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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운해에 둥실 떠있는 한라산이여!"

한국작가회의/[문학회스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2. 23.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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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운해에 둥실 떠있는 한라산이여!"
한라산 입산기(6)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김민수(dach) 기자   
ⓒ2004 김민수
백록담이 이제 한 눈에 들어옵니다. 그 속내를 보려면 아직 한참을 올라가야 하지만 이미 발아래 펼쳐진 백설의 바다와 구름의 바다가 한라산을 두둥실 운해에 올려놓았습니다.

너무도 푸른 하늘은 차라리 바다입니다. 나도 모르게 '아, 운해에 둥실 떠있는 한라산이여!'하는 감탄사가 튀어나왔습니다.

운해에 떠있고, 동시에 눈부시도록 푸른 바다를 이고 있는 한라산이 신들의 정원인 이유를 알 것만 같습니다.

ⓒ2004 김민수
자꾸만 걸어왔던 길을 돌아보며 좌우를 살펴봅니다. 지나온 길에 대한 미련 때문이 아니라 아직 보지 못한 풍경들, 그리고 지금 바라보지 않으면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풍경들 때문에 자꾸만 걸어왔던 길을 돌아옵니다.

한 등산객이 친절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이렇게 사방이 보일 때 봐야지 금방 보이다가도 구름에 가려서 안보이기 일쑤거든요."

ⓒ2004 김민수
그 이야기를 들으니 가뜩이나 천천히 걷던 걸음의 속도를 더 낮춥니다. 정상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언제나 보이려나 열심히 걸어왔지만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인데 경쟁하는 것도 아닌데 쉬었다 가자 생각하고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들, 바람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모습을 봅니다.

ⓒ2004 김민수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녘의 땅
어둠 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검붉은 저녁 햇살에 꽃잎 시들었어도
살 흐르는 세월에 그 향기 더욱 진하다

<중략>

아, 통곡의 세월이여
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이여!


단 한번도 한라산에 올라오지 않았던 그 시절에 왜 그 노래만 부르면 그렇게 마음이 울컥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제주의 유채 꽃이야 60년대부터 심기워졌다고 하니 제주의 아픈 역사를 노래하고 있는 노랫말은 하나의 상징으로 보아야겠죠.

한라산 계곡마다 저 깊은 숲마다 오름들마다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억울하게 죽어갔을까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울먹해 집니다.

ⓒ2004 김민수
서쪽을 바라보았습니다. 따사로운 햇살에 마을도 희미하게 보이고 비닐하우스에 반사된 햇살이 저 곳이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사람. 아름다울 때에는 한없이 아름답다가도 잔인해질 때에는 한없이 잔인해지기도 하고 포악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서에는 사람을 가리켜 '질그릇'이라고 이야길 하는가 봅니다. 질그릇은 깨지기 쉽고, 연약하고, 천합니다. 그러나 그 질그릇에 보배를 담는 순간 그 존재는 소중한 존재로 변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그 담고 있는 것이 보배가 아닌 썩어질 것이면 결국 깨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이죠.

ⓒ2004 김민수
다시 정상을 바라봅니다. 돌아온 길도 보고 걸어가야 할 길도 봅니다. 그래야 서 있는 곳이 어디쯤인지 알 수 있습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에 서있는 것인지, 어떤 길을 달려온 것인지 알지도 못하고 허둥지둥 살아가는 삶은 불행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저렇게 돌아온 길도 돌아보고, 갈길도 다시 한번 바라보고, 서있는 자리도 돌아보면서 천천히 가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라는 시간이 줄어들지 않을 것입니다.

ⓒ2004 김민수
이제 가파란 언덕길이 시작되니 등산객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나무계단과 기둥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맑은 날이면 그저 그러려니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른바 마(魔)의 500M입니다.

작년 겨울 너무 세찬 바람 때문에 이 곳에서 포기할 뻔했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아 엉금엉금 기어서 올라가던 그 길을 오늘은 천천히 오르며 사방을 전망하며 올라가니 똑같은 길도 또 다르게 보입니다.

ⓒ2004 김민수
그래요. 같은 풍경을 잡으려고 해도 비슷한 풍경은 잡힐지 몰라도 똑같은 순간은 잡히질 않습니다.

펼쳐진 운해를 한참을 바라보는 사람들, 그리고 마지막 힘을 모아 백록담을 오르기 위해 신발끈을 조이는 사람들 모두 얼마 남지 않은 정상의 백록담을 맞이하기 위해 진지하게 준비하는 것입니다.

삶도 때로는 잠시 휴식을 취하며 운동화 끈을 조이듯 다시금 질끔 동여매야 할 때가 있습니다. 조금 쉬느라 쳐지는 것 같지만 운동화 끈을 조여 매면 발걸음이 산뜻하고 한결 가벼워지듯 우리네 삶도 참 휴식을 취하면 한결 가벼워지겠죠?

ⓒ2004 김민수
제주의 북쪽을 바라봅니다. 저 멀리 운해 너머 남해의 섬까지도 아련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언젠가 세화바다에서 날씨 좋은 날, 마치 신기루가 보이듯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섬이 지척에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육지와 오히려 가까운 섬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제주가 그렇게 육지와 먼 거리가 아닌 것만 같습니다.

ⓒ2004 김민수
다시 제주의 남쪽을 바라봅니다. 끝없이 펼쳐진 운해에 다시금 감탄사가 흘러나옵니다.

'아, 운해에 둥실 떠있는 한라산이여!'

저 하늘 끝에는 저 바다 끝에는 어떤 세상, 어떤 삶이 펼쳐지고 있는 것인지 한 마리 자유로운 새가 되어 세상 끝까지 날아보고 싶은 어린아이와 같은 상상을 합니다.

2004/02/21 오후 11:16
ⓒ 2004 OhmyNews
김민수 기자는 제주의 동쪽 끝마을에 있는 종달교회를 섬기는 목사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실리지 않는 그의 글은 <강바람의 글모음>www.freechal.com/gangdoll을 방문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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