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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년을 바다와 함께 살아온 노인의 삶

한국작가회의/[문학회스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5. 8. 10.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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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올라오면 좋고, 적으면 다음에..."
50여년을 바다와 함께 살아온 노인의 삶
텍스트만보기   김창근(mirex) 기자   
햇볕이 쏟아지는 해변이 한가롭다. 모래사장으로 넓게 펼쳐진 그물을 손질하는 노인의 손이 그나마 바쁘다. 바다에 그물을 펼치기까지는 옷에 한땀 한땀 바느질하듯 그물을 손질해 놓아야 한다.

▲ 물이 빠진 간조시간에 그물일을 한다.
ⓒ2005 김창근
영종도, 용유도, 삼목도, 신불도 등 섬을 매립해 인천공항이 들어섰다. 한때는 각기 다른 섬이었는데 이제는 하나의 몸이 된 것이다. 그러나 한 몸이 된 지도 10년이 가까운데 용유도, 영종도 따로 불리고 있다. 항상 뒷북치는 우리나라 행정이 여기서도 여전하다.

용이 난다 해서 붙여진 이름 용유도의 을왕리 해수욕장은 이미 수도권 시민들의 휴식처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곳 을왕리에서 언덕 하나 넘으면 모래가 곱고 백사장이 훨씬 넓으면서도 호젓한 해변이 나온다. 이곳이 왕산 해변이다. 이곳에서 바다에 기대 사는 노인이 있다.

▲ 힘든 뱃일은 노부부가 같이 나와서 한다고 한다.
ⓒ2005 김창근
어릴 적부터 바닷일을 시작해 어연 50년이 흘렀다. 바다가 결혼을 시켜줬고, 바다가 여섯 딸을 학교 보내고 출가시켰다고 한다.

그물을 손질하고 바다로 나가는 노인의 발걸음이 가볍다.

"많이 올라오면 좋고, 적게 올라오면 다음에 잡으면 되지. 그게 인력으로 되는 일인가. 주는 대로 거두면 되지."

바다와 함께 살아온 노인이 겪은 삶의 철학인 듯하다. 길이가 10m 정도 되는 배에 올랐다. 모터가 굉음을 내고 배는 바다를 시원하게 가르며 달린다. 그물을 쳐놓은 곳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한 10여분 물살을 가르니 군데 군데 부표가 보인다. 그물을 50m 정도 쳐놓고 끝에는 통발같은 것이 양쪽에 달려 있다. 마치 가을산에 뱀그물을 쳐놓은 모양이다. 첫 번째 통발을 끌어올렸다. 노인 혼자서 일하기에는 버거워 보인다.

▲ "많이 올라오면 좋고, 적게 올라오면 다음에 또 잡으면 되지. 그게 인력으로 되는 일인가."
ⓒ2005 김창근
"마누라가 나와서 거들지. 오늘은 안 나왔지만. 만날 같이 나가자고 그래."

큰 물고기가 통발 위로 튀어 오른다. 40~50cm는 돼 보이는 숭어다.

"농어, 광어, 우럭이 올라오는데 요새는 숭어가 잘 올라오지. 숭어가 흔해서 값이 없는데 회맛은 좋다니까. 난 숭어만 먹어."

첫 번째 통발에는 숭어 4마리, 두 번째 통발에는 숭어 3마리와 어른 손바닥 두 개만한 병어 3마리가 올라왔다. 애기 손바닥만한 광어가 올라왔는데 커서 다시 오라고 바다에 놓아주었다.

근처에서 물일하는 친구 배를 보자 달려가 일을 거든다. 좀 전의 통발보다 꽤 큰 통발인데 영 신통치 않다.

"누가 와서 먼저 털어갔구만. 이 매듭은 내가 맨 매듭이 아닌데…."

바다에도 도둑이 있는 모양이다. 힘들게 물일하면서 도둑맞은 빈 그물을 올리다 욕지거리가 나올 법도 한데 전혀 내색이 없다. 한없는 바다의 너그러움이 이젠 삶이 된 모양이다.

강화도에서 태어나 열네 살부터 바다에 나가고 스무 살 때에 작은 배의 주인이 되었단다. 한때는 십여 명을 부리는 선장으로 젊은 날을 보내다가 이곳 왕산에 정착한 지 어언 10년. 그동안 딸 셋을 시집보내고 손자 다섯을 보았다고 한다.

돌아오는 뱃길에 노인은 핸드폰으로 전화를 한다.

"병어 올라왔어요. 준비해 놓을테니까, 오셔."

직접 잡아 파는 횟집의 장사가 이런 모양이다. 대부분 단골들. 특별히 주문을 하고 가면 바로 연락해서 신선한 활어를 내놓는다.

왕산해변에 줄지어 선 횟집들은 바다 옆에 있어서 경치가 그만이다. 바닷물이 바로 옆에서 넘실거리고, 해질녘이면 조물주가 그려놓은 황홀한 그림이 펼쳐진다. 회하면 떠오르는 밑반찬을 여기서는 볼 수 없다. 말린 망둥어, 숭어 조림, 잡어튀김, 박하지게장, 숭어알구이, 게찜 등의 자연산 밑반찬만으로도 감동이다.

▲ "어디 술 끊는 약 좀 없대요?" 티격태격하시는 노부부 모습이 시골 부모님 같다.
ⓒ2005 김창근
횟집에 도착해서도 노인의 손길은 바쁘다. 성질 급해 금방 죽어버리는 병어 손질하고 수족관에 오늘의 조과(釣果)를 넣는다.

"뭐 이 나이에 바랄 게 있겠어. 아직 시집 안 간 딸들 시집이나 보내면 한갓지겠지."

열아홉에 시집 와 살림살이 챙기고 바다일 하는 남편 거든 할머니는 바다처럼 인상이 선하다.

"애고 우리 영감 술 좀 고만 먹었으면 좋겠는데. 어디 술 끊는 약 좀 없대요?"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 같다. 바다에 기대 사시다 바다에 누우실 노인들의 모습이 떨어지는 석양처럼 아름다웠다.

▲ 용유8경중 하나라는 왕산해변의 노을. 노부부의 황혼처럼 아름답다
ⓒ2005 김창근
이 글은 신공항하이웨이(주)에서 발행하는 사외보 겸 여행정보지 '하이블레스'에도 실린 글입니다.
2005-08-09 18:12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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