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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을 수가 없다. 평택 대추리 이장이자, 팽성 대책위원회 김지태 위원장이 자진출두한지 이틀 만인 7일 오후 6시 30분 구속됐다. 대화를 하겠다고 제안한 정부가 대추리 이장을 구속시키다니. 지난 5일 오전8시부터 지질조사를 한다고 시추 장비들이 대추리에 들어왔다. 기계는 허락 없이 마음대로 마을에 들어와서는 모가 자라고 있는 논을 짓밟았다. 주민들은 몰려가 항의를 했지만, 경찰은 오히려 주민들을 연행했다. 경찰에 항의하다가 나도 끌러 나왔다. 왼쪽 다리에 상처 투성이다. 그날 마을 노인 2명이 저항하다 결국 부상 때문에 응급실로 실려갔다. 지난 5월 4일 행정대집행 당시 악몽이 떠올랐다. 주민들은 여전히 그날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총만 쏘지 않았을 뿐이지, 80년 광주와 다를 바가 없었다. 주민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8일 낮 청와대에 들어오다
자진출두 했던 김지태 위원장 석방을 촉구하며 6일부터 평택 경찰서 앞에서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그러나 단식농성도 허사였다. 김지태 위원장은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결국 구속됐다. 벌써 평택 사건으로 구속된 사람이 17명이다. 더 이상 평택 경찰서 앞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오두희 평택 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과 활동가 몇 명과 함께 8일 서울 청와대 앞으로 왔다.낮 12시에 청와대 앞 분수대에 왔는데, 경비대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1시간쯤 후에 경비대에서 눈치를 채고 연락을 했는지, 종로 경찰서 소속 경찰이 "신부님이 여기 웬일이십니까"라고 아는 척을 해왔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병력을 배치하고 바리케이트를 쳤다. 항의를 하자 겨우 바리케이트를 치웠다. 그 사이 분수대 뒤편 벤치에 자리를 깔았다.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펼침막도 걸었다.그러나 경찰은 준비해온 침낭을 압수했다. 오후4시쯤 목요 집회를 마친 민주화실천 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소속 어머니들 15명이 분수대 뒤편 벤치로 찾아왔다. 임기란 전 상임의장은 "대추리가 어디 다른 나라냐. 속상해 죽겠다"면서 울분을 터뜨렸다. 그는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실에 전화를 걸어 "날씨도 쌀쌀한데 침낭은 왜 빼앗아가느냐"면서 침낭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물 값'이라며 민가협 어머니들이 봉투까지 건네고 가셨다. 어머니들을 보니 눈물이 났다. 무기한 단식 농성. "까무러칠 때 까지 해보자"고 청와대에 왔지만 사실 내 몸 상태를 자신하기 힘들다. 칠십 노구를 끌고 여기까지 왔지만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 그러나 김지태 이장을 비롯한 구속된 17명이 석방되고, 대추리 철조망 공사를 중단하고, 미군과 재협상을 하라는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이 자리를 떠날 수 없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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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늘 별명이 따라붙었다. 별명들은, 한 사람에게 붙인 것치고는 사뭇 달랐다. 크게는 두 패로 나뉘었다. 그를 공격하려는 수식어와 그에게 존경을 보내는 수식어. '불순세력을 조종하는 수괴' 따위의 시대착오적 전문용어를 언론 지면에서 발견했다면, 이는 그에 관한 기사일 가능성이 짙다. 그는 자신에게 새겨진 '주홍글씨'를 30년이 넘도록 떼지 않고 있다. 아니, 주홍글씨는 그것을 새긴 자들이 떼어내야 할 것인데, 그들은 붉은 딱지를 붙일 줄이나 알지 떼어낼 줄은 모르는 자들이다. 힘 있는 자들에게 그는 늘 요시찰 대상이었다. 위험한 인물이었다. 다소곳함이라고는 없는 '불순'한 자였다. 그를 따라다니는 대한민국 정부 공식기록. 전두환 사령관을 대통령으로 배출한 바 있는, 초헌법적 정부기관 '보안사'에서 작성한 블랙리스트다. (이 기록은 1990년 보안사에서 군복무 중이던 윤석양씨의 양심선언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기록의 요점은 이렇다. "카드번호 169번. 전북지역 대표적 문제인물. 외고집에 타협할 줄 모르는 성격. 반항적이지만 신도들로부터 존경받음. 저돌적 성격으로 '깡패신부'라 불리움. 1976. 12. 29 ∼ 1977. 12. 31 대통령 긴급조치위반. 불순구호 제창…." 문정현 검고 거친 얼굴에서, 그에게 휴식이 필요함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다. 올해 칠순을 맞는 늙은 육신. 