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경남도민일보'애서 퍼왔습니다.>
1.
어른들은 '친구 목소리가 어떠냐!' '무슨 놀이를 제일 좋아하느냐?' '나비를 수집하느냐?' 이렇게 말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나이가 몇이냐?' '형제가 몇이냐?' '아버지는 돈을 얼마나 버느냐?'가 바로 어른들이 묻는 말이다.
많은 이들이 좋아하고 저도 좋아하는 <어린 왕자>에 나오는 말입니다. <어린 왕자>를 쓴 쌩떽쥐뻬리가 살았던 프랑스에서는 이쯤에서 어른들 물음이 끝났나 봅니다.
우리나라에서 어른들은 친구 아버지 한 달 소득을 알고 나면 곧바로 "학교 성적은 몇 등이나 하냐?"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2.
며칠 전 우리 딸이 다니는 중학교에서 입학식을 했나 봅니다. 우리 딸 현지와 어제 밤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아빠, 참 이상해요." 했습니다.
제가 그래서 "뭐가?' 하고 받았더니 학교 소개를 교감 선생님이 하는데 "민사고에 몇 명이 들어가고 특목고에 몇 명이 들어간 우수한 학교"라 했다는 말을 했습니다.
현지는 학교 소개를 한다 했을 때 학교 상징 나무는 소나무이고 학교 꽃은 백합이며 교훈은 '착하고 참되고 아름다운 사람'인데 교가 후렴에서 되풀이 나온다 정도가 아닐까 짐작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럴 때 우리 현지가, 뱀의 독을 빌려 잠시 지구를 떠났다가 다시 지구로 돌아온 <어린 왕자>가 아닐까 의심해 봅니다.
3.
이번에 중학교 2학년이 된 현지는 자기 반에 사귀고 싶은 친구과 사귀고 싶지 않은 친구가 제각각 하나씩 있다고 했습니다.
사귀고 싶지 않은 친구는 왜 사귀고 싶지 않은지 물었습니다. 그 애는요, 현지가 말했습니다.
현지는 짜증이 확 묻어나는 얼굴 표정을 짓더니, 말이 안 통해요! 그렇게 얘기해도, 들어줄 애가 아니예요 했습니다. 저는 현지 손을 한 번 잡아줬습니다.
4.
사귀고 싶은 친구는 왜 사귀고 싶은지도 물어봤습니다. 현지는 여기서 '음' 목소리를 가다듬고 입가에 웃음을 하나 베어물고 눈을 반짝였습니다.
첫째는요, 잘 대해주신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랑 이름이 꼭 같고요, 둘째는 첫인상이 너무너무 좋았어요. 키가 그리 크지 않다는 점도 마음에 들어요.
지금은 다른 반에 갔지만, 제 친구의 친구라는 것도 좋아요. 그 친구한테 물어봤더니 '아마도 너네 반에서 가장 착한 친구'라 그랬어요.
그런데요 그 친구한테는 친구가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가까이 가기도 어렵고요, '너하고 사귀고 싶지 않아.' 그럴까봐 겁도 나요.
저는 현지 어깨를 토닥토닥했습니다. 그 친구도 현지한테 호감을 갖고 있기가 십상이야. 이를테면 명필만이 명필을 알아보는 법이거든? 현지가 다가와서 얘기해 주기를 그 친구가 은근히 바라고 있을 수도 있어.
현지는 한 번 더 눈빛을 반짝였습니다. <어린 왕자>보다 더 <어린 왕자>다운 딸이 제 곁에 있습니다.
김훤주(경남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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