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제주 바다와 윤대녕, 그리고 뼈아픈 질문

한국작가회의/[문학회스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7. 14. 00:33

본문

728x90
제주 바다와 윤대녕, 그리고 뼈아픈 질문
[여행기] 초여름 밤 그가 물었다 "당신도 외롭지요?"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홍성식(poet6) 기자   
▲ 제주 송악산 단애. 멀리 가파도와 마라도가 보였다.
ⓒ2004 홍성식
매혹적인 일탈을 권유받다

세상이 강요하는 규정과 틀이 견딜 수 없이 아픈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일까? 그러나, 그 아픔의 강도는 저마다 다른 법. 현재의 삶과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회한과 회의가 유난스런 사람들은 시대마다 있어왔다. 발 딛고 선 땅에서 언제나 날아가고 싶어하는 사람들.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은 그 비상(飛上)의 욕망이 유독 강한 부류들 중 하나다.

도시에서는 바다를 꿈꾸고, 바다로 가서는 또 다른 이상향을 그리워하는 대책 없는 철부지들. 장마와 태풍, 더위와 짜증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초여름 어느 날. 그 철부지 중 한 명이 또 다른 철부지 둘에게 '매혹적인 일탈'을 권유했다.

"어이, 우리 제주도 가자."

장편 <아버지>로 언필칭 '초특급 울트라 대박'을 터뜨려 출판사가 빌딩을 올리게 했고, 자신은 조직폭력배와 강도를 잡던 강력계 민완형사에서 소설가로 이름을 바꾼 김정현,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라는 해당화 향기 가득한 소설집을 낸 작가이자, 세계일보 문화부 문학담당 기자 조용호 그리고, 기자는 그 '매혹적인 일탈'을 함께 하기로 작당했다.

섬으로 가서는 이미 1년 1개월 전에 '육지'에서의 너저분한 삶을 버리고 '해피한' 제주도민으로 살고 있는 <은어낚시 통신>의 작가 윤대녕을 만나기로 전화를 넣어두었다. 윤대녕은 한 살 터울의 조용호와 문단과 기자세계가 알아주는 막역지우.

"태풍이 제주 인근으로 오고있다"는 기상청의 예보가 협박처럼 들려오던 날. 그 협박을 무시하고 제주행 비행기가 김포공항을 이륙했다. 기내에 오르자마자 환해지는 얼굴들. 일행 셋 모두는 전생(前生)이 길짐승이 아니라 날짐승이었던 듯 땅에서 발을 떼자마자 즐거워지고 있었다. 일상탈출의 유쾌함이 온몸을 '짜릿'하게 하던 금요일 오전이었다.

▲ 제주 바다. 검은 바위 위에서 흩어지는 포말을 보며 당신은 무엇을 떠올리는가?
ⓒ2004 홍성식

▲ 송악산 인근의 벼랑. 바위결이 퇴적된 흔적이 이채로웠다.
ⓒ2004 홍성식

지상에서 꿈꾸는 천상... 제주를 향해 날다

그렇다. 침대에서 담뱃불에 타죽은 독일의 시인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전언처럼 "추락은 우리가 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동시에 "추락하는 자만이 비상(飛上)의 공포와 희열을 알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추락하기 위해서는 날개 없는 우리야 날개 달린 비행기를 탈밖에. 추락하더라도 지금의 '이곳'이 아닌 미지의 '다른 곳'으로 가고싶어하는 사람들. 우리는 그런 부류의 인간들이었다. 하여, 그날 스튜어디스가 가져다준 원두커피의 향마저 사랑스러웠다.

1시간을 날아간 비행기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원한 탓에 '만발한 유채꽃 송이마다 칼이 물려있다(이산하의 장편 서사시 <한라산> 서문 중 일부 구절)'는 슬픈, 슬프기에 더 아름다운 섬 제주에 우리를 부려놓았다. 스무 살 이후 기자에겐 6번째 제주도 여행. 공항 앞 열대의 풍경이 반갑고, 살갑다.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과 <바람 타는 섬>을 처음 읽었던 열 여덟 시절이 떠올라 도착할 때마다 가슴이 서늘해지는 느낌. 그 서글프면서도 그늘진 감상은 수 차례의 방문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멀찌감치 '사슴을 닮은'-남자에게 이것이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내 하나가 손을 흔들어 일행을 반긴다. 평론가 김윤식이 "나는 그의 소설 속에서 존재의 시원(始原)을 보았다"라 극찬한 윤대녕이다.

