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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사진 아래에 쓰여진 글이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실려있다. 동영상 '하이라이트'란다. 대통령은 마이크를 잡고 고개를 젖힌 채 환하게 웃고 있다. 21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유공자 격려오찬 자리였다. 대통령은 부산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이 "계속 나를 칭찬하더라"면서 민망스레 강조했다. "의례상으로 하는 공치사가 아니라 진짜 감동한 사람들의, 압도된 사람들의 치사였다." 아세안 정상회의에서도 정상들의 칭찬이 이어졌다며 덧붙였다. "통역이 'APEC을 훌륭히 치러낸 데 대해 축하한다'고 하는데, 나는 듣기에 '죽여줍디다' 이렇게 들었다." 물론, 대통령의 발언은 회의 '유공자'들에게 던진 농담일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외국 정상들의 칭찬을 "죽여줍디다"로 들었다는 발언을 했고, 청와대가 그 사실을 부각해 올린 모습은 그저 지나치기 어렵다. 대통령의 민망스런 발언과 청와대의 홍보 까닭은 단순하다. 대통령이고 청와대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주도해나가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길목에서 이 땅의 농민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그저 죽어간 게 아니라 바로 노 대통령이 최종 책임지고 있는 공권력에 맞아죽었기 때문이다. 오해 없기 바란다. 사태를 과장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선동할 뜻도 전혀 없다. 다만 사실을 사실대로 묻고 싶을 따름이다. 두 농민을 때려 죽여 놓고 감히 그런 소리가 나오는가.
아니다. 아무리 농담이라도 해서는 안 될 상황이 있다. 지금이 그렇다. 오늘 이 순간까지 노 정권에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평생을 소작농으로 살아간 60대 후반 농부가 살천스레 맞아죽었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무엇을 했는가. 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매우 불행하고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번 일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소재를 밝혀야 하며, 또한 규명된 원인과 밝혀진 책임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 뒤 소식이 감감하다. 무엇 때문인가. 원인이 아직 규명되지 않아서인가. 딴은 대통령의 이어진 발언은 적잖은 시사점을 준다. 대통령은 "돌아가신 농민(의 죽음)도 억울하고 안타까운 죽음이지만 (시위) 현장에서 대응하는 전·의경도 우리의 자식"이라면서 "이 같은 시위 문화가 계속된다면 앞으로도 돌발사태가 되풀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강조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책임을 묻기 위해 원인을 규명한다면서 양비론을 펴는 자세가 과연 옳은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두 농민이 공권력의 손에 맞아 죽었다는 데 있다. 양비론을 펼 때가 결코 아니다. 대통령은 또 "평화적인 집회 및 시위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제도적·문화적인 근본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근본적 방안이 무엇일까. 농민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살 길을 터 주는 데 있다. 그들의 평화적 절규에 정부 당국이 귀 기울이는 데 있다. 그렇다. 농민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호소를 모르쇠한 정권이 이른바 '과격 시위'의 원천이다. 이른바 '과격시위'의 원천은 호소를 모르쇠한 정권 대통령은 농민 시위와 관련해서도 "반대하고 시위할 만한 이유가 있지만 세계화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며 "어떤 영웅도 시대와 역사를 거꾸로 돌리지는 못한다"고 밝혔다. 예서 거듭 명토박아둔다. 노 대통령에게 영웅을 요구하지 않는다. 세계화의 흐름을 거꾸로 돌리라는 요구도 아니다. 모든걸 "모 아니면 도"로 단순화하지 말라. 문제는 세계화로 고통 받고 있는, 죽어가고 있는 민중이다.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할 책임은 대통령에 있다. 최소한 살아갈 수 있게 할 의무가 있다. 두 농민을 죽여 놓고 언죽번죽 말할 수 있는가. "죽여줍디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하이라이트'로 써넣을 수 있는가. 결연히 묻는다. 대통령은, 청와대는, 진정 두 농민의 죽음 앞에 자성하고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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