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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교의 봄, 사람은 가고 강물만 흐른다

요리조리쿡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4. 25.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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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교의 봄, 사람은 가고 강물만 흐른다
구름에 달 가듯이 - 꽃길 따라 (10) - 경북 구미시 도개면 도개동 (2)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박도(parkdo) 기자   
▲ 도개면 도개리와 선산읍 생곡리를 잇는 '일선교'
ⓒ2004 박도
오래간만에 고향 땅을 찾아서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서 만나게 되니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그동안 고향에 계신 여러분들이 나에 대해서 항시 음으로 양으로 여러 가지 도와주시고, 성원해 주신데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사랑합니다. 자기의 고향을 사랑한다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누구도 다 같은 생각일 것입니다.

내가 이 고장에서 태어나고, 이 고장에서 잔뼈가 굵었고, 또 우리의 조상들의 뼈가 이 고장에 묻혀있기 때문에 , 우리가 아무리 객지에 가서 오래 산다 해도, 또는 나이를 아무리 많이 먹는다 해도 어릴 때 자라난 고향산천은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

이번에 일선교 준공식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이 준공식에는 꼭 내가 참석해서 고향에 계신 여러분들을 한번 뵈어야 되겠다, 이렇게 오래전부터 벼르고 있었습니다.…….

- 1967년 3월 30일, 경북 선산군 일선교 준공식 때 당시 박정희 대통령 치사 중에서


▲ '一善橋'라는 휘호가 박정희 대통령 글씨다
ⓒ2004 박도
일선교는 선산읍 생곡리와 도개면 도개리를 잇는 교량으로 낙동강 동쪽과 서쪽 지방의 교통을 잇는 동맥과는 같은 다리다. 이 다리가 없었을 때는 도개나루에서 나룻배로 건너다녔다. 필자도 아주 어린 시절, 어느 해 겨울에 찬 바람을 맞으며 도개나루를 건너 작은집에 갔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곳에 다리가 세워지는 일은 이 지방 일대에 사는 사람들의 숙원사업으로, 그 꿈같은 일이 5·16 이후에 추진되어 마침내 준공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날 경북도지사와 마을 노인과 함께 준공 테이프를 끊은 박정희 대통령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대구사범 재학시절, 학생의 신분으로 장가가고자 이 도개나루를 건너갔으리라. 당신이 장가가던 1936년 그때도 봄이요,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1967년 봄(3월 30일)에 당신이 이 다리의 준공 테이프를 끊을 줄이야.

일선교 준공식 그날, 도개마을과 생곡마을사람은 농악대 신명 속에 동네잔치를 벌이며 한바탕 축제를 벌였다지만, 필자는 그 잔치마당에 단 한 집만 침통하게 보냈다는 후문을 들었다.

부부 관계란 제삼자가 왈가왈부할 수 없는, 부부만 아는 얘기가 있다. 도개마을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할머니와 마을 일가친지로부터 어려서부터 상모양반(박정희)과 김호남씨의 파경에 얽힌 소설 같은 사연을 숱하게 들어왔지만, 이제 두 분 다 고인이 된 마당에 좀 더 세월이 흐른 뒤, 기사가 아닌 소설로나 엮어 보고자 한다.

강물은 두 사람의 아픈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제나 이제나 쉬엄쉬엄 흘러가고 있다. 그야말로 사람은 가고 강물만 흐르고 있었다.

역사에 가정은 부질없는 일이지만 두 사람 금실이 좋았다면 박정희 선생님이 만주군관학교로 가지도 않았을 것이고, 당신의 최후도 그리 볼썽사납고 허망하게 끝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동향의 한 무명의 문사가 이곳을 지날 때마다 안타까워 한다.

일선교 들머리 표지는 낯익은 “一善橋”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다리에서 상류 쪽으로 20미터 편에는 새로운 일선교 4차선 교량 건설이 한창이다.

▲ 도개(桃開)면이라는 지명 탓인지 도개 들에는 복사꽃이 유난히 많다. 오는 봄을 못이겨 꽃망울이 막 터지고 있다.
ⓒ2004 박도

▲ 도개 들에 핀 자두꽃
ⓒ2004 박도

▲ 다곡 묵집
ⓒ2004 박도
일선교를 지나자 활짝 핀 벚꽃이 꽃 터널을 이루었다. 한 컷 찍고 싶었으나 차를 세울 수 없었다. 생곡마을을 지나 삼거리에서 선산 방향으로 돌리자 곧 다곡 묵집이 나왔다.

지난 가을 벌초 후에 이 집에 와서 어떻게나 묵을 맛있게 먹었던지, 늦은 점심을 때우고자 묵집에 들어갔더니 점심시간을 훨씬 넘긴 시간인데도 손님이 북적거렸다.

묵 보리밥을 시키자, 곧 묵 두 그릇과 김치 한 대접에 보리밥 한 대접 그리고 고추장아치, 간장 고추장 육수 주전자 등 한 식판을 들고 왔다. 시장하던 차에 양념간장을 넣고 육수를 부어 먹자 갑자기 입 안이 행복해졌다.

묵 한 대접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삼킨 후 그 그릇에다가 김치와 보리밥을 넣고 고추장을 떠다가 비비자 옛 밥맛이 살아낫다. 경상도 보리 문둥이라고 할 만큼, 어린 시절 보리밥을 정말 지겹게 먹었다.

하지만 서울로 온 후 보리밥맛을 잃어버렸다. 어린 시절, 보리밥에 얽힌 추억과 보리밥을 함께 씹으면서 후딱 한 그릇을 비웠다.

“얼마에요?”
“육천 원만 주이소.”
“네, 2인분에 육천 원?”
“맞아 예. 십년 전 값 그대로 받아예.”

▲ 묵, 보리밥 2인분
ⓒ2004 박도

▲ 다곡묵집 내부
ⓒ2004 박도

▲ 도개다곡묵집 주인 권대순씨. 음식맛은 손맛이라고 하면서 카메라를 갖다대자 새색시처럼 갑자기 얼굴이 붉어졌다.
ⓒ2004 박도
두 사람이 묵과 보리밥을 배 터져라 먹고 육천 원만 내려니 어리둥절 했다.

▲ 밥값이 유난히 싸다
ⓒ2004 박도
“값을 올릴라 카이카 모두 단골손님이라 못 그라겠네요. 어제(일요일)는 천명도 더 왔는기라요.”

값을 치른 뒤, 부엌에서 일하는 안 주인 권대순(56)씨에게 맛의 비경을 물었다.
“손맛인기라요. 모두 우리집에서 내 손으로 만들었어요. 도개 다곡에서 시작해서 이태 전에 일로 옮겼어요.”

“벌초 때 또 오겠습니다.”
“그때 꼭 오이소. 까마귀도 고향 까마귀가 더 반갑다 아입니까."

"안녕히 계십시오."
"잘 가이소.”

묵집을 벗어난 후 조금 달리자 선산읍이 나오고 거기서 외가 김천으로 가고자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자 곧 이문동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집이 나왔다.

▲ 선산읍 이문동에 있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본가 (지난 가을에 찍은 사진이다)
ⓒ2004 박도

2004/04/18 오후 7:36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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