송악산... 마라도... 서귀포항 그리고, 불현듯 만난 쓸쓸함

그날 우리는 '예민한' 작가 윤대녕의 '화끈한' 운전솜씨에 찬탄을 보내며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얼마 전엔 운전하다가 작은 시비가 붙었는데 한참을 창문 내리고 목소리를 높였거든요. 근데 대꾸 한마디하지 않던 여자가 차를 출발시키면서 '새 책은 언제 나와요'라며 웃더군요. 그때 이후론 어지간하면 내가 양보운전 하죠"라는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 송악산 아래 목초지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말.
ⓒ2004 홍성식
한라산을 제외하고는 제주도에서 가장 높다는 송악산 꼭대기에 올라 대한민국 최남단 가파도와 마라도를 안타까운 눈길로 마주한 순간. 일행 넷은 할 말을 잃고, 역사를 압도하는 풍광의 아름다움에 취했다.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초지를 내려보며 먹었던 삶은 문어와 조껍데기 동동주의 맛이라니. 술이 아니라 바다와 초원이 우리를 취하게 했다.

서울과는 판이한 환경 탓에 폭우와 햇살이 불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제주 내륙 도로를 가로질러 서귀포항으로 향했다. 윤대녕은 이 변덕스런 제주의 날씨마저 자랑했다. "여긴 비가 한번 오면 보통 이렇게 옵니다. 허허허." 말끝에 달리는 웃음. 13개월 사이에 그는 완벽한 제주도 사람이 되어있었다.

이윽고 서귀포항. 발령된 폭풍주의보 탓에 무리 지어 정박한 어선들. 그 어선들마다에 걸려있는 만선기원(滿船祈願)의 깃발. 이미 그때부터 낮술에 취한 기자는 낡은 어선의 대나무 깃발, 그 미세한 떨림이 한 인간의 전 생애를 아프게 돌아볼 수도 있게 한다는 생경한 깨달음에 가슴이 저렸다.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 살면서도 왜 우리는 쓸쓸한가? 아니, 쓸쓸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취한 윤대녕의 느닷없는 물음 "홍형도 외롭지요?"

그 쓸쓸한 마음으로 어찌 그냥 잠들 수 있을까? 약속이나 한 것처럼 사내 넷의 발걸음이 술집을 향했다. 길을 되짚어 올라와 도착한 제주항. 바다를 향한 통유리가 근사한 해미안(海美安)이란 옥호의 횟집에 들었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라는 제주의 석양이 핏빛으로 붉었다. 창 너머 석양 하나만 해도 더없이 근사한 안주가 될 듯했다.

제주산 갓돔과 보말죽, 등이 붉은 해삼과 옥돔구이, 싱싱한 날전복과 "사내들에게 좋다"며 주인 아주머니가 너스레를 떨며 가져다준 청각 등으로 차린 걸판진 술상. '한라산물 맑은소주'의 비워지는 속도가 너나없이 빨라졌다. 이윽고 찾아온 만취. 어느새 바다는 먹물빛 어둠으로 가득했다. 저 멀리 훤하게 밝았던 불빛은 오징어잡이 어선의 집어등(集魚燈)이었을까.

▲ 제주항 횟집에서 내다본 저물녘 풍경.
ⓒ2004 홍성식

▲ 제주항에서 바라본 먼바다의 불빛. 오징어잡이 어선이었을까?
ⓒ2004 홍성식
술은 술을 부르고, 취기는 호기를 부른다. 모두가 동의한 3차 술자리. 윤대녕은 제주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단골 재즈카페로 우리를 이끌었다. 페르시안 고양이를 안고 있으면 썩 잘 어울릴 것 같은 검은색 새틴 드레스의 여주인. 그녀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윤대녕이 캐롤 키드(Carol Kidd)의 '웬 아이 드림(When I Dream)'을 불렀다.

이슥한 밤. 어두운 카페를 울리는 피아노와 색소폰 소리. 그 견딜 수 없는 분위기에 젖은 누군가는 거구에 어울리는 않는 미성을 가진 데미스 루소스(Demis Roussos)의 발라드 넘버를 한 곡 뽑았던가? 그랬던가? 그리고, 새벽. 택시를 잡으러 네온사인 휘황한 시내를 내려오며 윤대녕이 지나가는 말처럼 대뜸 한마디를 던졌다.

