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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더스의 개

박종국에세이/독서서평모음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1. 12. 27.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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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더스의 개

<플랜더스의 개>는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유명한 책으로, 소년과 개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다.
책의 제목이자 주된 배경이기도 한 플랜더스는,​ 벨기에 지방의 실제 푸른 초원지대를 일컫는데, '플랑드르'라고도 많이 불린다.

글쓴이 위다는 영국인이지만, 이 책을 쓰기 위해 벨기에로 건너가 수개월 머물 정도로 창작욕에 불탔다고 한다. 그녀는 강아지를 좋아해서 파트라슈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플랜더스가 실존하는 지역이므로, 당연히 작중에서 주인공인 네로와 마을 사람의 특징이라던가, 생활상, 혹은 문화적인 부분 또한 19세기 후반의 플랜더스 지방 모습을 그대로 담아냈다.

가령, 플랜더스에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우유 수레를 끄는 개를 부렸다고 한다. 물론 파트라슈에 비해 훨씬 더 무섭게 생기기는 했다네요. 네로와 파트라슈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할아버지인 예한 다스와 함께 굉장히 가난한 삶을 살았던 아이였다.

당시 차량 운송이 희귀하던 시절, 플랜더스 지역만의 커다란 개는 각종 수레를 끄는 소중한 일손이었다.
본디 전쟁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가 직접 우유 수레를 끌어야 하는 형편이었으나,​ 전 주인에게 무자비하게 얻어맞고 버려진 파트라슈를 구해와서 다행이었다.

플랜더스 지방은 땅이 비옥하여 웬만한 집은 농사를 통해 안정적인 생계를 꾸렸으나,​ 네로네 집은 너무 가난하여 땅조차 얻지 못해 우유배달로 생계를 이어나가야 했다. 그럼에도 네로는 워낙 착하고, 싹싹하며, 잘생기기까지 해서, 비록 가난했지만 마을 사람에게는 늘 사랑을 받았다. 파트라슈도 마찬가지였다.

마을에서 가장 부잣집인 방앗간의 딸 알루아는 역시 네로의 친한 친구였다.​ 셋은 같이 어울려 놀곤 했다.
특히나 네로는 그림 그리는 걸 무척이나 좋아하여
알루아의 초상화를 그려주곤 했는데, 알루아는 이것을 무척 좋아하여 부모님께도 보여드렸다.

그러나 알루아의 아버지인 코제 씨는 가난한 집의
아들이 자신의 딸과 어울리는 게 못마땅했고,​ 더군다나 둘 사이가 이성적인 관계로 발전할까 봐 네로와 알루아를 떼어놓아버렸다.

더군다나 톱니바퀴에서 튄 스파크로 풍차에 불이 나 코제 씨의 방앗간이 홀랑 타버리자, 평소 방앗간을 자주 드나들었던 네로가 코제 씨에게 앙심을 품어 저지른 짓이라고 몰아가기까지 했다.
​이는 고작 10대 초반밖에 되지 않은 네로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처사였다.

코제 씨의 앙금은 단순히 말에서 그치지 않고,​ 마을 사람이 더는 네로의 집에서 우유를 타먹지 못하게 했다.
​그렇잖아도 가난했던 네로의 집은 생계수단이
아예 끊겨버렸다. 결국 추운 겨울이 오자 몸이 쇠약하던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네로와 파트라슈는 집세를 내지 못해 작은 오두막에서마저 쫓겨나고 만다.

그런 네로가 유일하게 품었던 희망은 바로 자신의 재능을 살려, 상금 200프랑의 미술 대회에서 1등을 하는 거였다.
그러나 네로의 천한 신분에 상을 주기를 꺼려 했던 심사위원에 의해 이마저 낙선하고 말았다.
결국 모든 희망을 잃은 네로가 추운 겨울 길을 파트라슈와 함께 걷던 도중,​ 우연히 파트라슈의 뛰어난 후각으로 눈 속에 파묻힌 지갑 하나를 줍게 된다.
그것은 바로 방앗간 화재를 수리하기 위해 코제 씨가 은행에서 받아온 전 재산이었다.

네로는 그 돈을 몽땅 가짐으로써 코제씨에게 복수함과 더불어 행복한 삶을 꿈꾸는 게 가능했지만,​ 그러지 않고 즉시 방앗간에 돌아가 알루아의 어머니에게 지갑을 돌려주었다.
​그러고는 파트라슈만 집에 맡긴 채, 본인은 추운 겨울 길을 걸어 시내의 성당으로 향한다.
그 성당에는 바로 네로가 평생 동안 보고 싶어하던
'루벤스의 그림'이 걸렸다.​

지갑을 잃어버리고 집에 돌아온 코제 씨는 몹시 화나고 절망한 상태였으나,​ 알루아의 어머니가 지갑을 주며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그만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자신이 그토록 못되게 굴어왔던 네로와 파트라슈였기 때문인걸까.​ 가슴 깊이 반성한 코제 씨는 네로와 파트라슈를 지극히 돌보아주려고 하나, 이미 네로는 물론 파트라슈까지 추운 겨울밤 어둠 속으로 사라진 후였다.

기력이 다해 죽기 직전 둘은 성당에서 만났고,​ 성당을 뚫고 들어온 달빛은 루벤스의 그림을 환하게 비춰주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날 저녁, 추위 속에서 서로 끌어안은 채로 크리스마스를 맞는다.

크리스마스가 된 이튿날 아침, 파트라슈를 끌어안는 네로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아로아는 네로와 파트라슈의 죽음에 슬퍼했고, 코제츠는 눈물을 흘리며 반성했다. 마을 사람도 크게 후회하면서 교회의 특별한 허가를 받아 제단 아래 개와 함께 네로를 장사지냈다.

또 다음날, 콩쿠르에서 네로의 재능을 인정한 저명한 화가가 그를 데려다 제자로 삼아서 키우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사실, 플랜더스의 개는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너무나 유명한 동화라서, 줄거리를 속속들이 아는 사람이 많다.​
서양 소설임에도 동양의 감성에 더 걸맞은 작품 중 하나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작가의 나라인 영국이나 혹은 주 무대가 되었던 벨기에에서는 우리나라 만큼의 인기는 없다고 한다.

유럽을 비롯한 서양 국가는 아무래도 청소년의 독립 시기가 더 빠르고, 개인에 대한 책임을 중시하다 보니,​ 네로가 무기력하게 얼어 죽어 간 걸 비판하며, 스스로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나가야 했다고 비판하기 때문이다.

또한, 벨기에는 '우리 플랜더스 사람은 이렇게 못되지 않았다'라며, 자신을 마치 악역처럼 몰아가는 데 대한 반감을 가지기도 했다고도 한다.​
똑같은 작품이어도 이렇게보는 시각이 다양하다는 게 참으로 흥미롭다.

크리스마스, 축복으로 가득한 날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작중에서는 네로와 파트라슈가 쓸쓸히 죽어갔던 시간이기도 하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는 곳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적지 않다.

고전 소설이 시간이 지나서도 사랑받는 이유는, 이처럼 우리가 잊고 살아가서는 안 될 인간적인 가치를 늘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네로와 파트라슈의 착한 마음과 우정은 비단 소설 속의 이야기도, 옛날의 이야기만도 아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네로의 꿈에 대한 열정과 착한 마음가짐을 배워야한다.

|박종국참살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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