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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한 분별력을 가졌던 이태리 국민

박종국에세이/단소리쓴소리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3. 7. 19.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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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한 분별력을 가졌던 이태리 국민
-베니토 무솔리니와 그의 애첩을 처단하다 
 
이탈리아 파시스트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 1883 ~ 1945)는 그의 애첩인 ‘클라라 페타치(Clara Petacci)가 이탈리아 국민에게 ‘교양있고 품위있는 여자’로 보여지기를 원했다.  
 
고급 콜걸(call girl)출신이라는 건 이탈리아 상류층에서는 다 알았지만 쉬쉬했다. 본격적인 ‘신분 세탁’을 위해 무솔리니는 자신이 만든 당인 ‘국가 파시스트당’ 선전 홍보 전담 위원장에게 특별 지시를 한다. 이탈리아 최고 명문대 출신인 법학 전공 여성을 애첩의 비서로 붙이고, 벼락치기로 문학사 예술사 교양부터 미용 화술 등 귀족 부인 입문학을 본격적으로 집중해서 교육시킨다.  
 
최고 수준의 영화감독과 사진가를 동원해 맹렬하게 사진도 찍는다. 당시 이탈리아 매체는 무솔리리의 애첩 클라라 페티치의 ‘우아하게 연출’된 사진들을 매일 바꿔가며 내보낸다. 로마 시내 거리에도 대형 포스터로 만들어 ‘이탈리아 국모’를 선전한다. 이탈리아 국민은 그녀가 콜걸(call girl)출신이고, 사악하고 이상한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포스터를 찢고 가래침을 밷았다.  
 
끔찍한 무솔리니 시대를 보내던 이탈리아 국민들 상당수는 무솔리니와 그의 애첩이 매일 매일 떠드는 미친 소리와 거짓말에 정신병을 앓는 지경이 됐다.  
 
1945년 8월 미군이 로마 가까이 진군했다. 무솔리니와 애첩은 밀라노로 급히 튄다. 그러나 이탈리아 의용군에게 붙잡혀 총살 당하고, 로레타 광장 주유소 대들보에 거꾸로 매달려 시체는 전시된다. 이탈리아 국민은 좀 더 일찍 무솔리니를 처단시키지 못한 걸 후회했다. 용기를 내어 일제히 궁전으로 쳐들어갔다면 더 일찍 잡아 죽였다.  
 
클라라 페타치는 그냥 고급 콜걸로 살았으면 주유소 대들보에 정육점 갈고리에 거꾸로 매달려 죽지는 않았을텐데, 그만 권력 욕망에 일찍 죽었다. 무솔리니보다는 29살이나 어렸고, 처형 당시 33세 였다.  
 
1945년 4월 27일 약식재판을 거쳐 4월 28일 총살형에 처해졌고, 시체는 밀라노의 로레타 광장에 거꾸로 매달려 이탈리아 사람에게 전시됐다. 바로 다음 날에는 독일 나치 히틀러도 애인 에바 브라운과 함께 자살을 선택한다. 
 
사진 - 이탈리아 부패 신문은 무솔리니의 애첩인 클라라 페타치를 최대한 교양있고 기품있는 ‘여사’로 보이게 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미친 이상한 여자’임을 눈치 챈 이탈리아 국민은 사진이 실린 신문에 침을 뱉고 찢어발기기 일수였다. 
 
|페친 김상수 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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