과거의 인물이어야 할 그가, 당대의 한복판에서 처절하게 뛰고 있다. 그는 왜 쉬지 않는가. 1975년, 사형판결이 난 지 하루도 못돼 형장의 이슬이 되었던 '인혁당 재건위' 사건 희생자들의 시신을 지키기 위해 유신정권에 맞서면서 그의 싸움은 시작됐다. 불의한 권력은 뒤탈을 없애기 위해 방금 죽인 이들을 가족에게 인계하지 않고 곧바로 화장하려 했다. 그때 운구차를 가로막고 나선 이가 문정현이었다. "한 번 죽인 이들을, 두 번 죽여서는 안된다"며 운구차 위로 올라간 이가 그였다. 운구차에서 떨어져 남은 평생 지팡이를 쥐고 다녀야 했다. 2006년, 대한민국 법정은 인혁당 재건위 관계자들이 불의한 법집행으로 죽음에 내몰렸음을 인정했다. 감춰두었던 '과거사'의 진상이 낱낱이 드러났다. 31년만의 명예회복이었다. 번뜩이는 유신의 총칼 앞에서 새들마저 숨죽이고 있을 때, 사제의 양심을 저버릴 수 없어 운구차를 가로막았던 젊은 신부, 이제는 백발이 되어버린 노 신부의 작은 소원 하나가 이루어졌다. 2006년 5월 28일,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였다 한 시골마을에서 늙은 사제가, 그처럼 늙은 신도들 앞에서 주님의 말씀을 건네고 있다. 번듯한 교회당은 아니었다. 이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가운데 하나인 소박한 공소였다. 미군기지가 확장되면 무너져야만 하는 운명의 장소, 평택 팽성읍 대추리였다. 예수께서 부활해 7주 만에 승천하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왜 예수님은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업신여기지 않고 보듬어 안았을까요. 모두들 죽음이 무섭다고 합니다. 할머니, 죽음이 무서운가요. 세상에, 죽지 않는 사람이 있던가요. 어쩌면 우리는 죽기 위해 태어나는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기에 더 깨끗하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엊그제 국방부에서 용역깡패와 포크레인을 앞세워 대추분교를 부수고, 논밭을 파헤치는 걸 보면서 우리 모두 울었습니다. 하… 이걸 어찌해야 하나, 이 시련을 어찌해야 하나…. 요즘은 익산에 있는 성당에도 통 내려가 보질 못했네요. 그곳 일도 봐야 하는데, 이 늙은이를 지명수배한다 어쩐다 말이 많고, 또 언제 저놈들이 다시 쳐들어오나 싶어 옴짝달싹할 수가 있어야지요. 저는 그냥 대추리를 교회로 삼으려고 합니다. 생명의 땅을 지키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예수님으로 삼으렵니다. 두런두런 늙은이들끼리 주님의 말씀을 나눈다. 주님의 몸을 나누어 먹고, 서로의 평화를 빈다. 그는 2년째 대추리에서 살고 있다. 대추리, 도두리의 늙은 예수님들이 그를 불렀다. 주름지고 까맣게 그을린 예수님들을 따라, 그의 얼굴도 새까맣게 탔다. 그들 모두는 대추리의 검은 십자가였다. 미사가 끝나고, 늙은 사제는 훌러덩 미사복을 벗었다. 그와 동시에 늙은 사제는, 대추리 주민으로 돌아왔다. 이웃들이 반갑게 그를 맞았다. 이런 그를, 어떤 자들은 '불순세력을 배후조종하는 수괴'라고 부르고 있다. 삼십일년 만에,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진실은 밝혀졌다. 참기 힘든 시간이었다. '대추리의 진실'마저 그처럼 오래 감춰둘 수 있을까. 대추리 공소의 시계는 멈춰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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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를 직접 둘러보고 눈물을 흘린 미국인이 있다. 그녀가 보기에 평택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에게 군경이 가하는 폭력의 배후에는 '제국주의 미국'이 있다. 그녀도 제국주의 미국의 정책에 반대하고 비판하는 많은 미국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녀는 이 지역 농민들의 땅에 대한 뜨거운 애착이 몹시 존엄하다고 느꼈다. 그런 만큼 농민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 배있는 이 땅을 파괴하는 군경과 미국에 대한 분노도 크다. 그녀는 한 주민이 경찰에 밀려 쓰러지는 모습을 인터뷰 도중에 회상하면서는 잠깐 울먹이기도 했다. 6월 한 달 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그녀는 대추리와 도두리 상황을 기록한 뒤 미국인들에게 널리 알릴 생각이다. 미국인들이 직접 미국정부에 압력을 넣어 평택미군기지 확장을 저지하는데 힘을 보태고 싶은 게 그녀의 소망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시에서 지난 1일 한국에 온 미국인 활동가이자 같은 지역의 진보언론인 월간 <뉴피플>(The New People, 웹사이트 www.thomasmertoncenter.org)의 기자로도 활동하는 작가 본 싱글테리(Von Singletary·21)씨를 5일 오후 평택시에서 만났다. 통역은 평화활동가 조약골씨가 수고해주었다(참고로 http://saveptfarmers.org/ 에서는 한미 평화활동가들이 영문으로 번역해 올리는 평택 관련 자료들을 찾을 수 있다).
