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올바른 자동차 문화가 절실한 때

박종국에세이/단소리쓴소리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1. 10. 26. 14:04

본문

 

 

 

올바른 자동차 문화가 절실한 때



박 종 국


그저께 모임자리에서 한 친구가 십 오년 무사고를 자랑삼아 얘기했다. 그만한 운전 경력이면 부러움을 살만하다. 그렇지만 단지 운전만 잘 한다고 부추길 게 못된다. 차량 사고는 예고되지 아닐뿐더러 불시에 일어난다. 차를 몰다보며 단순접촉사고를 숱하게 겪는다. 근데도 대부분 자신을 탓하기보다는 재수가 없어서 그랬다고 말꼬리를 사린다. 하나 교통사고는 거의다 본인의 부주의한 탓이다.



전체 가구당 두 대 꼴로 차량을 보유하는 요즘, 생활에 편리함을 주는 자동차로 하여금 평생을 가슴 턱턱 쳐야하는 낭패는 없어야한다. 어제 흉측한 사고를 목격했다. 꽤 반듯한 길이었는데 길 가장자리에 차량 여섯 대가 나뒹굴었다. 다행스럽게도 탑승자는 크게 다치지 않았으나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누구나 그런 장면을 목격하였다면 운전대를 잡을 마음이 싹 가실 거다. 남의 일이 아니다.



교통사고는 내가 부주의한 탓



사람의 정도는 그 사람이 사귀는 친구를 보면 안다. 또한 평소 운전 습관을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이 나타난다. 평소 참 사람좋다는 평을 받아도 운전대만 잡으면 ‘두 얼굴의 사나이’가 된다. 함부로 신호를 어기고, 복작대는 거리에서 경음기를 빵빵 울려대며, 거친 운전으로 여성 운전자를 무시한다. 그렇게 초보운전자를 홀대하려드는 사람이 많다. 잘못된 운전습관이 그 사람의 인격으로 드러난 결과다. 다들 개구리 올챙잇적을 모른다.



함께 도로에 나선 차량운전자는 누구나 배려 받아야한다. 그런데도 상대방의 조그만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고 삿대질을 해댄다. 욕지거리를 내뱉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그런 운전자를 만나면 괜히 불쾌해진다. 쌍심지 켜는 사람일수록 자신은 고상하게 운전한다고 떠벌린다. 하물며 어린 아이를 태우고도 똑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이미 구제 못받는다. 그런 사람은 운전할 자격이 없다.



운전 습관은 그 사람의 인격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나 마땅히 지켜할 규범과 규칙이 따르기 마련이다. 때문에 생활을 원만하게 사려면 그 사회에 온당한 에티켓을 소화해 내야한다. 그래야 조그만 일에도 서로 낯붉히지 않고 즐겁게 생활한다. 이미 상용화 된 인터넷의 ‘네티켓’과 마찬가지로 자동차 운전자를 위한 ‘카티켓’도 올바른 자동차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문화나 예절은 시대나 지역에 따라 변화한다. 그렇지만 예절의 근본정신은 변하지 않는다. 자동차 2700백만 대 시대를 사는 지금, ‘먼저 나부터’ 올바른 자동차 운전습관을 가져야겠다. 더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사고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모두가 ‘빨리빨리’보다는 ‘느리게’ 운전하고, 서로를 배려한다면 보다 여유를 갖고 운전하지 않을까? 그쯤이면 올바른 자동차 문화를 자신해도 되겠다?



한데, 서울 사는 친구는 자동차를 마다하고 산다. 바쁘면 택시 얻어 타고, 먼 길은 재바른 ktx를 애용한다. 그는 몰던 중형승용차를 동료 직원에게 그냥 내줘 버렸다고 한다. 서울에서도 중상류층을 버젓하게 사는 그가 왜 자가용을 마다했을까? 그는 수수하고 소요한 삶을 즐긴다. 모든 일 빙하착하듯 끝없는 하심이 그의 일상인저. 그는 오늘도 버스 타고 지하철 탄다. 그게 바로 이 시대의 철인이자 현인의 처세다.      



|박종국에세이칼럼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