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헬싱키에서 만난 한나 수오넨에게 들은 이야기다. 작은 무역 회사에 다니는 한나는 용돈의 반 이상을 책 사는 데 쓸 정도로 책을 좋아했다. 애서가 동호회에도 가입했다. 애서가의 꿈 중 하나는 이것이다.
‘더 많은 책을 갖고 싶다.’
어느 날 동호회 회장 렌의 아파트에 방문한 한나는, 집 안을 가득 채운 책을 보고 놀랐다. “이 정도 책은 아무 일도 아니에요. 노박 선생님에 비하면….” 얼마 뒤 한나와 렌은 노박 선생의 전원주택에 갔다. 단층 실내는 책장으로 가득했다. 지하실에도 여기저기 책이 쌓였다. “지난달에 오피스텔을 하나 얻었지. 책 둘 곳이 없어서 말이야.” “책이 정말 많네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한나에게 노박 선생은 말했다. “라이넨 교수는 한술 더 뜨지. 3층 건물을 사서 책만 들여놨다니깐.”
한나는 그 건물을 구경하고 싶었다. 며칠 뒤 한나와 렌은 라이넨 교수의 건물을 방문했다. 라이넨 교수는 만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미리 허락을 받은 상태라 여직원의 안내로 건물을 훑어보았다.
서가는 듀이 십진법에 따라 분류되었다. 0은 총류, 1은 철학, 2는 종교…. 3층은 역사 서적으로 가득찼다. 한나와 렌은 놀라며 물었다. “모두 몇 권이나 되나요?” “4만 권쯤 될걸요.” 하루에 한 권씩 109년 동안 읽을 분량이었다. 건물을 나오려는 그들에게 여직원이 쪽지를 건넸다. “교수님이 드리라고 했어요.” 쪽지에는 이렇게 씌였다. “진짜 장서가는 따로 만나보세. 빌렌 선생. 555-1234-5678.” 전화를 걸자, 빌렌 선생은 흔쾌히 방문을 허락했다. 둘은 선생을 찾아갔다. “어서 오게.” 10평 정도 되는 사무실에는 삼나무 향기가 나는 책장 십여 개가 다닥다닥 붙었다. 그런데 책장이 군데군데 비었다! 빌렌 선생과 두 사람은 책 이야기를 나누며 차를 마셨다. “책을 좋아한다고?” “네.” “다행이구먼. 요즘 젊은이는 책을 안 읽어. 그런데 나는 책을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야. 집과 사무실에 책이 전부지.” 한나는 조심스레 서가를 훑어보았다. 세 번째 서가에 빌렌 선생의 책이 꽂혔다. “저건….” “응, 내가 지은 책이야. 30권쯤 되나?” “정말 책을 많이 쓰셨네요.” “그냥, 다 허풍이야. 하하하.” 빌렌 선생은 말했다. “여기 책들 중 맘에 드는 거 골라서 가져가.” “네?” “어서, 나는 또 공부해야 하니까. 힘들 좋으니 10권씩 가져가.” 한나와 렌은 책을 골라 들었다. 고맙다고 인사하며 한나가 물었다. “이렇게 많이 가져가도 돼요?” “괜찮아. 위장도 비워야 채우지. 책장도 빈 곳이 많아야 자꾸 새 책으로 채우고 싶거든.”
두 사람은 두둑해진 가방을 메고 건물을 나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한나는, 누가 진짜 책 부자인지 알았다. 한나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서재를 방문하는 사람에게 책을 나눠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