- 어떻게 대추리까지 오게 됐나. "팽성 주민들의 투쟁에 대해 들은 건 겨우 두 달 전이다. 인터넷을 통해 한 친구로부터 평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미국 정부가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을 얼마나 폭력적으로 대해 왔는가를 알고 너무 화가 났다.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온 것이다." - 글을 쓴다고 들었는데? "피츠버그시에서 평화와 정의를 표방하는 신문인 < The New People>에 글을 쓴다. 이번 6월 호에 대추리, 도두리 이야기가 실렸고, 다음 호에 내 기사가 나간다. 미국에서도 미국 정부가 전 세계에서 벌이는 일에 반대하는 이들이 많다. 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미 정부가 벌이려는 전쟁과 폭력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믿고 있다." - 지난 6월 5일 대추리에서 국방부가 지질조사를 강행하는 상황을 보고 무엇을 느꼈나. "주민과 경찰이 충돌할 당시에 나이든 주민 한 분이 넘어져 뒤통수가 땅에 부딪치는 장면을 봤다. 그 모습을 보고 몹시 슬펐다. 대추리에 와 보기 전에도 군경과 주민이 충돌한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내 눈으로 직접 보면서 정말 슬펐다. 미군에 대해, 그리고 경찰폭력에 대해 강한 어떤 감정이 들었다. 나도 그 자리에서 무언가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자괴감도 들었다. 분명한 건 미군이 이 땅을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전에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대추리에 와 직접 보고난 뒤 그런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 방문한 지 며칠 되진 않았지만 주민들과 직접 얘기도 해보았나. "언어장벽 때문에 아직은 많이 못했다. 하지만 주민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려고 노력한다. 궁금한 게 있으면 질문해서 대답을 듣고, 그때 받은 인상을 기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도 몇 번은 통역이 있어서 직접 대화를 해본 적도 있다." - 어떤 인상이었나. "내가 생각하기에 기질적으로 민중들은 살아가는 방식이 비슷한 것 같다. 특히 이 지역 농민들의 땅에 대한 애착이 굉장히 강한 것이 놀랍고 존경스럽다. 땅을 존중하지 않는 미군과 한국의 군경을 보면서 어떻게 저럴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대추리, 도두리 땅에 대한 역사를 공부했기 때문에 주민들이 얼마나 고생하고 노력했는지 알고 있다. 그분들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느낀다." - 한국 평택에 미군기지 확장이 추진되고 있는 사실을 전에도 알고 있었나. "몰랐다. 겨우 두 달 전에 들어서 알았다." -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어떻게 생각하나. "미국은 군사기지를 넓히면서 아주 아름다운 땅을 다 망가뜨리려고 하고 있다. 어떤 형태의 미국 제국주의에 대해서도 나는 반대한다." - 대추리를 기록하는 일 말고 계획하고 있는 활동이 있다면? "이 싸움 말고도 여러 다른 중요한 이슈들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 미국에 귀국해서 미국 내에서 알리고 싶다. 예를 들어 인신매매, 여성운동과 농민운동 같은 이슈들이다." "대추리에서 벼가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보고 싶다" - 대추리에 오기 전과 온 뒤 자신에게 변화가 있나. "현장에서 직접 보고 있는 것 자체가 자기가 그 투쟁과 하나 된다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 오기 전과 온 뒤의 나는 많이 다르지 않을까?" - 미국인으로서 한국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모든 미국 사람이 다 나쁘다고 생각하지 말아 달라. 나쁜 짓을 하는 것은 미국 정부다. 실제 많은 미국 사람들이 미국 정부를 비판하고 반대한다. 어디에서나 그렇지만 정부라는 게 위는 돌보고 아래는 무시하지 않나." -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포기하지 말라. 계속 질기게 싸워 달라. 이 투쟁의 승리를 위해 나도 미국에 돌아가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 평범한 미국사람들은 물론 아직은 평택 문제를 모르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이다. 나도 미국에 돌아가서 이곳 소식을 널리 알릴 것이다. 미국사람들이 미국 정부에 직접 압력을 넣어 이곳 기지 확장을 저지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 대추리에서 벼가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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