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너머로 낡은 구두에 꽂힌 시선은 바쁘다. 벌어진 밑창 사이로 본드를 바르고 한쪽이
비스듬히 닳아빠진 밑창을 깎아 다듬고 싱싱한 고무창을 덧댄다.
신발 고치는 일을 하는 박병태(64) 씨. 김해 장유면에 있는
김해농수산물종합유통센터 현금인출기 맞은편 한 평 남짓한 공간이 그의 일터다. 그가 능란한 손놀림으로 신발의 생명을 연장하는 일을 한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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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농수산물유통센터 현금인출기 맞은편
한평 남짓한 공간에서 일하는 박병태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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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국사, 세계사를 가르쳤던 선생님이었다. 38년 동안 교직에 있었던 그는 지난해 8월 창원 안남중학교 교장을 끝으로 정년퇴임을
했다. 교장을 했던 분이 구두수선공을 한다면 믿어질까.
쑥스러워하던 그는 “평생 교직에 있다 나오니 별로 할 게 없었습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아무리 친구가 좋다지만 매일같이 어울리는 것도
어느 정도, 그렇다고 매일 산을 오를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일도 하면서 건강을 지키는 방법을 고민했단다. 고민 끝에 찾은 것이
신발수선이다.
먼저 조심스러운 마음을 전했다. 교직에 있는 후배들 때문이다. “후배들이 교장을 했던 사람이 교장 위상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할까 걱정도 됩니다. 교장이 구두고친다고 뭐라 할 수도 있잖습니까? 반대로 이런 발상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남의 눈에
비쳐진 만족보다는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결정했습니다.” 그의 깊은 속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러 생각들 끝에 내린 결심이었다. 아내도 그의
뜻을 존중했다.
두 달간 개인교습 받고 혼자 실습
“뭔가 내 나름대로 재미를
찾아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고민하다 이게 생각나더군요.” 신발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없어서는 안되는 물건이고, 비싼 명품도 있고 싼 중국산 신발도
있지만 고치면 편안하게 신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사람들의 발을 편하게 해주는 것도 봉사라고 생각하니 뿌듯했다. 지난해 10월,
11월 두 달 동안 개인교습을 받고, 친구들의 신발을 모아 혼자서 실습도 하고 제화과정과 원리를 알기 위해 버려질 신발을 해체해서 맞춰보기도
했다.
그러다 지인의 소개로 지난해 12월 김해농수산물유통센터에 자리를 얻게 됐단다. 신발을 고치면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 즐거움이다. 사람들이 경력을 물어오기도 하는데 부풀리지는 않는다고 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다
전직교장이라고 하면 사람을 다시 보기도 한단다.
교직 이야기를 여쭸다. 첫 발령지였던 거제도 제일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일을
떠올렸다. 좋은 학교에 진학을 못시킨다고 “돌대가리 선생들 뿐이갚라는 학부모의 항의를 듣고 선배교사들과 뜻을 모아 보충수업을 했단다. 그 결과
열여덟 명이 명문고에 진학했는데 그때 학부모들이 막걸리 두말에 오징어 한축을 들고 와서 교무실에서 잔치를 벌였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그때
그 학생들이 아직도 찾아오니 스승으로서 이 보다 더 기쁜 일이 있겠나 싶다.
또 지난 2000년 의령고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해서
학생들과 보낸 2년6개월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우수한 학생들은 모두 외부로 빠져나가는 현실이 안타까워 ‘의령고에 보내야 의령을 살린다’는 뜻을
담은 서신을 보내기도 했다. 학교마치고 사고치지 말라고 밤에도 학생들을 붙잡아 놓았단다. “공부 안해도 좋다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를 하더군요.
조용한 교실에 책장 넘어가는 소리만 들릴 정도였습니다.”
다양한 사람들
만나는 즐거움 커
서울대 입학이 학생과 교육의 성공의 잣대는 아니지만 개교 50년 만에 처음으로 서울대 합격도
나왔다. 자연스럽게 지역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는 교육에서 ‘신뢰’와 ‘약속’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은
교육이 당장 뭐가 튀어나오는 것처럼 상업적으로 생각합니다. 비행기조종사 한명을 만들어내기 위해 많은 공이 들어가듯이 멀리보고 한 없이 투자해야
합니다.” 학생들에게 끝없는 관심과 정열을 쏟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사는 학생에게 의욕을 불어넣어줘야 신뢰와 믿음의 가치가 발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농촌학교에 학생이 외지로 빠져나가는 것에 대해 “작은 학교에 보내면 정상적인 교육을 못 받고, 도시 교육은 잘
시켜준다고 착각하고 있어요”라고 꼬집었다.
새로운 일터에서 자리를 잡은 지 한달하고 보름째.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 하루에 한
켤레도 없을 때가 있으니 벌이는 시원찮다. 그러나 그는 매일 자신의 일터로 출근하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단다. “평생 출퇴근 했는데
퇴직하고 나서 아침에 일어나면 아무 할일이 없었어요. 그러다 이렇게 출근하니 기분이 얼마나 좋겠어요.”
연금을 받아 먹고사는 데는
걱정이 없다는 그는 구두를 고쳐서 번 돈은 좋은 곳에 쓰고 싶다고 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좋은 일을 하는 이들에게 후원도 하고
싶습니다.” 여러 나라 신발을 접해보며 그 나름대로 연구도 한다. 구두고치는 곳도 문화센터라고 부르고 싶다고 했다. “요즘 고무신에 굽을 붙인
새로운 신발도 나오던데 신발도 문화죠. 수십년 하신 분들에 비하면 햇병아리지만 손님들이 만족하는 기술자가 되도록 노력해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