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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박종국에세이/박종국칼럼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3. 9. 2.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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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박 종 국



내가 사는 아파트 바로 위층에 장애를 가진 이가 산다. 십삼년째 살면서 더러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다. 그는, 중도장애인인데, 후천적인 하반신 마비장애자다. 혼자서 걸을 수 없기에 오직 두 손으로 기다시피 나다녀야한다. 하여 바깥에서 좀처럼 그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게다가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그의 장애를 드러내놓기 꺼려하는 편이다.

근래 장애자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그렇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알게 모르게 장애인은 일반인과는 상대하기에 어렵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런 까닭에 중증장애자는 집 안에 꽁꽁 숨겨져 산다. 심지어 친척도 얼굴을 잘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친척이 방문하는 날이면 으레 장애인은 한 쪽 방에서 나오지 못한 채 틀어박혀 꼼짝하지 못한다.

실제로 문학회에서 만난 한 장애인 시인은 “내가 집에서 가장 서러웠던 경험은 나 자신이 가족으로부터 짐이 되고 숨겨져야 할 존재로 여겨질 때였다.”고 그 절절함을 토로했다. 그는 뇌경변장애자다. 그의 폐부 깊숙이 멍울진 항변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생활주변에 장애인이 많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이와 같은 인식은 장애인에 대한 정부의 정책과 일맥상통한다. 비약적인 이야기 같지만 정부는 장애인이 이 사회에서 격리될 때 더 사회가 아름답고 조화로울 거라는 정책을 입안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 단적인 예가 장애인을 위한 일련의 정책이 항상 ‘분리주의’에 입각한 ‘시설 중심주의’다. 그것이 훨씬 더 효율적으로 그들을 관리하고 도움을 준다는 혜안(?)이기 때문일까.

시설 중심주의는 각종 언론매체도 마찬가지다. 특별한 때가 되면 시설로 찾아간다. 그리고 시설에서 여러 모로 힘든 상황이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사는 장애인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그에 터하여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헌신하는 시설 관계자를 부각시키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어찌 단 한번의 카메라 스포트라이트가 나머지 364일 동안의 장애인의 삶을 조명해낼까.

장애인은 시혜나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더욱이 그들은 특별한 사람도 유별난 대접을 받아야할 사람이 아니다. 만성장애인이건 중도장애인이건 그들도 좋아하는 일이 다 다르고, 먹고 싶은 게 다 다르며, 가고 싶은 곳이 다 다르다. 지향하는 바 꿈도 다 다르다. 근데 장애인을 그들만의 공간에서 따로 지내는 게 더 좋다고 생각은, 분명 장애인을 하나의 인격적 존재로 보기보다 그저 장애인이란 똑같은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이 아닐까.

부산을 떨어가며 단지 몇몇 장애인의 감동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서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장애인을 더 곤혹스럽게 하는 일은 그로 인하여 그들은 불쌍한 존재이기에 그들에게 동정심을 가지는 게 마땅하고, 장애인은 시혜나 동정의 대상이라고 생각한다는 잘못이다. 아니면 다른 장애인도 화면 속의 주인공처럼 모든 역경을 스스로 극복하고 살아야한다고 부추기는 억지가 아닐까.

그 동안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그러한 일련의 인식은 장애인과 함께 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현실적으로 장애인이 소외되었던 현실에만 집중되었기에 역시 장애인과 함께 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점을 간과했던 결과다. 그런 까닭에 아직도 우리 사회가 장애인에 대한 시선이 그다지 곱지 않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삶에 여건이 이같이 열악한데도 이 땅의 수많은 장애인은 꿋꿋하게 제 삶을 열심히 산다. 그 동안 내가 만났고, 지금도 내가 관계하는 장애인단체의 활동을 보면, 이제 그들은 현실적인 고민과 맞서는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다. 그들이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아닌 우리가 사회 속으로 당당하게 들어가자는 외침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게 될 때 일반인의 생각도 자연스럽게 달라진다. 장애인은 더는 시혜나 동정의 대상이 아니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오랜만에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그에게 먼저 알은 체를 했다. 하지만 몇 마디 이야기도 나누지 못했다. 사실 그나 나나 서로의 시선을 마주하기에 멋쩍었다. 이웃해 살면서도 살가운 만남이 적었던 까닭이다. 안타까워하는 나의 시선에도 그는 두 손으로 기다시피 저만치 멀어져 갔다. 한 동안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제부터는 좀 더 밀착해서 그의 말벗이 되어야겠다.

그의 어께 위로 짱짱한 뙤약볕이 쏟아졌다.

|박종국에세이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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