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가을 하늘이 맑던 지난 10일 일요일 오후, 창 밖에서 분주한 소리가 들려 왔다. 나가 보니 집앞 밭에서 밭 주인이 들깨를 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밭 주인은 그의 두 아들과 함께 들깨를 베어 고구마를 심었던 자리에 천막을 펴 그 위에 들깨를 쌓아 놓고 있었다. 일요일을 맞아 오랜만에 집에 온 서울 사는 두 아들은 아버지를 도와 아침부터 호박과 고추 따기를 거들었다고 했다.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도 하나 둘씩 모여든다. 그 중에서 우리 옆집에 사는 청년은 "아저씨, 막걸리 받아 놓으셨어요? 시원하게 한잔 하고 일하셔야지요?"라며 막걸리부터 찾는다. "아, 막걸리는 일 끝내고 마셔야지. 이따가 우리 집에 와서 한잔 하세"라며 집주인은 도리깨질을 하면서 대답한다. "그런데 이거 홍두깨지요? 홍두깨로 두들기니 소리가 좋네요." "아, 이 사람아 이건 홍두깨가 아니라 도리깨라는 것이야. 도리깨." "도리깨질 안 해 봤어? 홍두깨는 다듬이질 할 때 쓰는 방망이가 홍두깨지."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도리깨와 홍두깨를 구분 못한 이 청년의 말에 우리는 웃을 수 있었다.
"그럼 내가 산에 가서 노가리 나무 구해다가 만든 것이지. 어려서부터 도리깨질 했고 여러 개 만들었는데, 뭐. 그거 만드는 건 일도 아냐." "노가리 나무가 어떤 나무에요?" "노가리가 노가리 나무지 뭐야. 우리네는 노가리 나무라고 그래. 다른 이름은 몰라." 노가리 나무로 만든 도리깨의 회전 부위는 삼지창처럼 끝을 뾰족하게 깎아 노끈과 두꺼운 고무로 본체와 연결되어 있었다. 도리깨질이 보기에는 쉬운 것 같아도 몇 번 휘두르면 힘이 든다. 그러나 앞사람과 박자를 맞춰서 탁탁 치다 보면 신이 나서 힘든 것도 잊고 도리깨질을 하게 된다.
'바쁠 때에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린다'는 옛말이 있듯이 할아버지가 깨 터는 모습을 보고 있던 손녀에게 빗자루를 가져 오라고 시켰다. "네"하고 달려간 5살짜리 손녀는 자기 키보다 더 큰 빗자루를 가져온다. 손녀가 빗자루를 가져오자 밭주인과 친구들은 "고놈, 개보다 낫다" "그러게 말이야 이제 좀 컸다고 심부름도 하고 개보다 낫네"라며 기특해 한다.
주변에는 아파트와 빌라, 전원주택이 들어서 있다. 고층 아파트를 앞에 두고 도리깨질을 하고 있으니 분위기가 썩 맞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이 밭이 아니면 우리 동네는 완전히 시멘트 지대가 되기에 나는 이밭에 건물이 들어서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밭주인도 자기가 죽기 전까지는 계속 농사를 지을 것이라고 한다. "여기가 내가 태어난 곳인데 여기 떠나서 어디 다른 곳에 가서 살 수 있겠어? 서울 가서 살아 봐야 좁은 아파트 안에서 하루 종일 뭐하겠어? 자식들 다 컸겠다 여기서 계속 농사 지으면서 살아야지. 나는 쌀하고 고기만 사서 먹으면 돼. 고추, 배추,무, 가지, 웬만한 채소는 다 내가 키워서 먹잖아. 집 장사들이 내 밭에다가 집 지어서 팔자고 하는데 내 집 있는데 뭐 하러 집을 또 지어? 여기 땅값이 비싸니까 집 지어서 팔면 돈이야 되겠지만 밭이 없으면 우리 부부는 심심해서 못살아. 그리고 내 먹을 것은 내가 키워서 먹어야지 안전하지." 어떻게든 밭을 지키겠다는 그의 확고한 의지가 나에게는 고마울 뿐이다. 이 밭이 없었다면 나는 이곳으로 이사 오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 밭이 없어진다면 나도 이 동네에서 계속 살 필요를 못 느낄 것이다. 집앞에 텃밭을 빌릴 수 있는 다른 동네에 가서 살려고 할 것이다.
주인 아주머니에게 깨가 얼마나 나오런지 물어 보았다. "글쎄, 올해는 깨 농사가 잘 돼서 이거 한 일곱 말은 나오겠네. 작년에는 겨우 다섯 말 정도 나왔는데. 우리 식구 일년 먹을 꺼니까 다섯말 정도만 나오면 돼. 이거 음식 만들 때 통째로 쓰기도 하지만 기름 짜서 먹으려고. 요새 기름은 중국산이 대부분이고 국산은 비싸."
| ||||||||||||||||||||||||||||||||||||||||||||||||||||||
2004/10/14 오후 6:17 ⓒ 2004 Ohmynews | ||||||||||||||||||||||||||||||||||||||||||||||||||||||
| 수세미 한 묶음 들고 식모살이 떠난 그 누이 (0) | 2004.10.19 |
|---|---|
| 시골교회의 밭 심방이 재미있는 이유는? (0) | 2004.10.18 |
| 나이 든 후에도 배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0) | 2004.10.15 |
| 사랑으로 지은 아름다운 황톳집 (0) | 2004.10.14 |
| 황금빛 가을 들녁에서 식도락을 즐기다 (0) | 2004.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