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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장이라는 나무를 만지면 말도 못하게 야릇한 냄새가 진동하여 다시는 그 널찍한 나무 근처에는 얼씬거리기도 싫지만 강원도 산간에서는 한 여름에 그 잎으로 쌈을 싸먹기도 하고 장아찌를 만들어 먹는다나 어쩐다나. 냄새 풀풀 나는 홍어도 애초 남서해안 사람들이 즐겨 먹지 산지가 아닌 동해나 강원도 산골에서는 입에도 대지 않던 음식이다. 이렇듯 지역에 따라 음식에서도 차이가 뚜렷하지만 그걸로 이러쿵저러쿵 입방아를 찧는 것은 향토문화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일이니 편견을 버림이 마땅하다. 그런데 나는 나물이라고 했다. 나물이라면 응당 조금 쓸 뿐 향이 그럴싸해야 하거늘 싫도록 괴상한 맛이라면 이건 소나 말, 토끼에게 먹여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건 뻔한 이치 아닌가. 미나리 비슷한 모양, 참나물을 닮은 나물인데 봄가을 두 철 어김없이 먹는 사람들이 있다. 이름 하여 고수, 고수나물이다. 고추냉이와는 또 다르다. 웬만한 음식 대가, 식탐이 대단한 고수라 하더라도 쉬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고수다. 왜인고 하니 앞서 말했지만 고약한 냄새 때문이다. 멀쩡하게 생긴 게 풍기는 맛이라곤 영 딴판이니 원…. 달콤하고 향긋하고 달달하고 고소하고 구수하며 쫄깃하고 감칠맛 나고 매콤하면서도 혀에 쩍쩍 달라붙는 음식이 '쌔고 쌨는데' 구태여 첫 느낌이 영 개운치 않은 걸 먹을 하등의 이유가 없잖은가.
그런데 딱 한 가지 먹어보지 못한 나물이 지금 이야기하려고 하는 고수 나물이다. 7년 전 아내를 만나 처가에 가게 되었다. "김서방 이거 먹어봐." "예." 처음 보던 것이다. 모양새는 미나리아재비나 별 차이가 없었다. 무생채에 파릇파릇한 나물을 넣고 버무렸는데 일단 먹음직스러워보였다. 우리 집에서 가을철 무채를 만들 때 속에 있는 무청을 서너 개 따서 같이 무치지 않았던가. "이게 뭡니까?" "일단 먹어나 봐." "뭔데요?"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맛나게 드신다. 김장하러 친정에 온 딸들도 하나같이 잘도 먹어댄다. 한 가지 의심스러운 건 여태 내가 먹어보지 않았거니와 손윗동서도 젓가락이 가지 않으니 필시 뭔가 비밀이 숨겨져 있는 듯싶었다. 아내는 새신랑 앞에서 어기적어기적 입이 찢어져라 먹는다. 과장 하나도 하지 않고 밥 두 술에 세 번이나 고수나물 무침을 집어넣어 볼 딱지가 곧 터질 성싶다. 부끄러움은 온데간데없다. '뭐야 이건? 저걸 먹어 말아?' 실험실장 내가 그냥 넘어갈 리 만무하다. 옆에서 먹는 사람들도 아무렇지 않으니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내 마음의 문을 과감히 열기로 했다. 맛 세계 미로(迷路)를 헤맬지언정 미궁(迷宮)에는 빠질 염려가 없지 않은가. 또 어쩌다 바람을 피운들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는 말초적 발상까지 나를 거들었다. 밥을 입에 물고 젓가락으로 듬뿍 집어넣자 이상야릇한 풍미가 내 입을 마비시켰다. '음, 이건 아닌데. 보통 놈이 아니야. 필히 나물이 아니라 다른 향신료를 썼을 거야. 나물에서 이런 말도 못할 냄새가 날 리 없지.'
