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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자연은 독서실이요, 명상공간입니다. 자연을 대하면 그들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고 상상의 나래를 펴고 유년의 시절까지도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거든요. 유년의 시절을 떠올리게 되는 것들은 그 언젠가 만났을 풍경들이기 때문입니다. 맛으로 비유하자면 참 맛있는 추억의 단편들입니다. 서로 어울려 아름다움에 아름다움을 더해 가는 자연을 보노라면, 모이기만 하면 치받고 싸우는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돌아보게 되고, 강퍅해졌던 마음도 차분하게 가라앉게 되니 자연은 사람을 착하게 만드는 묘약 같기도 합니다.
꽃에 앉아 있는 나비나 벌, 그리고 서로 짝을 찾아 넓은 하늘을 자유로이 나는 저 나비들은 항상 그 곳에 있지 않습니다. 어느 한 순간, 어쩌면 찰나의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더 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보는 것 같은 풍경이면서도 그 언젠가 보았던 풍경들입니다. 그러나 그 때에는 그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풍경이었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늘 우리 곁에 있었던 풍경이기도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늘 가까이 있었기에 인간이 그들을 공격적으로 대해도 될 것이라고 함부로 대한 것입니다. 우리의 눈앞에서 하나 둘 사라지고 깊은 산 속이나 가야 볼 수 있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아는 인간의 무지함, 더 나아가서 아예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추었을 때에야 그것이 참으로 소중한 것이었구나 탄식을 하게 되니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 보았던 정겨운 자연의 풍경들을 우리의 아이들도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꿈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의 꿈을 찾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높은 빌딩숲과 콘크리트 바닥에서 자란 아이들이 먼 훗날 이런 풍경들을 본들 어떤 추억을 떠올릴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찔해집니다. 아름다운 풍경들을 보고도 그와 관련된 아름다운 추억들을 떠올리지 못한다면 어찌 그 마음이 따스하겠습니까? 틈나는 대로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자연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그들이 그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뭐라 표현하지 못할지 모르지만 그 아름다운 풍경들 하나 하나가 아이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다가 삶의 여정에서 하나 둘 피어날 것입니다.
어느 날 유치원에 다니는 막내가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를 유심히 바라보더니만 깔깔거리고 웃습니다. "뭐가 그렇게 웃기니?" "아빠, 이거 말이야. 아빠가 큰개불알풀꽃이라고 했지?" 아이가 정확하게 '큰개불알풀꽃'이라고 발음하지는 못했지만 앞부분은 정확하게 맞았습니다. "근데?" "이거 씨가 작아도 정말 강아지 그거하고 똑같다." 너무 기뻤습니다. "그래, 그래서 이름이 큰개불알풀꽃이야! 우와! 대단한 발견이다. 우리 용휘." 아이들이 발음을 하기도 힘든 꽃도 있고, 쉽게 친해질 수 있는 꽃도 있는데 설명을 해주긴 했지만 그렇게 비교할 수 있기까지의 눈썰미를 갖게 된 것이 마냥 신기합니다. 이럴 때면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시골로 이사오길 백 번 천 번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완벽한 집을 꼽으라면 벌집을 꼽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참 수수하고 완벽한 집 중의 하나가 바로 벌집이라고 생각합니다. 봄소풍이나 가을소풍을 가면 꼭 누군가 건드려서 한번쯤 사고가 나기도 했던 그 벌집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계신 분들도 많으실 것입니다. 대학시절 경기도 가평에 있는 유명산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등산로를 잃어버려 숲을 헤치고 정상을 향해 가는데 앞서가던 친구가 갑자기 "엎드려!"하는 겁니다. 벌집을 건드린 것이죠. 작은 벌집도 아니고 새끼손가락 두 마디쯤은 되는 벌의 집을 건드린 것입니다. 물론 벌집을 건드린 친구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한참을 서있었고 천신만고 끝에 무사히 그 곳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야, 안경에 앉아서 기어다니는데 미치겠더라. 눈을 감을 수도 없고 뜰 수도 없고." "그때 움직였으면 넌 사망선고를 받았을 거다." 그런 벌집도 요즘은 흔하게 볼 수가 없네요. 비록 모두 이사간 집이긴 하지만 덕분에 긴장하지 않고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구멍이 송송 뚫린 번데기의 집은 만져보면 생각보다 딱딱하지만 동시에 손으로 느껴지는 촉감은 부드럽습니다. 생명을 품고 있는 작은 집, 사방이 숭숭 뚫려 있으니 바람도 잘 통할 것이고, 딱딱하니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잘 보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확하게 학문적으로 이게 뭐다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숲에서 뛰어 놀다보면 흔하게 보던 것들이었습니다. 산책길에 우연히 만났는데 몇 년만인가 떠올리려해도 그 햇수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올 봄에는 고사리를 많이 꺾지 못했습니다. 들에 나가면 꽃을 찍느라 정신이 팔려서 고사리를 꺾을 틈이 없었습니다. 주로 고사리는 아내가 꺾고 나는 아내가 무섭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서 들판의 꽃들을 찍으면서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들판 여기저기를 조심스레 살피며 걸어가고 있을 때 작은 새알이 하나 있었습니다. 새집도 아닌 듯한 곳에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으니 그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도 없었지만 꿩알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어릴 적 어느 날 아버지가 꿩알을 주워오셨습니다. "꿩도 잡았는데 꿩 먹고 알 먹고 하려다가 둘 다 가지면 욕심일 것 같아 꿩은 놔주고 왔다." "에이, 꿩고기도 맛있다는데…." "그런데 알만 놔두면 안되잖아. 꿩은 또 알을 낳으면 되지만." 어린 마음에도 아버지가 참 잘하셨다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새알이 다섯 개 이상이었으면 가져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딱 하나 남은 새 알, 그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기념사진만 찍고 놓아두고 왔습니다. 그 안에 들어있는 생명이 따스한 햇살을 볼 수 있길 소망하면서.
부시럭거리며 마른 억새풀 사이를 재빠르게 왔다 갔다 하는 장지뱀입니다. 도마뱀과 습성은 비슷할 것 같습니다. 위급할 때는 꼬리를 자르고 도망을 가는데 어찌나 쉽게 끊어버리고 도망을 가는지 모릅니다. 기어다니는 것에 대한 선천적인 공포증으로 인해 맨 처음에는 놀라 기겁을 했는데 요즘은 만나면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자연의 품에 안겼다 돌아오는 날이면 렌즈에 담은 사진들만 풍성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도 풍성하고, 삶의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고 돌아오니 발걸음을 가볍습니다. 참 맛있는 삶의 묘약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싶어 감사하게 되고, 시골생활의 즐거움을 느끼게 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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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17 오전 11:28 ⓒ 2004 Ohmynew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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