배출량을 0이 되도록 하는 상태를 말한다. 2018년 UN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는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에 지구의 온도 상승을 인류의 생존 한계선인 평균 1.5℃ 이하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 상태가 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사회 모든 부분에서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종국에세이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