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온 신부들은 왜 도망갈까 | |||||||||||||
[김영호 칼럼] 한국도 다민족-다문화 국가, 그들을 보듬고 끌어안아야 | |||||||||||||
“베트남 절대 도망가지 않습니다”란 커다란 글귀 아래 ‘국제결혼전문’이란 말과 함께 전화번화가 쓰여져 있다. 미국 국무부가 11일 발표한 인신매매 보고서에 등장한 현수막 사진이다. 동남아 여성의 매매혼 실태를 고발하면서 그 증거로 공개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도로변에 국제결혼을 미끼로 하는 인신매매 광고를 쉽게 볼 수 있다고 이 보고서는 비판했다. 대도시를 벗어나면 곳곳에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라고 쓴 커다란 현수막을 숱하게 볼 수 있었다. ‘숫처녀 보장’, ‘재혼, 장애우 환영’, ‘경비 후불제’란 조건까지 내걸었다. 이것은 노골적인 여성의 상품화이고 인간성 파괴를 말한다. 여성-인권단체들이 나서 문제 삼자 단속한다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어디에선가 그 따위 현수막이 한국사회의 야만성을 알리고 있을 것이다. 베트남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안다. IOM(국제이주기구) 하노이 사무소가 입수한 ‘여성연맹’의 자료가 인간상실을 말하고도 남는다. ‘처녀다’, ‘석 달 안에 당신 소유가 된다.’, ‘1년 안에 도망가면 교체를 보장한다.’, ‘정가제다’ 등 매매혼을 부추기는 광고내용이 그것이다. 현지언론 보도도 부정적이다. 그들이 굴욕적으로 살며 착취당하고 있다, 신부는 18세인데 신랑은 50-60대라는 내용 등이 주류를 이룬다. 그들이 왜 낯설고 말도 통하지 않는 한국에 오려고 할까? 한마디로 가난 때문이다. 더 잘 사는 나라로 시집가면 친정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랑이 잘 사니 일하지 않아도 된다, 가족에게 매달 돈을 붙일 수 있다”는 중매업자의 꾐에 넘어가는 것이다. 1960년대 이 나라의 농촌처녀들이 도시로 나가 공장에 취직해서 동생 학비 대고 가족을 돕던 어려웠던 시절과 다를 바 없다. 베트남 신부는 거의 메콩 델타의 농촌 출신이다. 다른 지역 출신도 늘어나는 추세이나 북부지역은 거의 없다. 학력은 90% 가량이 중학교 졸업이다. 그 일대는 1인당 1일 평균 수입이 1달러 수준으로 빈한하다. 연령은 잣 스무 살로 애 띄다. 평균 21세이나 그 중 10%는 18세라고 한다. 돈을 벌여야 하는 절박한 사정이 어린 그들을 소녀신부, 이주신부로 내몬다. 일자리를 얻으려 한국에 가기란 여간 어렵잖다. 고용허가제에 따라 취업이주는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한글과 기술을 배우려 학원에 다녀야 한다. 그 돈이 만만찮다. 관청을 찾아 수속절차를 밟을 때마다 브로커들이 끼어 뒷돈을 챙긴다. 현지에서는 출국까지 1만 달러는 족히 들어간다는 게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대학 나와도 취직이 하늘에 별 따기이나 한 달에 150달러를 벌까말까하니 여간 큰돈이 아니다. 그 까닭에 팔려가듯이 시집가는 길을 택한다. 막상 와보니 무지개의 나라가 아니다. 농촌이란 그 곳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온 식구가 농사일에 매달려야 한다. 시집도 생활이 윤택하지 않으니 친정 집을 도울 길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고국에 두고 온 식구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떠날 때는 보통 한 달에 100달러는 붙여 주리라고 마음을 먹는단다. 그것은 허사로 돌아가고 차별을 느끼며 갈등을 겪는다. 문화충격에다 신랑마저 엉뚱하다면 그 심정이 괴롭기 짝이 없을 것이다. 더러는 한국에 가면 그 길로 도망쳐서 돈을 벌겠다고 벼르기도 하는 모양이다. 아예 위장결혼을 작정하고 들어오는 것이다. 중매업자가 또 돈 뜯으려고 일자리가 있으니 나오라고 충동질도 한단다. 나오면 서로 소통도 되고 필요한 정보도 주고받는다. 허드레 일을 하더라도 안 먹고 안 입으면 한 달에 몇 백달러는 모을 수 있다. 송금을 도와주는 브로커가 있어 그것으로 불법체류가 들통날 일은 드물다. 한 두 시간 대면하고 결혼했으나 살면서 정들어 잘 사는 가정이 많을 것이다. 그래도 가정만으로는 안 된다. 사회가 마음을 열고 태어난 곳을 등지고 낯선 땅에서 둥지를 틀려는 그들을 보듬고 끌어안아야 한다. 한국도 다민족-다문화 국가로 나가고 있다. 2003년에만 해도 1,522명에 불과하던 베트남 신부가 2005년 5,822명, 2006년 9,812명으로 크게 늘고 있다. 그들도 포용하지 못한다면 국제사회 공동체의 일원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들에게 소통을 위한 관계망을 만들어 주고 고국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 줘서 정착하도록 돕자. 무엇보다도 사회가 베푸는 따뜻한 인간적 대우가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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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0 [11:53] ⓒ대자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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