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종 국
희랍신화 이야기다.
행복은 원래 몸이 약해 힘이 없고, 불행은 몸이 튼튼하고 힘이 세었다. 그래서 불행은 자기 힘만 믿고 만나기만 하면 행복을 못살게 구박했다. 행복은 불행의 등쌀에 못 이겨 피해 다니다가 마침내 하늘로 다시 올라갔다. 그리고는 주신(主神) 제우스와 상의했다.
제우스는 행복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고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네가 여기에만 머물겠다면 당장은 불행을 피해서 좋겠다. 그렇지만 너를 애타게 기다리는 인간도 생각해야 될 게 아니냐. 그러니까 이렇게 하려무나. 여기서 머물다가 꼭 필요한 사람이 생겼을 때 비로 곧바로 내려가도록 해라. 그러면 불행한테 붙들릴 염려도 없고 꼭 만나야 될 사람도 찾아갈 테니 좋지 않으냐?”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되어 인간은 좀처럼 행복을 만나기가 힘들고 불행만 자주 만나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추구하기가 힘든 행복에 대한 결론을 먼저 내려놓고 거기에 맞춰 만들어낸 우화다.
동서고금을 통해 많은 논자가 이러쿵저러쿵 저마다 행복에 대해서 한 말씀했다. 그렇지만, 아직 ‘이것이 행복이다’라고 딱 잘라서 매듭지어 놓은 게 없다. 도대체 행복이란 무엇인가?행복의 감도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그것은 인간의 내적욕망의 소산이다.
행복은 누구에게나 다 골고루 주어진 게 아닐뿐더러 원한다고 누구에게나 다 찾아오는 능사도 아니다. 부단한 노력에 의해서 찾아오기도 하고, 우연찮게 만나기도 한다. 반면에 붙들어도 하루아침에 잃어버리기도 한다.
영국의 어느 일간지가‘누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까’라는 제목으로 현상모집을 했다. 거기에서 1위로 당선된 건 놀랍게도 ‘모래성을 쌓는 어린아이’였다. 그 다음으로‘아기를 목욕시키는 엄마’였고, 3위는‘큰 수술을 가까스로 성공하고 막 수술실을 나서는 의사’였으며, 4위가‘작품의 완성을 앞두고 콧노래를 흥얼대는 예술가’였다.
아이가 모래성을 쌓는 일은 어른의 시각에서 볼 때 아주 하찮은 짓에 지나지 않는다. 불과 한두 시간 지나면 파도가 씻어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한테는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없다. 그들은 모래성 쌓기를 통하여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꿈을 쌓는다. 또한 어머니가 아기를 목욕시키고, 의사가 환자의 생명을 구하며, 예술가가 자기 열정을 쏟는 일도 마찬가지다. 하는 일 자체가 그들의 마음을 담뿍 쏟는 즐거움이기에 행복하다.
아이는 아이의 위치에서, 어머니는 어머니의 위치에서, 의사는 의사의 위치에서 자기 능력범위 내의 일에 흠뻑 빠졌기 때문이다.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일만 해도 충분한 행복을 맛본다. 그러나 아기를 목욕시키면서 그 아이를 대통령이나 재벌총수로 키워야겠다고 생각하는 어머니는 없다. 의사도 환자를 살리겠다는 일념뿐이고, 예술가도 자기의 혼을 심겠다는 마음뿐이다. 그는 편작의 명성이나 일확천금을 노리겠다는 욕망은 없다. 설령 나중에 그런 걸 얻었다면 그것은 과정에 충실하였던 결과론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엉뚱한 욕심을 가지지 않았다.
이런 사실을 가늠해 볼 때 행복을 바라는 데 크게 세 가지 공통점을 발견한다. 첫째, 하는 일 자체가 하고픈 마음을 담뿍 담는 즐거움의 대상이어야 한다. 다음으로 자기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일이어야 하고, 마지막으로 엉뚱한 욕심을 가지지 않아야 한다.
행복이 아무리 추상명사로 운위된다지만, 그것은 결코 먼 데 거처하는 부유가 아니라 우리 생활 주변 가까이에서 함께 한다. 더구나 커다란 물상에 존재한다기보다 차라리 자그마한 데 묻었다. 다만 쉽게 느끼지 못할 뿐이다. 그렇기에 당장에 행복을 구가하지 못했다고 해서 조급할 까닭이 없다.
그럼에도 아직 이 땅의 행복은 몸이 약하고 힘이 없다. 그러나 수많은 불행은 시류를 탓하지 않고 거뜬하다. 지난한 삶에도 행복천사가 언제 맘 놓고 나다닐 세상이 될까마는.
|박종국에세이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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