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만큼 자식의 소질을 아는 사람은 없다
박종국
20여년 전 언론사가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장래희망' 조사한 결과, 대통령, 장군, 판검사, 과학자, 대기업 사장이 많았다. 그러나 요즘 조사에서는 어떨까? 단연코 운동선수, 배우, 가수, 모델 등 연예인의 순위가 절대적으로 높고, 컴퓨터, 인터넷, IT관련 업종, 요리사, 구두 디자이너, 제빵기술사, 애완동물 사육사, 와인제조, 비행기 조립 등 청소년이 꼽는 장래희망이 다양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는 자식이 대학을 졸업하고, 안정된 직장을 갖기를 바란다. 또 자녀의 학교성적이 우수하면 아이의 적성에 관계없이 판·검사나 의사로 만들려고 한다. 자녀의 소질이나 특성을 파악하고 좋아하는 분야에서 성공하도록 돕기보다는 부모의 희망을 아이의 목표가 되도록 강권한다. 부모세대가 갈망했던 '그들만의 리그'를 고스란히 대물림해주고 싶은 거다.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김기덕 감독은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데도 세계 3대 영화제 가운데 하나인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그는 서울 청계천 면공장에서 10대를 보내고, 해병대 복무를 한 뒤, 프랑스에서 거리의 화가생활을 하던 중 보게 된 영화에서 충격을 받아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강남스타일’로 유투브 조회수 1억 3000만 건을 기록하고, 미국대표 지상파방송 NBC의 간판프로에 출연한 싸이는 부모 몰래 미국 명문대를 중퇴하고, 음악대로 옮긴 게 오늘의 자신이 되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이나 싸이는 스스로 자신이 잘하는길을 찾은 경우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청소년이 자신이 잘하는 일을 찾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다른 경우도 많다. 하루종일 컴퓨터에 매달려 게임을 하는 아이라고 해서 컴퓨터 전문가가 되는 건 아니다. 어지간한 노래와 춤 실력으로는 아이돌 그룹 근처에도 못 가는 세상이다. 연예인 지망생이 하도많다 보니 관련 기획사 주변을 맴도는 청소년이 서울에만 수만여명이나 되고, 성형외과만 재미를 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운동선수도 야구, 축구, 골프에만 몰려 비인기 종목에선 팀을 꾸려가기 힘든 학교가 많고, 야구, 축구, 골프를 하다 중도 탈락하여 청년실업자가 돼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직업이 귀천이 없어진지는 오래전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삶을 성공한 인생이라 말하는 사람이 많다. 교육학자는 평범한 청소년이라도 어느 한 분야에서는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고했다.
이창호·이세돌이 공부를 잘해서 바둑 세계 최고수가 됐는가. 정명훈은 학업성적이 우수해서 세계 지휘자가 됐는가, 부모가 자식이 잘하는 일을 찾아 그길을 가도록 안내해야 한다. 부모만큼 자식의 소질을 아는 사람은 없다. 대학의 학과 선택도 합격 가능성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자녀가 가야할 길로 이끌어 준다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청소년이 개개인의 특성을 발전시키는 게 국가적으로도 크게 발전되는 길이다.
내 집 아이는 초중고에 걸쳐 학원과외를 받은 적이 없다. 그리고 시골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래서 학교폭력이나 왕따(집단따돌림)을 겪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자연그대로 영혼이 맑은 청소년으로 자라 유명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학교에서 아이들과 행복하게 지낸다(아들은 중등교사 자격증을 가졌으나, 초등학교에서 군무한다). 아이의 행복은 딴 게 아니다. 부모의 느긋한 기다림이 가능하다면 제 하고픈 일을 하는 게 최선의 행복이다.
ㅣ박종국에세이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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