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조, 옥한흠, 김동호 목사의 공통점 | |||||||
[이드의 종교시평] 종교의 선교행위는 선을 표방하더라도 죄악행위 | |||||||
기독교 선교는 죄악임을 선포함 아프간 피랍사태 이후 그동안, 시민대중이 분당 샘물교회 박은조 목사의 책임론을 줄기차게 제기했지만 끄덕도 하지 않던 박 목사가 옥한흠 목사 등 교계 원로들의 자문을 구한 뒤 샘물교회 당회에 사표를 제출하고, 당회는 사표를 반려했다는 코미디가 일어났다. 자기 교단의 원로목사와는 전혀 상의를 하지 않고 타 교단 소속인 옥한흠 목사(사랑의교회 원로) 등과 만나 자문을 구한 자체가 기만이며 노회가 아닌 당회에 사표를 제출한 것도 시민대중을 우롱한 것으로 밖에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분당샘물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수도남노회 소속이다. 박목사는 한민족복지재단, ANF 이사장, <뉴스앤조이> 발행인 등 대외적으로 화려한 활동을 했을 뿐 아니라 자기가 속한 교단인 예장(고신) 총회 10명 임원 중 한명으로서 부회록 서기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으며 수도남노회의 부회장이란 신분이기도 하다. 조만간 노회장, 총회장 등 예장(고신)의 핵심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교단내의 중추 세력 중 한 명이라는 뜻이다. 박 목사의 퇴진이 진정성을 획득하려면, 그가 속한 노회와 총회의 간부직부터 사임했어야 했다. 그다음 순서로 자신을 임명한 노회에 당회장직의 사면서를 제출했어야 했다. 예장(고신) 총회 헌법 제40조 목사의 사면을 보면, “1.자유사면(목사가 자유로이 사면하고자 하면, 노회에 사면서를 제출하고 노회는 그 사면이류를 조사한 후, 그 이유가 충분하면 사면을 승낙한다.) 2.권고사면(개체교회가 목사의 계속 시무를 원하지 않을 때에는, 노회가 목사와 교회 대표자의 설명을 청취한 후 처리한다.)”라고 되어있다. 그러므로 샘물교회의 위임목사인 박은조가 진정으로 사임할 의사가 있었다면 당연히 예장(고신)수도남노회에 사임의사를 밝혔어야 했다. 솔직히 필자 개인의 의견으론 자유사면이 아니라 권고사면 등 교회 혹은 교단 자체의 징계절차를 밟아야한다고 본다. 소나기는 피하고 보라는 게 소위 교계 원로들의 뜻인 듯싶다. 2달 정도 언론을 피해 칩거생활을 할 것을 부탁한 옥한흠 그 외 개신교에서 비교적 개혁적인 목사로 알려진 높은뜻숭의교회 김동호 목사 등의 설교를 살펴보면 개신교계의 의도가 자명해진다. 옥목사는 지난 9일 샘물교회에서 행한 설교를 통해 “비난하면 돌멩이 맞아라! - 국민비난은 교회에 쌓인 악감정 폭발한 것”등 이번 사건에 대한 기독교계의 책임론을 거론하는 듯했으나 설교 말미에 "선교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선교를 하는 사람의 그릇이 질그릇이라 물의도 일으킨다"며 "(이번 사태로 인해) 샘물교회가 갖고 있는 비전 자체를 후회하지 말라"고 말함으로서 박은조 목사에게 원천적인 면죄부를 주었다. 김동호 목사의 설교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그는 9일 예배에서 “세상에 손님과 싸우는 장사꾼은 없다. 장사를 그만 둘 사람이라면 손님과 싸울 수 있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졌다면 그 전적인 책임은 우리에게 있지 세상에게 없다” 등의 표현으로 지혜로운 선교의 방식을 거론했다. 그리고 “우리가 멈추어야 할 것은 잘못되고 지혜롭지 못한 그동안의 선교이지 순수한 의미의 선교 자체일 수는 없다”며 “세상도 우리에게 선교가 지혜롭지 못하다고 경고할 수는 있지만 선교 자체를 금하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선교지상주의를 긍정함으로서 박은조 목사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소위 개혁을 외치는 목사와 수많은 교인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는 원로 목사의 입술에서도 이렇게 선교, 선교를 외쳐대니 그 밖의 다른 목사와 신도들의 입장은 어떠할 것인지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하지 않은가? 