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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 아저씨 팬인데." 3일 난 광화문 거리에서 음반을 파는 한 사람을 찾아갔다. 비가 내렸던 까닭인지, 그가 없길래 바로 앞 음식점에 들어가 물어보았다. "예. 요새도 나와요. 글쎄요. 오늘 아직 안 나왔네." 그가 '요새도 그 앞에 나오느냐'는 질문에 아주머니는 그렇다고 대답을 해주었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던 젊은 여성이 '나, 그 아저씨 팬인데'라는 말이 돌아서는 내 등 뒤로 강하게 꽂혔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지난 7월 12일 인턴 과제로 아시아나 노조 집회를 취재하러 가는 길이었다. 첫 과제에 대한 부담감으로 시달리는 와중에도, 무엇에 끌린 듯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보게 되었다. 어쩌면 건방지게도 사지 멀쩡한 몸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에 알 수 없는 우월감을 느끼며 '열심히 사세요'라는 격려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날 그 만남에서 격려를 받은 것은 그가 아니라 나였다. 뿐만 아니라 그와의 만남은 내게 또 하나의 고정된 생각을 깨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가 시간날 때마다 썼다는 노트. 그 노트 가운데는 퇴근하는 사람들 행렬을 보면서 '태근(퇴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는 모른다'라는 내용이 쓰여진 것을 보았다. 광화문에서 출퇴근하는 이들이 그를 '힘들겠구나'라고만 느낄 뿐 정작 그가 그들을 향해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을 놀라워한 내 자신이 무척이나 당황스럽게 느껴졌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그와 대화를 하던 도중 한 젊은 여성이 손을 크게 흔들며 인사하고 지나갔다. TV에서 멀쩡한 젊은 여성들이 중증 장애인을 기피하는 편협한 장면만을 자주 보았던 탓인지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에게 '잘 아는 사람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냥, 오가면서 인사하고 그래. 저 사람이 날 보면 살아갈 힘이 난데." 살아갈 힘이 난다고, 그렇구나. 열심히 살아가는 그를 보면 때로 멀쩡한 몸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 쉽게 좌절하는 것만으로 이미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일 게다. 그를 보고 힘을 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때론 그들처럼 쉽게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는 그는 불만이 있지 않을까. "불만, 어렸을 때는 있었지. 근데 몇 년 전부터 장사 시작하면서 없어졌어. 불만 가지면 뭐해. 나만 힘들지."
"음반은 많이 팔려요?" 그는 '일년에 00개가 팔린다"며 많이 팔린다고 했다. 내가 듣기로는 결코 많은 개수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는 '많이 팔린다'며 좋아했다. 그 말을 듣고 현실에 쉽게 만족한다고 생각했건만, 그가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들려준 말은 현실에 만족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각인시켜주었다. "열심히 하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어. 그러면 다 돼." 그 목소리는 그가 현재에 만족하면서도, 아직도 더 큰 목표를 향해 나가고 있다는 듯 들렸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여전히 로또 한방으로 슈퍼맨이 날아와 나를 들쳐 업고 빌딩 정상으로 가기 바라는 내게 주먹을 불끈 쥐고 '그래 한 번 세상과 한번 붙어보자'라는 강한 의지를 다지게 해준 가슴을 요동치게 한 격려였다. 그는 내게 '연봉 1억원 노조 파업'을 배 아파하며 비난하기보다 그 시간에 스스로 열심히 노력해 무언가를 이루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것을 가르쳐준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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