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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님은 제가 고향에 살 때 다녔던 위미교회에 부목사로 사역을 감당하시다가 농촌목회에 뜻을 두고 남제주군 대정읍 신도리에 있는 신도교회라는 작은 교회에 부임하셨습니다. 1960년 충북 괴산에서 태어나신 김응창 목사님은 어릴 때 불어닥친 가정의 어려움으로 소년 가장으로 학업을 이어가지 못하다가 어렵사리 숭실대 영문과를 마치고, 장로회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신 다음 목회자의 길을 걸으셨다고 합니다. 1997년 위미교회의 초빙으로 제주에 오신 목사님은 1999년 신도교회에 부임하시고 만 7년 동안 헌신적으로 목회에 전념하셨습니다. 얼마 전까지 김민수 목사님이 목회사역을 하셨던 종달리교회가 제주도의 동쪽 끝에 자리하고 있다면, 신도교회는 제주도 서쪽 끝에 있는 교회입니다. 신도리 마을은 제주도에 위치하면서도 귤 농사도 되지 않아, 예로부터 주민 대부분이 감자나 마늘 농사를 짓는 가난한 농촌입니다. 해마다 인구가 감소하여 초등학교는 이미 폐교되었습니다.
목사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도내 많은 목회자들이 신도교회를 방문해보니 교회나 목사님 가족들에게 장례를 치를 비용조차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목회자들이 돈을 모아서 임시비용을 마련했습니다.
북제주군의 어느 작은 농촌교회에서 사역하신다는 한 목사님은 자신의 소회를 솔직히 말씀해주셨습니다. “장례식에서 낭독되었던 조사(弔辭)를 들어보셨나요? 그 조사에 나와 있는 내용이 바로 우리 농촌교회의 젊은 목회자들의 심정입니다. 농촌교회의 젊은 목회자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심정으로 목회 사역을 감당하는지, 그러면서도 왜 굴욕감과 무력감을 느끼고 살아야 하는지 이제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평소에 좋은 인상을 주셨던 젊은 목사님의 안타까운 소식에서 문득 70년대 평화시장에서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전태일 열사의 절규와 현대중공업에서 정규직 노조의 차가운 외면 속에 장례가 치러졌던 비정규직 노동자 박일수씨의 죽음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사회적으로 ‘비정규직 차별 철폐’와 ‘동일노동에 대하 차별 금지’를 위한 사회적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우리 교계에서는 같은 종류의 사역에 대해 주어지는 목회자간 임금격차가 10배가 넘는 불합리함이 언제면 해소될까요? 농촌에서 모든 인간적 유혹을 뒤로 한 채, 독립운동하는 심정으로 사역을 감당하는 농촌목회자들을 위해 교회 전체가 나서서 할 일을 찾아야 할 때라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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