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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냉장고가 널리 보급되고 김치가 상품화되면서 김장철이 조금 애매해진 가정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겨울맞이는 역시 시끌벅적 한바탕 시끄러워지는 김장채비로 시작되는가 봅니다. 떠꺼머리 총각처럼 지푸라기 질끈 동여맨 커다란 배추엔 노란 고갱이가 꽉 차 있습니다.
일전에 '이승과 저승의 간이역'이라고 소개한 정토마을에서도 지난 25일과 26일 양일간 겨울을 나기 위한 김장담그기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당초엔 28일까지 할 계획이었으나 봉사자들의 당찬 일처리가 이틀이나 시간을 앞당겼습니다. 여느 가정집의 겨울나기와는 달리, 생의 끝자락에서 잠시 마음의 평온을 찾고 있는 암 말기환자들이 어쩌면 마지막으로 맛 볼지도 모르는 최후의 만찬이 될 김장을 담그고 있는 것입니다. 봉사자들이 이날 담근 김장은 만찬 같은 용도뿐 아니라 정토마을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겨우내 먹어야 할 반찬이며 반양식이 되기도 할 겁니다. 올 겨울 정토마을에서 만들고 있는 김장은 이 마을뿐만 아니라 주변 독거노인가정에도 나눠주기 위해 여느 때보다 조금 더 넉넉하게 준비했습니다. 외롭고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하는 독거노인들에게 조금씩 나눠주는 김장을 가치로 따진다지면 가소로울지 모르지만, 보이지 않는 나눔의 마음과 의미는 천만금보다 값지고 한여름 햇살보다 따뜻할 겁니다. 몇 포기 김장이지만 외로움을 덜 수 있는 포근한 솜이불이 되어 외로운 할머니, 할아버지들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줄 게 분명합니다.
오라고 강요한 적 없고 돌아갈 때 차비 충당할 용돈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서울과 경상도 그리고 충청도 등 여기저기서 올라온 다수의 아줌마와 아저씨들이 양팔을 걷어 올리고 일을 합니다. 해야 할 김장은 무려 배추 1000포기에 무가 2접이나 된다고 합니다. 필요한 배추 중 절반에 가까운 400포기는 정토마을에서 농사를 지은 수확물이며 나머지 600포기와 무는 후원자들이 모아준 성금으로 구입한 것입니다. 배추와 무는 이미 스님께서 고르고 골라 좋은 것들을 널찍한 공터로 옮겨놓은 상태였습니다.
배추는 절집 김치와 일반 가정용 김치로 담았습니다. 절집김치와 일반 가정용 김치가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들어가는 양념이 다르니 그렇게 담갔습니다. 몇몇이 마늘을 까고 파를 다듬으면, 한 머리 빙 둘러앉은 사람들은 '또닥또닥' 도마 소리 내며 무를 채 썰고 생강을 다듬습니다. 마늘을 까다 눈물 펑펑 흘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연거푸 재채기를 해 대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는 쑥갓과 호박을 손질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소쿠리와 바구니가 여기저기 널리더니 커다란 통에서 절인 배추를 한 포기씩 꺼냅니다. 부서지기 십상으로 빳빳해 조심스레 건네주고 건네받던 배추들이 부드럽게 야들야들 숨죽어 있습니다. 절인 배추들은 그 부피도 작아졌지만 아무렇게 만져도 될 만큼 질겨졌습니다.
고갱이에 숨어있던 배추 향이 후각을 자극합니다. 곱게 채 썬 무에 갖은 양념 듬뿍 넣어 잘 버무린 김장 속을 절인 배추에 차곡차곡 채워 넣습니다. 책장 넘기듯 배추 잎 하나하나 넘기며 구석구석 덧칠하듯 손끝으로 양념을 바릅니다. 이렇게 버무려진 배추들은 차곡차곡 김칫독에 넣습니다. 텅 비었던 커다란 독에 버무려진 배추가 한 켜 한 켜 쌓이더니 어느새 그득해 집니다. 그득한 김칫독이 하나 둘 늘어가면서 산더미처럼 쌓였던 푸성귀 배추가 어느 듯 맛난 김장이 되어 일꾼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합니다. 땅을 깊숙이 파고 김치 통을 묻는 것은 아무래도 남자들 몫이었습니다. 삽과 괭이 그리고 곡괭이까지 동원해 주방 뒤 공터에 사람 한길만큼 땅을 파고 통을 묻었습니다. 직사광선 가려주고 어는 것을 막아줄 만한 곳이니 아주 훌륭한 김치광이 되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이면 쏟아내는 입담도 재미있지만 역시 그때 그때 뭔가를 먹는 것도 빠트릴 수 없는 재미입니다. 일이 마무리 될 때마다 먹거리 잔치가 벌어집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모여있다보니 뭐든지 맛있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그릇이 비워지곤 합니다. 배추를 손질할 때는 노란 고갱이에 된장이 차려지더니 무를 손질할 때는 아삭아삭한 무가 먹기 좋게 잘려져 나왔습니다. 무 먹고 트림하지 않으면 산삼 먹은 것보다 낫다며 뭉툭한 무를 통째로 우적우적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남은 양념에 참기름과 설탕을 조금 넣어 버무린 겉절이도 한상 차려졌습니다. 누구 입이 더 큰가 내기라도 하듯 볼이 미어지게 한 입씩 겉절이를 먹고 있습니다.
쌓아 놓은 돈이 있어 뭉턱뭉턱 빼다 쓰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물주가 있는 것도 아니니 십시일반 후원자들이 내놓는 후원금과 기꺼이 땀방울 흘려주는 봉사자들의 손길로 꾸려지며 조금씩 그 역할을 넓혀가는 그런 곳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들은 이렇게 수 백리 길 마다않고 가족과 친구, 동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듭니다. 불교 관련 인터넷 카페 동호회원과 불자 그리고 일반봉사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의 따뜻한 맘과 부지런한 손길이 정토마을과 주변에 살고 있는 독거노인들의 김장독을 채웠습니다.
겨울이 깊어가며 정토마을과 김장을 나눠받은 독거노인가정에도 눈이 내리고 삭풍도 불어올 겁니다. 그렇지만 올겨울은 그렇게 삭막한 겨울만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들의 밥상에 올라 온 건 김장뿐 아니라 사람들이 담가놓은 마음도 함께 차려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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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28 오후 1:57 ⓒ 2004 Ohmynew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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