아프간 피랍 사태를 '사탄의 도전'이나 선교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순교로까지 간주하면서 선교 활동 노선을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 보수,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이라면, 당장은 국민적 비난 여론이 비등한 만큼 낮은 자세로 고개를 숙이고 자숙하되 적극적인 선교 방식을 바꿀 필요는 없다는 주장은 기회주의적 근본주의자로 분류할 수 있겠으며, 교회를 향한 바깥세상의 실망과 원망, 정죄와 부정적인 비판에 귀 기울여야 하며, 선교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만 한다는 주장은 소위 개혁을 표방하는 자들의 것이라고 보면 된다. 기독교 선교는 사람의 목숨을 내팽개칠 정도로 그렇게 소중하고 거룩한 것일까? 필자는 이글에선 마녀사냥이니 십자군전쟁이니 아메리카인디오 학살이니 등 기독교 잔혹사에 대해선 더 이상 자세히 거론하지 않겠다. 물론 현대의 기독인들은 그들 믿음의 선조들이 행한 사악한 방식으론 선교를 하지 않는다, 김동호 목사의 표현대로 손님과 싸우지 않는 방식을 최대한 개발하여 전도를 하고자 한다. 그런데 필자는 왜 선교자체를 죄악시할까? 그 이유를 지금부터 설명하겠다. 이번 아프간 사태의 초기부터 가장 논란이 되었던 것은‘봉사’냐 ‘선교’인가하는 용어의 정리 문제였다. 몇 번 지적한 바 있지만 이번 아프간 피랍들의 여행이 봉사냐 혹은 선교이냐 하는 구분은 전혀 의미가 없는 소모전이었다. 왜냐하면 기독인들은 봉사자체를 선교의 일환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편적으로 봉사라고 할 때, 우리는 휴머니즘을 연상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다르다. 기독교의 봉사는 그리스어로 디아코니아(diakonia)라고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기반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즉 기독인들이 순수하게 봉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 바탕에는 예수의 사상을 전한다는 것이 내재되어 있다. 기독인들의 표현대로라면 예수의 말은 소위 복음이 된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기독교가 종교의 하나란 말에 거부감을 나타내며 굳이 복음(福音)이라 한다. 그런데 기독교 사상이 과연 복음일까? 기독교가 기쁜 소식인가 하는 데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 신자의 입장에선 복음일지라도 불신자의 입장에선 화음(禍音)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보길 권한다. *원하던 대학의 합격 통지서가 내 손에 쥐어 졌다. *제대 특명이 떨어 졌다. *그녀가 드디어 나의 사랑을 받아 줬다. *우리 사랑의 결정체가 우렁차게, 세상에 태어난 신고식을 한다. *이번에 무사히 진급이 될 거라고 담당 이사가 언질을 준다. *아파트 분양에 당첨이 되었다. *자식 넘이 지난 모의고사에 성적이 꽤 올랐다고 하더군. *모든 열정과 정성을 바친 우리 회사의 제안이 드디어 채택되었다 한다. *어머니의 수술이 무사히 끝났다는 담당의사의 말씀. 뭐 이런 게 평범한 우리네 일상사의 기쁜 소식이 아니겠는가? 누명으로 인해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집행하는 날, 진범이 잡혀 새 생명을 얻게 되는 기적을 경험했다면 그 보다 더 기쁜 소식이 없겠고. 국가라는 큰 틀에서 보면, 종전이 되었다 한다, 드디어 해방이 되었다, 우리의 소원인 통일이 곧 된단다 등 이러한 것들이 복음이 아니겠는가? 자 그러면 기독교인 들이 주장하는 그 복음이라는 것을 살펴보기로 하자. 나름대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당신은 죄인이라고 선포한다. 먼 옛날 우리의 선조이신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빠져 야훼(여호와)의 명을 어기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지었고, 그 죄를 원죄라 하는데 모든 인류는 그 원죄라는 것에서 벗어 날 수 없다고 한다. 하나님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우리 인류를 불쌍히 여겨 자신의 하나 뿐인 아들을 이 지구에 보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게 했단다. 그 대속의 은혜에 힘입어 그 사실을 믿기만 하면 지옥에 가지 아니 하고 영원히 천국에서 복락을 누린다 한다.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이 아닌가라고 하는데.... 그냥 일반 상식으로만 얘기해 보자. 