'어, 이놈 첫인상과 다른걸? 대체 뭔데 이래?' 미로에 접어든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퇴로가 없는 막다른 길에 우두거니 서 있는 기분이다. 두 번 먹어보고는 그 뒤로 한동안 먹지 않았다. 장모님은 김장할 때 달랑 배추와 무김치만 담가서 보내지는 않는 분이다. 고들빼기에 씀바귀김치, 갓김치를 담가서는 딸네들에게 조목조목 챙겨서 보내시는데 그때마다 어김없이 비닐봉지에 생나물을 싸서 보내신다. 필수 품목은 고수인데 아내와 처형들은 마치 30년 전 아버지가 고기 한 근 떠가면 허천병 난 애들처럼 얼굴이 활짝 피어 게걸스럽게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곤 했다. 보내온 고수를 아내가 무쳤기에 여동생에게 먹어보라 했다. "언니, 이건 뭐야? 못 먹겠네! 아 이제 안 먹어." "그래요? 안 드셔도 좋아요. 그럼 내가 다 먹지 뭐." 내가 고수를 먹는 집안으로 장가를 들었다. 처가는 오신채(五辛菜) 즉, 파 마늘 달래 부추와 우리가 명확한 답을 아직 내리지 못하고 있는 흥거(興渠)를 먹지 않는다. 특히 장모님은 이뿐만 아니라 육해공에서 나는 고기를 전혀 드시지 않는다. 절보다 더 절제된 식생활로 신앙심을 유지한다. 유일하게 동물이 주는 선물인 달걀만은 먹어도 된다니 그게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사람들이 고수를 먹어보고 뭐라고들 합니까?" "두 가지에요." "어떻게 말인가요?" "오히려 깔끔하다고도 하고 한편으론 한번 먹어보고는 빈대냄새 난다고 절대 입에 대지 않아요." "저도 처음엔 무척 놀랐거든요. 한동안 먹지 않다가 해마다 두 번 봄가을에 접할 기회가 있어 먹어봤더니 시원한 느낌이었어요. 그 뒤론 아무 생각하지 않고 먹는답니다." "시원하다고 느끼셨으면 몸이 받아들이겠다는 신호네요. 뭐든지 처음이 어렵지 하다 보면 쉽습니다." "스님, 그럼 어떻게 해먹어야 맛있습니까? 파, 마늘도 안 쓰시잖아요." "특별한 게 없어요. 고춧가루와 참기름, 깨소금 따위를 넣고 주물주물 무쳐먹으면 됩니다. 무채를 썰어 넣어도 전혀 향이 날아가지 않습니다." "저도 그 두 가지는 먹어봤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는가요?" "아닙니다. 양념을 만들어 국수에 넣어 비벼 드셔도 됩니다. 미나리나 쑥갓처럼 활용하면 되거든요. 꽃대롱이 나오는 약간 쇤 것은 김치를 담가도 되고 전을 부쳐도 됩니다." "참 여러 가지네요. 얘기 나누다 보니 코끝에 그 향이 전해지는 느낌입니다." 피돌기를 촉진하니 절에서 향채는 먹어도 5신채를 먹지 못함에 따라 궁금한 입안을 달래는데 긴요한 고수. 고수 없인 못사는 처가를 둔 나는 일반인들이 쉬 접하지 못할 나물을 꽤 오래 전부터 먹어왔다. 이 또한 행운이 아닌가. 봄 가을 시장에 가거든 모르는 척 "이거 뭐예요?"에다 "어떻게 만들어야 맛있어요?" 라고 여쭤보자. 할머니들이 그걸 모를까 보냐. 고기 누린내 잠재우는 데는 곰취나물과 견줘도 전혀 손색이 없는 고수에 한번 빠져보자. 장을 말끔하게 하니 정신수양에도 그만이겠다. 중국에서 귀화한 나물 가운데 쓸만한 건 이뿐이던가. 과연 몇 사람이나 먹어봤을까? 이젠 한번 친해볼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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