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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상실한 시대

박종국에세이/단소리쓴소리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3. 7. 15.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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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상실한 시대

박종국

“조선 사람은 도둑질을 잘 하며, 남을 속이거나 거짓말을 잘 한다. 그래서 조선 사람은 믿을 수가 없다.”

하멜이 <하멜표류기>에서 조선 사람에 대해서 피력한 글이다. 표류한 배에서 내려 무려 14년 동안이나 이 땅에 살았으니 그가 겪은 경험이 세세하고 예리하다. 비굴스럽지만 동방예의지국이라 부르던 나라, 인도 시성 타고르가 동방의 횃불이라 부추겼던 나라가 하멜의 눈에 너무나 비참하게 폄하됐다.

이는 지금의 정치, 사회, 경제, 교육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대로 드러난 우리의 민낯이다. 난마같이 얽히고설킨 정치가 그렇고, 사회경제는 얼크러져 가닥을 잡을 수 없다. 교육의 실패로 수백만의 젊은이가 직장을 잡지 못해 부모의 걱정은 골이 깊다. 그런데도 연일 빚어지는 정치인의 갑질은 보면 낯이 뜨겁다. 갈수록 빈부격차가 심하다. 이게 정치의 대가인가. 너무 눈 가리고 아웅이다.

지금 정치인의 작태를 보면, 과연 저들이 국민을 두려워 하는가 하는 낭패감에 혀를 끌끌 찬다. 당장 생계에 압박을 받는 사람은 하루살이가 급급하다. 그런데도, 요즘 정치풍경은 그야말로 말장난을 즐기는 유희 같다. 그래도 국회의원은 꼬박꼬박 세비를 받고, 2백 가지가 넘는 특권에다 그들은 즐겁다. 그들이 만든 김영란법이 무색하다.

국가꼴은 더 화급하다. 부자 편들기를 하려니 서민 허리를 더욱 졸라매야 한다. 한데도 이념으로 대거리를 하려고 한다. 제 코가 석자나 빠진 서민은 그딴 데 관심 없다. 세월호 대참사, 최순실 국정농단, 대통령탄핵, 이태원참사를 비롯한 크고 작은 사건사고를 바라보는 시각 차이도 너무 컸다. 이 땅의 정부 관료나 정치인, 사회 기득권층은 그에서 너무나 멀찍이 비켜나 앉았다.

누구나 당해 보지 않은 아픔을 말하기는 쉽다. 아무 죄 없는 대학생을 잡아다 물고문해서 죽인 사람이 대법관이 되고, 미치광이 사이코페스 살인마가 헌법재판관, 국회의원이 되어도 판사나 변호사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다 한통속이어서 그렇다. 단돈 16000 원어치 라면을 훔쳤다고 실형을 받는데, 몇백억 몇십억을 처바르고도 집행유예를 받는 나라다. 정말이지 최소한의 부끄러움을 모른다.

재벌이면 법도 쥐락펴락 한다. 판사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직을 놓으면 그 놈의 법무법인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그래서 법리해석은 재벌쪽으로 기운다. 마치 아프리카 독재국가의 법관을 보는 듯하다. 권위와 위신은 스스로 세워야 한다. 그럼에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먹이사슬 위쪽에 선다는 인식이 이미 우리사회 전반에 만연했다. 정녕 부끄러움이 깡그리 사라진 사회다.

시대가 참 더럽고, 추악하며, 천박하다. 인두겁이 너무 두꺼워 철판 같다. 잘 산다는 나라라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는 너무 얕고 거칠다. 끊임없는 야합이 난무한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끔직한 사건, 상대방을 덤터기 시키는 올가미,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초조하고, 불안하고, 갈수록 혼미한 늪이다. 탄핵 정국 이후 이같은 사실은 너무 명확해졌다. 태극기를 들고 다니는 무뇌아, 전직 일본총리가 죽었다고 별로 생각없이 조문하는 멍청이, 그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안타깝다.

사회의 목탁을 자칭하던 언론은 스스로 재갈을 물고 앵무새 노릇에 충실 한다. 끝없이 되풀이 되는 기레기의 막말. 그러나 어느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 정부의 나팔수에 대부분의 국민은 혐오감을 느낀다. 오죽하면 땡전 뉴스에 혈압이 돋아 꺼버린다고 할까? 무엇보다 작가는 시대의 첨단에 서야한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는 문학인의 변절이 너무 심하다. 간당간당 줄 타는 아부꾼이다.

국정농단의 실체 최순실. 징역 20년을 선고 받았지만 아직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의연하다. 위대한 갑질의 전형이다. 이 모든 게 세월호 문제를 넘어서지 못한 업보다. 국가의 무능과 자본의 탐욕을 자각하고, 반성하고, 개혁할 기회를 놓쳐버렸다. 바닷 속에 갇혔던 아이를 사고 희생자라는 틀에 가뒀고, 세월호를 사회 갈등의 먹잇감으로 던져버렸다. 이태원참사도 진척된 게 없다. 참 한심한 노릇이다.

부끄러움의 자정능력을 상실한 우리 시대 자화상을 보면서 세월호와 이태원대참사가 가 다시 겹쳐진다. 우리사회 민낯을 드러냈던 세월호, 지지리도 못난  어른의 다툼에 휘말려서 어느새 부끄러워야 할 문제가 아닌, 사회갈등의 한 축이 돼버렸다. 세월호가 다시 바다 위로 떠오르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자화상을 다시 대면해야 했었다. 그때 또다시 우리의 민낯을 반성할 기회를 놓쳐 버렸다.

세월호 이후 살아남은 자는 하루하루 비관론과 마주칠 수밖에 없다. 세월호를 다시 대면하고 극복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 언저리를 맴돌 뿐이다. "조선 사람은 도둑질을 잘 하며 남을 속이거나 거짓말을 잘 한다. 그래서 조선 사람은 믿을 수가 없다"는 하멜의 일침이 다시금 머리에 쟁쟁하다.

|박종국에세이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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