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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태워야 할 저 '검은 장막'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3. 16.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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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태워야 할 저 '검은 장막'
[손석춘 칼럼] 수구세력이 마음 깊숙이 집어넣은 '분열'을 이겨갈 때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손석춘(ssch) 기자   
봄을 선구하는 불꽃이 타오른다. 방방곡곡 자신을 태우는 '분신'의 불꽃, 촛불이다. 그렇다. 한낮의 쿠데타가 텔레비전으로 생중계 된 까닭이다. 임기 말기의 썩은 국회가 또렷한 명분도 없이 대통령 직무를 정지시키는 풍경을 우리 모두는 생생하게 지켜보았다. 그 결과다. 쿠데타의 아수라장에서 그동안 우리 눈을 가리고 있던 장막이 한 순간에 찢어졌다.

보라.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수구세력의 정체를. 아무리 당 쇄신의 '분칠'을 해도 지지도가 오르지 않자 서슴지 않고 쿠데타를 감행하지 않던가. 그 쿠데타에 민주당을 앞세운 전략도 '성공'했다. 저들이 누구인가. 16대 국회 초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노동자의 작은 파업에도 언제나 '국가신인도'나 '해외투자 위기'를 들고나와 눈 부라리던 저들 아닌가.

쿠데타는 그 모든 '우국충정'이 새빨간 거짓이었음을 한 순간에 입증해주었다. 자신들의 당선과 '입신출세'를 위해서라면 '국가 위기'나 '나라 망신'마저 감수하겠다는 저들이 과연 국회의원이라는 이름에 값할 인물들인가.

그랬다. 수구세력들이 자신의 정체를 또렷하게 드러낸 고백, 바로 그것이 '탄핵 쿠데타'다. 탄핵이 참으로 고마운 까닭이다. 게다가 이 땅의 수구세력이 비단 한나라당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저 민주당조차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민주주의마저 짓밟는 부라퀴들임을 단숨에 깨우쳐주지 않았는가.

또 하나 드러난 장막은 언론이다. 탄핵가결 바로 다음날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는 마치 합창이라도 하듯이 '법질서'와 '평상심'을 외쳤다. 군사쿠데타 앞에서 저들이 보인 모습과 소름이 끼칠 만큼 똑같지 않은가. 쿠데타의 기정사실화, 언제나 그것이 쿠데타에서 저들에게 맡겨진 '임무'였다.

그래서다. 탄핵의 아수라장이, 텔레비전으로 생생하게 중계된 쿠데타가, 숫제 고마운 까닭은. 하여, 오늘 전국 곳곳에서 타오르는 촛불은 공화국에 그동안 드리우고 있던 짙은 장막을 사르는 불꽃이 아니던가. 현장은 더 말할 나위 없고 텔레비전이 전하는 화면조차 숙연하지 않은가.

바로 그 지점에서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옷깃을 여미며 감히 묻는 까닭이다. 우리 모두가 텔레비전으로 본 저 쿠데타를 한편의 역동적인 '드라마'로 보지 않았던가. 기실 촛불시위마저 얼마나 힘찬 드라마인가.

하지만 깊이 성찰해볼 필요는 있다. 텔레비전이 시나브로 외면하면서 결국 두 여중생의 추모 촛불은 하나둘 꺼져가지 않았던가. 피맺힌 원한을 풀어주지 못한 채 시든 불꽃처럼, 우리 다시 절망에 이르지 않을까.

보라. 두 여중생의 촛불을 향해 찬물을 끼얹었던 수구세력은 지금 이 순간도 민주의 촛불에 "좌익 급진"이니 "친노"따위로 색깔과 반목의 찬바람을 후후 불고 있지 않은가. 촛불집회 내부에도 그저 눈감기 어려운 '미묘한 균열'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수구세력을 만만히 보아선 안 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쿠데타의 '고전적 공식'대로 방송사를 압박하고 있는 저들을 보라. 저들을 4월의 투표로 모두 몰아낼 수 있다고 우리 장담할 수 있는가. 아니다. 설령 심판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수구언론은 무엇으로 심판할 수 있는가.

바로 그 수구언론이 총선정국에서 '총력'으로 펴나갈 여론조작의 장막에 조금이라도 갇힐 때, 자칫 쿠데타에 대한 심판조차 제대로 못할 가능성이 있다. 총선 심판을 앞두고 쿠데타를 감행할 만큼 저들 나름대로 목숨을 건 일 아닌가. 탄핵이 두려운 까닭이다. 그래서다. 공화국 국민으로서 당연한 분노를 '친노와 반노'로 편가르는 저 수구세력 앞에서, 우리의 촛불을 '두 손'으로 올곧게 들어야 한다.

참으로 민의를 대변하는 새로운 국회를 세우려면, 촛불이 자신을 헌신하여 불꽃을 살리듯이 서로 마음을 비워야 한다. 그때만이 비로소 더 많은 장막을 태울 수 있다. 아직도 국회의사당의 숨겨진 장막에 우리를 시들방귀로 여긴 자들이 똬리 틀고 있지 않은가.

아니, 어쩌면 진정 태워야 할 어둠은 촛불을 든 사람들 마음 속에 수구세력이 깊숙이 집어넣은 '분열의 장막'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이 땅에 참된 민주주의를 일궈내는 길이 어디에 있는가를 진드근히 모색하는 마당으로 촛불집회를 넓힐 때다. 인터넷광장도 마찬가지다. 모든 민주세력이 마음을 열고 한국 민주주의가 걸어갈 길을 놓고 진솔한 대화를 나눌 때다. '개혁세력과 진보세력의 국회 과반수 확보'라는 공동의 목표와 전략은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은가. 오늘의 촛불 바다가 또다시 '쓸쓸한 추억'으로 남을 수는 없지 않은가.
손석춘 기자는 오마이뉴스 고정칼럼니스트 입니다. 1988년 평론 '분단시대 민족언론의 길'을 시작으로 줄기차게 언론비평을 해온 언론비평가입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창립공동대표를 지냈으며, 현재 <한겨레> 논설위원입니다. <신문읽기의 혁명>을 비롯한 언론비평서들과 함께 장편소설 <아름다운 집>과 <유령의 사랑>을 썼습니다.

2004/03/16 오후 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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