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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죽음이란 단 한 번뿐입니다. 태산과 같은 무게의 죽음이 있는가 하면,
기러기 깃털의 무게 밖에 안 나가는 죽음도 있습니다. 모두가 죽음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역사서 <사기>,
사마천 유명한 역사가 사마천은 죽음에 무게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무거운 죽음이라 하면 삶에 미련이 남아 죽음을 무겁게 받아들일 때라고 그는 말하였지요. 우리는 여태껏 한국 영화에서 '태산 같이 무거운 죽음'을 자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주인공은 몹시 억울해 하고 그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절망에 빠지며 관객들은 눈물을 훔치는 삼화음이 적절히 이뤄지는 영화, 벌써 머리 속에 장면이 연상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주인공은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그리 충격에 빠진 것 같지 않습니다. 중대한 사실을 듣고도 집에 돌아와 그저 아이들과 장난치며 놀 뿐이었지요. 그녀는 '엄마가 없더라도 아빠 말씀 잘 듣고…'라거나 '혼자서 옷 갈아입을 수 있지?'와 같은 당부를 하지도 않습니다. 그녀에게 죽음은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지나 봅니다. 자신의 죽음을 듣고도 그런 심심한 반응을 보이다니, 저는 놀랍고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녀는 과연 어떻게 죽음을 활용하였기에 깃털처럼 가벼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요. 죽기 전에 해야 할 10가지 시한부 선고를 받은 후, 그녀는 마치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듯 자신의 삶을 차분히 조망합니다. 17살에 첫 키스한 남자의 애를 가지게 되었고, 23살에 벌써 두 명의 자녀를 둔 채 대학 청소부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을 되돌아봅니다. 대충 생각 없이 살아왔기에 자랑스럽게 내놓을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행복한 삶이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녀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녀에게는 후회할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죽음 앞에 선 그녀는 더 이상 이전의 생활에 쫓기던, 생각 없이 살던 그녀가 아닙니다. 예쁘고 비싼 옷이 부럽지 않으며 기름진 맛깔스러운 음식도 더 이상 선망의 대상이 아닙니다. 담담히 죽기 전에 해야 할 10가지를 정하는 그녀입니다. 생각 없이 살아온 자신의 삶, 마지막만큼은 자신의 뜻대로 자신의 생각대로 뭔가 정리하고 떠나고 싶은 듯 보였습니다.
2. 남편에게 조신한 신부감 구해주기 3. 애들이 열여덟이 될 때까지의 매년 분의 생일축하 메시지 녹음하기 4. 가족 모두 웨일베이 해변으로 놀러 가기 5. 담배와 술을 맘껏 즐겨보기 6. 내 생각을 말하기 7. 다른 남자와 사랑을 한 후 기분이 어떤가 알아보기 8. 날 몸 바쳐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들기 9. 감옥에 계신 아빠 면회 가기 10. 인조 손톱 끼워 보기, 머리 모양 바꾸기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는 데 있어서 정한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소소해 보이는 것들도 보입니다. 발칙한 것도 있고 별 것 아닌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생각 없이 정한 거라고 말해선 안 됩니다. 진지하고 솔직한 그녀의 마지막 소망 같은 것들이니까요. 그녀가 그 소망들을 실천해 나가는 모습은 귀엽기도 하고 아기자기하기도 하였습니다. 분명 눈물을 짜내는 그런 신파 냄새 풍기는 영화가 아니라고 저는 생각했지요. 하지만 씩씩한 모습의 그녀를 보며 저는 눈물을 머금게 되었습니다. 후회할 시간은 없었지만 외로움까지 피할 수는 없었던 그녀의 모습을 보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슈퍼마켓에서 쇼핑을 하는 사람들이 그녀의 눈에는 춤을 추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일상적으로 쇼핑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은 그녀에게 '평범'하게만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실로 춤추듯 아름답게 살아갈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녀 없이도 또 다시 태양이 떠오를 아름답게 빛나는 세상의 모습이었습니다. 외로운 그녀이지만 죽음을 마음 편하게 기다리기 위해서 죽기 전 미련이 남을 법한 것들을 하나하나 해 나갑니다. 그 동안 외면해온 감옥에 간 아버지에게 스스로 찾아가보기도 하고, 자녀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사랑을 주기도 하지요. 저는 그녀가 죽기 전에 10가지를 꼭 하길 바랐습니다. 그녀의 남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만이 외로운 그녀에게 힘을 줄 수 있었으며 죽음의 무게를 줄일수록 그녀의 삶이 충만해짐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제게 안타까움과 다행스러움이 혼합되는 이상한 감정상태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녀가 죽음 앞에서 자신의 삶을 빛낼 수 있었음은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 짧았기에 제 맘을 안타깝게 만들었지요. 그녀가 좀 더 일찍 가벼운 죽음을 만들려고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가벼운 죽음은 어떻게 영화 속 주인공처럼 저 역시도 죽음과 멀리 떨어져 살아왔습니다. 삶이 죽음과 떨어질 수 없음은 당연한 이야기건만 '죽음'은 고민의 대상에서 빠져있는 채 청춘을 즐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죽음 앞에 놓인 그녀를 보며 흘린 눈물은 '연민'의 눈물이었을 것입니다. 저 역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주제에 말입니다. 저는 비로소 제 죽음의 무게를 떠올려 봅니다. 지난 삶을 생각해보면서 죽음이 태산처럼 무거운지 깃털처럼 가벼울지 견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생각해보니 당장 제가 죽어야 한다면, 저는 너무나 억울할 것 같습니다. 아직 못한 것들이 너무나 많으니 제발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애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게 죽음은 태산같이 무거운 존재입니다.
제가 그녀보다 삶의 유효기간이 좀 더 있을지는 몰라도 여태까지의 삶을 회고해보았을 때에 제가 정한 10가지를 다하고 죽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애써 무시하려 했던 인간의 근본적 한계인 죽음이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인식시킴으로써 죽음의 무게는 삶을 충만하게 만들면 줄일 수 있음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인간에게 죽음이란 단 한번 뿐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미련 없는 삶을 통해 깃털처럼 가벼운 무게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길 바랍니다. 또한 모두들 죽기 전에 꼭 하고 가야 할 10가지를 다 할 수 있길 바랍니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 반복되는 동안 우리는 고작 10가지도 못한 채 죽음을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삶이 보다 살찌워짐으로써 죽음의 무게가 점점 가벼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에게 죽음이란 단 한 번뿐입니다. 태산과 같은 무게의 죽음이 있는가 하면, 기러기 깃털의 무게 밖에 안 나가는 죽음도 있습니다. 모두가 죽음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역사서 <사기>, 사마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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