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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일부터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됩니다. 겨울 방학이라고 아이들이 집에서 뭉개더니, 개학이라고 해서 며칠 학교에 나가는가 싶더니, 또 봄방학이라는 게 있어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뭉개기 연속입니다. 우리 집 늦둥이 은빈이는 하루에도 "심심하다"는 말을 열댓 번 하는가 봅니다. 학교에 갈 일이 없으니 세수도 잘 안하고 하루종일 내복만 입고 지냅니다. 오늘 아침은 오빠가 라면을 한 젓가락 뺏어 먹었다고 한 시간은 더 울었습니다. "은빈아, 그만 징징거려! 아빠는 네가 징징거리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얼른 그쳐!" 그래도 은빈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고 거실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훌쩍거립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소리를 질렀습니다. "넝쿨이 가서 빗자루 갖고 와!" 넝쿨이가 놀라서 빗자루를 찾는 시늉을 합니다. 그러자 은빈이가 사태를 짐작했는지, "아빠, 죄송해요. 안 그럴게요!" "뭘 안 그런단 말이야?" "이제 징징거리지 않을게요."
엊그저께는 CBS <이것이 인생이다>에서 나를 취재하려 와서 하룻밤을 묵고 갔습니다. 이틀 동안 인터뷰에 시달렸습니다. 아이들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자다 일어난 은빈이를 불렀습니다. 기자가 은빈이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마이크를 들이대고 물었습니다. "은빈아 아빠가 점점 유명해지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좋아요. 아빠가 유명해지니까 교동을 알릴 수도 있고, 많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으니 좋은 것 같아요." "아빠가 무섭지 않니?" "아뇨. 가끔 아빠한테 매를 맞지만 무섭지는 않아요." "매를 맞는데 왜 안 무서운데?" "내가 많이 잘못했을 때 매를 맞는 것이니까 괜찮아요. 아빠가 무섭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솔직히 뜨끔했습니다. 취재진이 가고 나서 제가 은빈이에게 물었지요. "은빈이 너 오늘 기자님하고 인터뷰 잘했니?" "네, 잘한 것 같아요." "떨리지 않았어?" "하나도 안 떨렸어요. 재밌었어요."
오늘 아내가 외출하고 돌아와서 많이 고단했던지 앓는 소리를 내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은빈이가 하도 꼬질꼬질해서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오랜만에 목욕을 시켜주기로 했지요. 여느 날 같으면 툴툴거릴 은빈이가 오늘은 고분고분하게 옷을 벗었습니다. 머리를 감은지 오래되어 머리카락이 가느다란 철사 같습니다. 하는 수 없이 빨래비누로 머리를 감겼습니다. 구정물이 계속 나옵니다. 때수건에 비누칠을 한 다음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온 몸 구석구석을 문질러 댔습니다. 물로 헹군 다음 다시 때 수건으로 문질렀더니 때가 국수 가락처럼 나옵니다. "아빠, 때 많이 나오지요?" "그걸 말이라고 하냐? 완전 국수 가락처럼 줄줄이 나온다." "아빠, 그러면 오늘 밤 때 국수 삶아 먹을까요?" "너는 맨날 먹는 것 밖에 모르냐? 도대체 며칠 만에 목욕하는 거냐?" "몰라요. 오래되어서 까먹었어요." 30분은 넘게 은빈이와 씨름을 했는데도 때는 그칠 줄 모르고 나왔습니다. 엄청난 양이었습니다. 나도 지쳤습니다. "은빈아, 오늘은 이것을 끝내자. 그리고 내일 저녁 다시 씻자. 그럼 1차 공사 끝!"
드라이어기로 은빈이 머리를 말려주었습니다. 빗으로 머리를 빗는데 머리가 엉켜서 잘 빗겨지질 않았습니다. 목욕을 하고 나니 은빈이 얼굴이 달덩이 같이 환하고 벌거벗은 몸은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그러자 옛날 나의 유년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개학이 되면 선생님이 용모검사 일종의 때 검사를 하셨는데, 나는 매번 선생님의 눈총을 받아야 했습니다. 나는 읍내에 살지 않고 20여 리를 걸어다녀야 하는데 산골마을에 살았기에 대중목욕탕을 한번도 가 보지 못했습니다. 집에서 농사를 지으면 소여물을 데워주기 위해 가마솥이 있었을테고 그러면 가마솥에 물이라도 데워서 대충 씻을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집은 밭 한 뙈기 없이 어머니가 낡은 재봉틀을 돌려 간신히 입에 풀칠 할 정도였으니 목욕은 언간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겨울에는 개울 우물터에 가서 꽁꽁 언 얼음구멍에서 고양이 세수를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겨울철이면 하도 씻지 않아 귀밑에는 때가 새카맸습니다. 손발은 까마귀였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이를 닦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은 때가 많은 아이들 귀를 잡아당기며 복도에 나가 꿇어앉으라고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여자애들이 힐끔힐끔 쳐다봅니다. 표현을 할 수는 없었지만 그 모멸감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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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9 오후 5:16 ⓒ 2004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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