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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돈은 그냥 가지세요(Keep the change)." 알뜰시장(thrift shop)에서 계산을 끝낸 할머니가 계산대에 있는 캐셔에게 잔돈을 가지라고 한다. 캐셔 역시 얼굴에 주름이 많은 할머니다. 이것저것 다양한 살림살이를 '알뜰하게' 장만한 할머니는 잔돈을 흔쾌히 기부하면서 행복한 표정으로 가게 문을 나선다.
여느 알뜰시장과 조금 다르게 운영되는 'Tried & True'를 취재하고 싶다고 하니 가게 안에서 물건을 정리하던 여자가 자신을 매니저라고 소개하며 나선다. 상큼한 미소를 지닌 '데드 레이먼'은 가게 구석구석으로 나를 데리고 다니며 자세히 설명을 한다. - 이곳에서 파는 물건은 모두 값이 저렴한데 언제 돈을 모아서 저런 큰 프로그램에 후원을 하나요? "우리 가게는 작년에 문을 열었는데 비영리 알뜰시장(non-profit thrift shop)이어서 모든 물건을 기증 받았어요. 많은 분들이 좋은 물건을 많이 기부해 주었고, 또 많은 분들이 고맙게도 이곳을 찾아 주었어요. 그래서 작년 첫 해, 판매 수익금 가운데 5000달러를 이곳 교회에 기부했어요. 그 기부금은 기아와 에이즈로 고생하는 이들을 위해 쓰이게 돼요. 저기 신문이 보이죠? 바로 우리 가게가 소개된 신문이에요."
"아니오, 저와 제 남편은 매니저로 일하면서 보수를 받아요. 하지만 다른 분들은 모두 자원봉사자들이에요. 저기 보이는 아이린은 매주 목요일에 이곳에 나와요. 요일 별로 다른 분들이 나와서 우리를 도와주고 있어요." 올해 67세인 '목요일 담당' 캐셔 아이린은 자상하고 기품이 있는 할머니다. 차분하고 느린 목소리로 자신의 봉사 활동에 대해 자상하게 설명을 한다.
아이린의 머릿속에 기아와 에이즈로 고통 받는 이들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 금세 눈가에 눈물이 핑 돌고 이내 눈시울이 발개진다. 아이린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 가게 문을 들어서는 멋쟁이 할머니가 있었다. "함께 일하는 주디예요. 오늘은 뭘 사려고 온 것 같아요. 주디는 매주 화요일에 이곳에서 일해요. 주디는 손 재주가 뛰어나서 여기서 파는 카드는 모두 주디 손을 거쳐요. 주디, 이리 좀 와 봐요. 이 분은 한국에서 온…." "이 카드는 모두 제가 만들었어요. 카드에 깃털을 붙이거나 꽃이나 캔디로 장식을 해요. 예쁘죠? 하하하."
미국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런 자원 재활용의 '알뜰시장'이다. 사실 알뜰시장은 이곳뿐 아니라 미국 어느 도시엘 가더라도 없는 곳이 없다. 그만큼 자원이 알뜰하게 재활용되고 있다. 재활용되는 품목도 백화점에 진열된 물건처럼 다양해서 없는 것이 없다. 옷가지와 책, 장난감, 주방기구, 신발, 가방, 액세서리, 가전제품, 가구 등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은 다 있다.
어떻게 최신호 잡지가 이곳까지 오는지 궁금해서 매니저에게 물으니 정기구독을 한 사람이 잡지를 다 읽은 다음에 이곳 알뜰시장에 기부를 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잡지 표지에 정기구독자의 이름과 주소를 지워버린 흔적이 눈에 띈다. 분리형 도시락 역시 그동안 쇼핑몰에 여러 번 갔지만 살 수 없었던 물건이었다. 그런데 새 것 같은 도시락을 겨우 25센트에 살 수 있어서 기분이 아주 좋았다. 이날 내가 쓴 돈은 물건값 4달러 50센트에 세금 23센트를 합쳐 모두 4달러 73센트였다. 완벽한 쇼핑이었다.
아참, 남이 쓰다 만 중고품이라서 '찜찜한' 생각이 든다고? 한 번 와 보시라.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꽤 많은 알뜰시장들이 깨끗하게 손질된 물건을 판매하고 있다. 그리고 알뜰시장의 실내 인테리어 역시 새 가게 못지않게 잘 꾸며 놓았다. 결코 칙칙한 곳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알뜰시장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찾는 곳이 되도록 '매력적으로' 운영한다면 이곳 알뜰시장처럼 활성화되고 사랑받는 장소가 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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