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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양육 비결

세상사는얘기/삶부추기는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2. 2. 21.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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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양육 비결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

박종국

그제부터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칼레이머, 토네이도, 2011) 책을 읽었다. 그 속에 이런 글귀가 눈에 띄어 밑줄 쫙 그었다.

"부모의 행복은 가장 불행한 자녀의 행복지수 만큼이다."

아무리 행복한 일 많아도 자녀가 불행하면 부모는 행복할 수 없다. 사실 부모가 되어 자식을 키우는 일이 즐겁고, 고무적이며, 도전적이고, 실망스러운 경험 투성이다. 근데도 요즘 젊은 부모는 최고가 되고자 하면서도 정작 자식을 키우는 데는 쩔쩔 맨다.

젊은 부모는 부모세대의 양육 결과에 그다지 관심없다. 놀랍게도 인터넷 서핑을 통해서 얻은 수천 건의 양육 연구 자료에 밀착해서 아이를 키운다. 그러나 실제로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은 극히 미미하다. 자녀 양육에 관한 이론은 실제와 많이 다르다.

시대에 따라 양육방식은 변한다.

세상을 오래 산 부모 세대가 전해주는 경험과 지혜는 어떨까? 지금 아이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커가는 자녀는 부모가 이래라저래라 다그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또, 젊은 부모도 나이 든 이들의 양육에 관한 조언을 꺼려한다. 그것은 바로 늙은 부모세대의 조언은 어쩐지 지나치게 잡다한 게 뒤섞였을 거 같고, 전문적인 양육 상식도 부족하다는 선입관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데 부모세대의 양육에 관한 지혜야말로 가장 실질적이고 요긴하다.

부모의 지혜로운 양육은 단꿀이다

아이는 어떤 부모를 원할까?권위적이지도, 민주적이지도 않고, 방임형도 아니다. 방목형이었으면 바란다. 우선 방목형 부모는 간섭이 적다. 대부분 일을 자녀가 결정하도록 한다. 물론 자녀의 결정이 늘 옳지 않다. 하지만 방목형 부모는 되풀이되는 실수에서 뭔가를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수를 전혀 하지 않는다면 어떤 게 옳은 일인지, 어떤 게 그른 일인지 알 수 없다. 자녀에게 결정권을 주는 이유는 늘 최상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아도 실수와 실패, 어려움을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라는 무한한 배려다.

그런 점에서 보면, 세상 모든 부모가 자녀에게 기대를 낮추고, 불가피한 실패에도 느긋해야 한다. 그리고 자녀의 얘기를 열린 마음으로 들어주어야 한다. 완벽한 아이로 키우려는 욕심을 버리고, 잘못을 통해 배우도록 배려하면 더 바랄 게 없다. 조급하게 설쳐대는 부모는 아이를 망친다.

그런데 그 동안 내가 만났던 부모는, 충분한 양육을 하였는데도 완벽한 아이로 키우겠다는 생각을 접지 않았다. 아이는 가능한 쉽게 키워야 한다. 해서 나는 아이를 일체 학원도 과외도 보내지 않았다.

한 번은 아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다른 부모처럼 더 좋은 대학에 가도록 학원과외 시키고, 잔소리도 했더면 좋지 않았을까? 또, 네 삶에 좀 더 깊숙이 참견했더라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지 않았겠나?"

그랬더니 대뜸 아들이 대답했다. 의외였다.

"아니요. 그 덕분에 노루와 고라니, 산토끼, 청설모, 다람쥐가 드나드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왕따나 학교폭력 없는 학교에서 생활했잖아요. 게다가 학원과외 안 해도 원하는 대학에 갔어요. 성인이 된 지금, 아직 직장은 갖지 못하고, 용돈 타서 생활하지만,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요. 이만하면 만족해요?"

그랬다. 결국 완벽함을 추구하는 삶은 별 의미가 없다. 만족스런 양육은 아이에게 실패를 허용한다는 얘기다. 그것이 바로 방목형 부모의 양육관이다. 그러함에도 아직도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에게 불가능한 기준을 정해 놓고 늘 반듯하게 행동하기를 바란다. 우등생 모범생과 비교한다. 그래서 내 아이가 조금이라도 뒤쳐질까싶어 영어, 음악, 미술, 컴퓨터, 태권도, 수영, 발레학원, 심지어 영어캠프와 체험캠프, 자원봉사까지 내몰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가히 기업체 CEO수준의 빽빽한 일정을 소화하도록 다그친다.

한데도 요즘 부모의 바람은 끝이없다. '우리 아이가 악기를 잘 다루도록 뒷받침해주었더라면 재능을 맘껏 발휘했을 텐데.'는 말은 '다른 아이들과 놀 기회를 더 많이 주었더라면 우리 애가 부끄럼을 타지 않았을 텐데.'는 후회로 남는다. '내가 아이에게 공부를 좀 더 시켰더라면 학교생활을 더 잘할 텐데.'라는 말은 결국 '내가 아이에게 공부를 더 많이 시키지 않았더라면 학교생활을 더 재밌게 했을텐데.'라는 때늦은 반성을 하게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도 아이는 바쁘다. 부모가 아이에게 능력 이상을 고집하며, 비싼 개인 교습을 시키고, 방학이면 대학교 금고를 배불리는 대학캠프에 보낸다. 그러한 패키지 교육은 값비싼 장사다.

자네 양육, 그 훌륭한 비결은 딴 게 아니다.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박종국에세이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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