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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공씨와 같은 안기부 출신의 극단적 행위는 98년 3월에도 있었다. 권영해 전 안기부장이 그 인물이다. 권영해 전 안기부장은 98년 3월 21일 서울지검 청사에서 이른바 '북풍사건'을 조사를 받던 중 흉기로 배를 세 차례 그으며 자살을 시도했다. 이런 두 안기부 출신 인사들의 '자해' 행위의 배경과 상황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이들은 안기부를 떠나며 훗날을 위해 빼내가서는 안 될 중요 문건을 챙겨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 문건은 협상 혹은 협박용으로 사용됐지만 모두 실패했다. 이런 결과로 상황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때 과감하게 흉기를 이용해 자해를 했다. 그리고 두 경우 모두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다. 부장-직원 이구동성 "국익을 위해 끝까지 비밀 지키겠다" 권영해 전 안기부장의 자해 소동의 배경은 97년 대선 때의 '북풍사건'. 당시 권영해 안기부장은 직원 200명을 선발해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의 당선을 돕도록 했다. 또한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해 북한의 대남공작을 이용하는 등 '북풍공작사건'을 지휘했다. 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진행될 때 권 전 안기부장은 자해를 했다. 당시 이를 두고 "검찰 수사가 가혹했다", "수구세력의 저항이고 동정을 유발하기 위한 행위다"라는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북풍사건의 핵심 키를 쥐고 있는 전 안기부 수장의 행위로는 부적절했다는 여론이 높았다. "나만 살기 위해 변명을 하면 국익에 손상을 끼치며 일파만파의 결과를 야기하고, 말을 안 하면 진상을 은폐하는 것으로 오해받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억울함과 답답함을 느껴 자살을 기도했다. 정보기관의 수장으로서 알게 된 비밀은 무덤까지 갖고 가겠다" 자살에 '실패'하고 병원에 입원 중이던 권영해 전 안기부장의 말이다. 이런 말은 당시 부하 직원이었던 공운영씨에 의해서 비슷하게 되풀이 됐다. 아래는 공씨가 자살에 앞서 공개한 자술서의 일부다. "모든 것을 낱낱이 폭로함으로써 사회가 다시금 제자리를 찾고 과거를 청산하는데 있어 다소나마 역할을 하고도 싶었지만 이제 모든 것을 주검까지 갖고 가겠습니다. 염려했던 분들 안도하시겠지만 나라의 안정을 위해서 참을 뿐입니다." 둘 모두 국익을 위해 비밀을 끝까지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비밀'은 세상에 일부 혹은, 모두 공개됐다.
미림팀장 공운영씨는 X파일과 관련 자술서에서 "언젠가는 도태 당할 지 모른다는 생각이 앞서 이를 대비, 중요 내용(문건)은 은밀 보관하기로 작심 끝에 일부 중요 내용을 밀반출 임의보관"했다고 밝혔다. 이어 공씨는 "재미 교포 박씨가 문건을 가지고 삼성과 거래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권 전 안기부장 역시 새롭게 들어선 김대중 정부를 압박하고 자신의 생존을 위해 '대북X파일'을 챙겼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가 임박할 때 정부 고위 인사를 만나 "북풍수사가 확대될 때 새정부에 타격을 주는 결정적인 것을 터뜨릴 수 있다"고 '협박'했다. 이미 세상에 알려진 바와 같이, 두 전직 안기부 직원들은 협상이든 협박이든 모두 '거래'에 실패했다. 그리고 세상의 비난이 자신들에게 몰리고, 검찰의 조사 압박이 들어올 때 자해를 했다. 범죄 전문가들은 이런 이들의 자해에 대해 여론의 동정심을 받기 위한 계산된 행동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공범'으로 몰린 사람이 자해를 시도하는 경우는 ▲사건은폐 ▲결백 주장 ▲상처난 자존심 회복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98년 권영해 전 안기부장은 자해 후에도 구속된 것에서 알 수 있듯, 사건을 은폐하지도, 결백을 입증하지도, 자존심을 회복하지도 못했다. 현재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공운영씨는 자신이 X파일을 거래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재미교포 박모씨는 "공씨가 국정원 복직을 청탁하면서 테이프를 넘겨주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공운영씨는 자해 후에 결백을 입증하고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 지 지켜볼 일이다. 이들의 또다른 공통점은 정보기관의 위상에 큰 오점을 남겼다는 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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