갑자기, 알지도 못하고 들어 보지도 못하던 유대인을 등장시켜, 나름대로 착하게 성실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을 졸지에 지옥 가야할 죄인으로 둔갑시키곤, 예수 믿어라 그러면 천국 아니면 지옥, 이런 황당한 스토리가 어떻게 기쁜 소리라 할 수 있는가? 차라리 저주의 소리가 아닌가! 아니면 뭔가 음모를 꾸미는 속삭임이 아니던가! 개신교의 근본도그마인 ‘원죄론’과 ‘이신칭의론’에 대해 조금 과장을 하여 설명을 해보았다. 기독교는 선교를 최고의 선이라고 선전하며 신도들에게 주입시키고 있지만, 불신자 특히 타종교를 신봉하는 이들에겐 거의 범죄 수준의 행위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특히 현대는 인터넷과 매스미디어 등을 통해 지구촌 어디라도 기독교 도그마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그 교리와 경전을 접할 수 있는 시대이다. 종교는 근본적으로 개인의 문제이다. 지금은 전도 혹은 선교를 통하지 않더라도 종교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 그 정보를 선택하느냐 유보하느냐 혹은 부정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각 개인이 고민하고 선택할 문제이다. 종교를 신봉하는 이의 생활 태도는 그 선택에 많은 참고가 된다. 마태복음 24장 14절에 있는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라는 말과 사도행전 1장 8절의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라는 구절을 전가의 보도처럼 선교의 당위성을 합리화하는 이들에게 경고한다. 첨삭(Interpolation) 논란이 있지만 마태복음 24장 14절의 내용을 그대로 인정한다면, 기독인들은 정말 선교를 포기해야만 한다.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라는 말을 지구촌 모든 인류가 예수를 믿을 때 지구가 멸망하고 예수가 재림한다고 해석한다면, 애초에 기독교의 종말론 자체가 허무맹랑하게 된다. 온 세상에 예수의 복음을 전파되었을 때라고 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갓 태어난 아이에게 예수의 말을 전파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은 더욱 심한 모순에 빠지게 된다. 지구가 사각형이라고 믿었던 고대인들이 상상했던 땅 끝은 과연 어디일까? 오늘날 땅 끝이 없다는 것은 초등학생이라도 다 안다. 그 땅 끝을 온 세상이라고 해석해도 마찬가지이다. 도대체 어떤 기독교로 개종시키라는 말인가? 가톨릭? 동방정교? 이집트 콥트교? 혹 개신교라면 더욱 복잡해진다. 루터교, 성공회,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오순절파, 몰몬교, 여호와의증인, 안식교, 한국에만 200여개 이상의 교단으로 갈라진 장로교....등등 도대체 어떤 기독교의 복음으로 예수의 증인이 되어야할까? 바이블에는 목숨이 다하도록 충성을 하고 땅 끝까지 전도하라는 말도 있고, 그 선교를 뱀처럼 슬기롭게 하라는 말도 있지만,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 라는 말도 있다. 바이블을 핑계로 자신이 속한 교회 혹은 교단의 세를 불리는데 이용하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를 덧붙인다. 가장 보수적인 교단부터 가장 개혁적이라고 자부하는 이들까지의 공통점, 전도와 선교에 대한 열망은 이제 포기해야만 할 때이다. 기독교의 본산인 유럽과 미국 등에서 왜 종교다원주의가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요구되고 있는가를 심각히 받아들여야만 한다. 기독교 혹은 종교의 선교(포교) 행위는 그것이 아무리 선을 표방하고 있더라도 죄악행위임을 지적한다. 의심은 죄악이란 협박 대신에 전도는 죄악이란 사실을 인지하기 바란다.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 유교(혹은 힌두교) 등 세계 4대 종교 중 오직 기독교만이 선교지상주의를 채택하고 있음을 명심하라. 자기 땅에 이교도들이 들어오면 죽여야 된다고 믿는 사람들과 죽어도 이교도들을 개종 시켜야겠다고 믿는 사람들이 만나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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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1 [01:21] ⓒ대자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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