"홍형도 외롭지요?"

엉망의 취기였지만 그때 기자는 몸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김윤식이 말한 '존재의 시원'도 아니고, 또 다른 명망 높은 평론가의 지적처럼 '낯설다는 것이 매력으로 빛나는' 것도 아닌 윤대녕 문학의 숨어있는 매력을. <은어낚시 통신>에서 시작, <남쪽 계단을 보라>와 <옛날 영화를 보러갔다>를 통과해, 최근 <누가 걸어간다>로 이어지는 윤대녕의 소설 속에서 기자가 읽은 것은 다름 아닌 '뼈가 아플 정도의 외로움'이 아니었던가.

그렇다. 어차피 문학과 문인이란 자신의 상처를 덧내 타자를 위로하는 존재. 자고로 소설가란 그리고, 시인이란 인간으로선 견디기 힘든 고독과 절망을 천형인 양 짊어지고 살아야할 슬픈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그 옛날로부터 지금까지. 윤대녕의 공안(公案) 같은 물음에 생각의 뿌리를 더 뻗어나가고 싶었지만, 곧 빈 택시가 왔고 이어 도착한 숙소에서는 꿈도 없이 깊은 잠에 들었다. 멀리서 파도소리가 끊임없이 철썩이며 보채던 밤이었다.

이중섭 기념관... "고독이란 예술가의 원죄구나"

제주에서의 이튿날. 전날의 폭음으로 인한 숙취는 끈질기고 지독했다. 지하 250미터의 바다에서 물을 끌어다 만들었다는 노천 해수탕(海水湯)에 오랫동안 몸을 맡겼지만 술독은 쉬이 사라져주지 않았다. 천근만근 노곤한 몸을 이끌고 도착한 이중섭기념관.

"살아 생전의 예술적 영예란 거지발싸개만도 못한 것"이란 고래로부터의 명제를 온몸으로 보여준 천재 화가의 삶이 고스란히 새겨져있는 현장. 사랑하는 일본인 아내를 가난 때문에 친정으로 보내고, 제주바다의 암초처럼 외롭게 연명했던 까칠한 턱수염의 영민한 사내가 현실인양 우리 앞에 다가섰다. 뻘밭을 기는 게와 해초로 하루하루의 먹거리를 겨우 해결했던 절대절명의 빈곤. 아, 이중섭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 이중섭기념관 입구의 석조물.
ⓒ2004 홍성식

▲ 화가 이중섭이 즐겨 그렸던 소재 중 하나인 소.
ⓒ2004 홍성식

▲ 이중섭이 세를 얻어 살았던 집터에서. 소설가 김정현(좌)과 윤대녕.
ⓒ2004 홍성식
바로 그때다. 전날 밤 윤대녕이 기자에게 던진 물음이 다시 떠오른 것은. "홍형도 외롭지요?" 맞다. 10대 후반에 시(詩)의 절정에 도달했고, 스무 살에는 자본의 시궁창 파리에 침을 뱉고 아프리카로 떠났던 쟝 니콜라 아르튀르 랭보의 조숙한 문장처럼 "외롭지 않은 영혼이 지상 어디에 있으랴."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서울로, 일상으로 억지로 발을 옮기는 길. 제주공항으로 가는 내내 두 명의 소설가와 두 명의 기자는 말이 없었다. 아직도 가슴 속 미망(迷妄)을 온전히 떨치지 못한 가여운 네 영혼들. 우리, 얼마나 더 살아야 "외롭지요"라는 물음에 "아니오. 그렇지 않소"라고 답할 수 있을지. 그러나, 이런 바람조차 미망인 것을 우리는 이미 안다. 왜냐, 고독이란 그리고, 외로움이란 '느끼며' 세상을 사는 자들의 원죄가 아니던가.

자욱한 안개를 뚫고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정북방을 향해 날았다. 제주땅에서 발을 떼는 바로 그 순간. 기자는 다시 '제주'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 바다, 그 파도, 그리고, 평생을 몸의 일부인양 안고 살아야할 외로움까지.

▲ 폭풍주의보가 내린 서귀포항 인근 바다. 멀리 떠있는 배들이 위태롭다.
ⓒ2004 홍성식

2004/07/13 오전 10:03
ⓒ 2004 Ohmynews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