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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 껍질은 빨랫줄이나 처마 밑에 가로 질러진 대나무 위에 걸어 말렸습니다. 가을 햇살에 잘 말려진 감 껍질은 큰 방 벽장 속에 꼭꼭 숨겨두었다가 겨울철이면 군것질 대신 가족들에게 가끔씩 간식으로 내 놓았습니다. 곶감보다는 덜 달았지만 그러나 딱딱하게 씹히던 다디단 감 껍질은 아직도 내 혀끝에 달게 녹아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래채 처마 밑에 칡을 두 줄로 나란히 매달아 비비 꼬아가며 감 꼬챙이를 한 줄씩 끼우며 매달았습니다. 꼬챙이에 매달린 곶감들은 가을 햇살과 바람이 다녀가며 말랑말랑 마르기 시작했습니다. 통통하던 곶감들이 홀쭉해지고 붉게 빛나던 색깔이 검붉은 색으로 변하기 시작하면 아버지는 새벽녘이면 곶감을 안방으로 걷어와 윗목에 앉아 말아 접기 시작했습니다. 낫으로 싸리나무 꼬챙이 한 쪽 끝을 잘게 쪼개서 휘어진 낫 등 부위로 탁탁 두들겨 곶감이 못 빠져 나오도록 둥글넓적하게 만든 다음 곶감을 착착 말아 접었습니다. 그런 뒤 열 개의 꼬챙이를 모아서 양쪽에 ‘ㅅ’자 모양으로 엇갈리게 묶어 마당에 임시로 세워진 통나무에 걸쳐 말렸습니다. 곶감이 어느 정도 단단히 마르면 아버지는 곶감 열 개가 밀착되게 다시 말아 접기 시작했습니다. 곶감을 다 말아 접고 나면 싸리나무 끝을 잘라 잘게 쪼개서 곶감이 못 빠져 나오도록 휘어진 낫 등 부위로 탁탁 두들겨 둥글넓적하게 다시 마무리 지었습니다. 다 말아진 곶감은 바닥에 네 줄을 놓고 그 위에 세 줄, 두 줄, 한 줄씩 피라미드식으로 예쁘게 쌓아 올려 잘게 쪼갠 칡으로 한 가운데를 묶어서 한 접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뒤 마당 한 켠에 세워진 통나무 위에 막대기를 여러 개 가로질러 볏짚을 깔고 그 위에 곶감을 한 접씩 착착 쌓아 볏짚을 덮고 다시 이엉으로 덮어뒀습니다.
그러나 곶감에 흰색가루가 나오지 않고 곶감이 말라있으면 아버지는 “큰일이네, 꼬깜에 옷이 안 나고 그냥 말라부네” 하며 혹시 곶감 농사가 망치지나 않을까 걱정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 날 밤, 아버지는 곶감을 덮어 놓은 볏짚과 이엉을 벗겨 밤이슬이나 서리에 맞도록 했습니다. 말라버린 곶감들이 밤이슬이나 서리에 맞아 촉촉이 젖어 흰색가루가 나오도록 신경을 썼던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곶감 접으시던 새벽녘이면 나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살포시 눈을 뜨다 다시 얼른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이상허네. 요 꼬깜은 어쩌서 왜 아홉 개뿐이 안 된다제. 내 분명히 열 개씩 세어서 꼈놨는디 하나가 모자라부네. 혹시 도수 요놈 새끼가 빼묵어분 것 아녀.” 곶감이 한 개씩 모자랄 때마다 아버지께서는 잠자고 있는 내 얼굴을 바라보고 계시는 것 같아 나는 쿨쿨 자는 척 해야 했습니다. ‘지금 일어나면 아부지한테 혼날까? 그 때 안 빼묵고 참아버려야 했는디 괜히 빼먹어버려 인자 아부지한테 혼나게 생겼네.’
아래채 처마 밑에 곶감이 매달리기 시작하면 나는 빼먹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해 곶감 앞에 늘 서성거리곤 했습니다. 혹시 곶감 한 개가 더 매달려져 있는 꼬챙이는 없는지 한 줄씩 세어보다 곶감 한 개가 더 매달려져 있는 꼬챙이를 발견하면 너무 기뻐서 곶감을 빼먹기도 전에 입 안 가득 침이 고이곤 했습니다. 열 한 개가 매달린 곶감 줄이 아니더라도 곶감 앞에 서 있기만 하면 나는 빼먹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아버지 몰래 하나씩 빼먹곤 했습니다. “에라이 모르겠다. 요 중간쯤에서 하나 빼묵어불자.” 곶감 열 개가 알맞은 간격으로 줄줄이 꿰어져 있다가 하나가 툭 빠져 나가버리자 곶감 꼬챙이는 이빨 빠진 모양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대로 두면 아버지께 들킬까봐 싸리나무 꼬챙이 길이에 맞게 다시 곶감 아홉 개를 적당한 간격으로 배열해 두었습니다. 깊은 잠에 빠져 쿨쿨 자는 듯 누워있는 나를 향해 아버지께서는 계속 두런거리고 계셨습니다. “도수, 요 놈 새끼가 하나 빼묵어부렀고만·∙·. 에이, 또 한 줄 헐어서 채워야 허것고만.” 아버지는 곶감 아홉 개가 매달려진 꼬챙이가 나올 때마다 곶감 한 줄을 헐어서 열 개씩 채워 곶감 한 줄을 완성하고 있었습니다.
가을걷이 끝난 마을 앞 논배미마다 곶감 말리는 통나무집이 세워지고 그 안에 붉은 곶감들이 먹음직스럽게 매달려 있습니다. 논배미 곳곳에 곶감들이 매달릴 때마다 새벽녘이면 윗목에서 헛기침을 해대며 곶감을 접고 계시던 아버지의 따스한 숨소리가 듣고 싶습니다. 오일장에 나가 곶감을 팔아 떨어진 내 검정고무신과 밀린 육성회비를 마련해 주시던 아버지. “추운 겨울철 지낼라면 이런 뚜껀 잠바는 하나씩 있어야 한다”며 파란 나일론 잠바 두 벌을 사 들고 와서 형과 내게 입혀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던 초겨울 밤 아버지의 환한 미소가 너무도 보고 싶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아직도 늦가을 새벽녘이면 먼 하늘나라에서 곶감을 접고 계시나요.”
못다 깎은 감들을 새벽녘에 일어나 다시 깎으며 “찬바람 난 게 인자 어깨가 더 시리다”며 두꺼운 윗옷을 걸치며 곶감을 깎으시던 어머니의 뒷모습이 몹시 그립습니다. “어머니, 어머니는 아직도 늦가을 새벽녘이면 그 먼 하늘나라에서 곶감을 깎고 계시나요.” 주말 오후, 가족과 함께 고향마을로 돌아가 앞산에 주렁주렁 매달린 감을 따다가 아내와 곶감 몇 줄을 깎았습니다. 싸리나무 꼬챙이 대신 굵은 실로 곶감을 꿰어서 아버지가 매달던 아래채 처마 밑에 매달았습니다.
아버지! 이제야 고백합니다. 알고 계셨겠지만 곶감 아홉 개가 매달려 한 개가 부족하던 그 곶감 꼬챙이, 쿨쿨 잠자는 척 누워있던 막둥이 자식인 제가 빼먹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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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2 오후 10:34 ⓒ 2004 Ohmynew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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