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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장을 지낸 이회성(60)씨는 97년 대선을 앞두고 형 이회창 전 신한국당 후보의 선거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이어 세풍·병풍·총풍 등 당시 대선판도를 뒤흔들었던 대형 사건에서 그의 이름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형이 '대쪽 판사' 이미지를 내걸고 대선 가도를 달릴 때 온갖 '흙탕물'에 발을 담그는 역할은 고스란히 동생에게 떠넘겨진 셈이다. 대선 당시 이회성씨에서 주어진 첫번째 임무는 형의 '얼굴마담'. 97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중 이 후보가 일일이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을 대신 만나 격려하고 '눈도장'을 찍을 기회를 준 것이다. 이 후보를 가장 닮은 친동생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두번째 임무는 대선자금을 지원하는 기업인들을 만나 돈을 걷는 일이었다. 이른바 세풍 사건을 배후에서 이끈 것. 선거에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거나, 불리한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도 그의 몫이었다. 그가 병풍이나 총풍 사건에서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론조사 의뢰도 그의 주요 업무 중 하나였다. YS 정부에서 김현철씨가 했던 역할을 그대로 답습한 셈이다. 여론조사는 그 결과가 상대방 후보에게 알려지면 오히려 역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역대 선거 때마다 후보의 친인척이나 최측근이 전담해 왔다. [세풍] '이회성-서상목-이석희'... 세풍 3인방 최근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가 불법도청한 테이프와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이회성씨의 역할이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고 있다. 이씨가 삼성의 대선자금 전달 창구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이씨는 서상목 전 한나라당 의원,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과 함께 '세풍 3인방'으로 꼽힌다. 99년 대검 중수부가 발표한 세풍사건 중간수사 결과에 따르면, 이씨는 97년 대선 당시 소공동 롯데호텔 1510호와 1512호에서 이석희 차장과 함께 대선자금 모금을 논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30억원을 모금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씨와 서씨가 핵심 멤버로 활동한 이회창 후보 비선조직인 이른바 '부국팀'이 세풍을 기획한 것은 97년 9월경이다. 부국팀은 이 후보 아들 이정연씨 병역문제로 지지율이 떨어져 대선자금이 잘 걷히지 않자, 국세청을 동원해 대선자금을 거두어야 한다는 취지의 특단의 보고서를 작성해 이회창 총재에게 보고하게 된다. 세풍사건 선고 이후 당시 미국에 가 있던 이회창씨는 동생 회성씨와의 통화에서 "형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게 되었다"면서 "현재 국내 돌아가는 상황이 매우 유동적이기 때문에 참고 견디면 다시 희망찬 날이 올 것"이라고 위로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병풍] 이회성, 전태준 전 의무사령관을 만나다 지난 2002년 7월 22일 천정배(현 법무장관) 당시 민주당 의원은 국회 본회의에서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의 장남 이정연씨에 대한 '병역비리 은폐대책회의'에 이 후보의 동생 회성씨와 사위 최명석 변호사가 참석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틀 뒤 같은 당의 신기남 의원은 97년 대선 시기에 이회성씨가 당시 국군 의무사령관이었던 전태준씨와 공모해 이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은폐를 공모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신 의원은 "올해 2월 16일 세풍의 주범인 이석희씨가 미국 FBI에 긴급체포된 직후 한나라당이 검찰수사에 대비해 작성해둔 총 11페이지의 내부문건에 따르면 97년 대선을 앞둔 시기에 이회성씨는 소공동 롯데호텔 1510호, 1512호를 안기부의 안가와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고 여기에서 이석희씨의 소개로 당시 국군 의무사령관이었던 전태준씨를 만났다는 사실이 나와 있다"며 이 문건을 공개했다. "세풍 모의를 변명하려다 병역비리은폐의 흔적을 고백한 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태준 전 의무사령관은 이회성씨를 만난 것은 시인하면서도 '병역비리 은폐 대책회의'와 관련한 의혹에 대해서는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전 전 사령관은 "지난 97년 10월경 이회성씨를 만난 것은 사실이나 은폐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당시 대선 때여서 누군가의 소개로 만났지만 소개자와 만난 이유는 곁가지이므로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회성씨는 그 자리에서 '부산 쪽 아는 사람들이 있으면 (선거) 운동 좀 해달라'는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역 육군 장성이, 유력 후보의 동생과 만나 대통령선거 지원과 관련된 대화를 나눴다는 점에서 군의 정치개입이라는 시비를 불러왔고, 이회창 후보의 아들 병역문제가 정국을 뒤흔들던 상황에서 이회성,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 등이 '안기부 안가'처럼 생각하고 은밀하게 이용해온 장소에서 그들을 만났다는 대목에 대해서도 많은 의문이 제기됐었다. [총풍] 이회성, 총풍 3인방의 중국 여비 500만원 지원 97년 12월14일 당시 국민회의 북풍대책팀이 입수한 첩보는 상상을 초월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안기부의 한 고위간부가 12월초 베이징을 방문해 북한측 대선공작반에 대선 직전 무력도발을 요청했다. 96년 4·11 총선 때의 판문점 무력시위 같은 것이다. 대선 직전인 12월15일∼17일 사이에 북한군 2∼3개 소대가 휴전선에서 고의로 무력충돌을 일으킬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대선 기간 동안 '조용했다'. 그러다 98년 10월1일 <동아일보>의 특종보도로 총풍 3인방의 '판문점 총격 요청 사건'이 실체를 드러냈다. 총풍 사건의 핵심은 오정은(청와대 행정관)·장석중(대북 사업가)·한성기(진로그룹 장진호 회장 개인 고문) 3인이 대선후의 자리를 염두에 두고 베이징의 북한 대선공작반 인사들과 만나 이회창 후보를 당선시킬 목적으로 판문점에서의 총격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특히 한성기씨는 평소 알고 지낸 이회성씨의 주선으로 오정은 국장과 함께 이회창 후보에게 '대선전략보고서'를 전달해왔다. 한씨는 또 장석중씨와 함께 베이징에 있는 북한측 대선공작반 인사들에게 판문점 무력시위를 요청하러 갔을 때 이회성씨로부터 여비조로 5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안기부와 검찰은 대북통인 박관용 전 한나라당 의원을 유력한 배후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한성기씨가 베이징에서 이회성의 핸드폰으로 직접 통화를 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후 두 사람의 커넥션이 드러남에 따라 검찰은 이회창 후보가 '판문점 총격 요청 사건'에 대해 사전 혹은 사후에 보고받았을 것으로 보고 수사의 초점을 이회성씨에게 맞췄다. 한편 대법원은 2003년 9월 "한씨 등이 북측 인사를 만난 것은 인정되나 무력시위를 요청하기로 사전에 조직적으로 모의한 증거는 없다"는 원심을 확정한 바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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