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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 꼬마 난쟁이의 가슴 시린 성장기

한국작가회의/오마이뉴스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2. 1.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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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 꼬마 난쟁이의 가슴 시린 성장기
[서평] 팀 보울러의 <꼬마 난장이 미짓>
  박종국 (jongkuk600)

"신은 가장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를 가장 사랑하신단다." - <꼬마 난장이 미짓> 본문 중에서

 

나는 사춘기 아이들의 성장소설을 즐겨 읽는다. 그만큼 어렸을 때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많은 탓이다. 누구나 크든 작든 간에 사춘기 성장통을 겪기 마련이다.

 

이제는 핵심 감정을 찾아 어느 정도 삶에 완급을 조절할 만한 나이가 됐지만 여전히 그에 관심이 많다. 그동안 가슴 따뜻한 감성을 되찾고자 지독할 만큼 성장소설을 곁에 두고 읽었다. 그 흔적들을 나눠 본다.

 

톰 슐만 <죽은 시인의 사회>, 이 책은 영화로도 상영됐을 정도로 너무나 유명해서 이미 다 읽었을 것이다. 새로 온 선생님과 학생들이 펼치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 사랑에 빠진 친구 이야기다. S.E.힌턴 <아웃사이더>, 형제간의 우애와 친구와의 우애를 다뤘다. 이 책은 작가가 고등학생 때 지은 책이라 더욱 각별하게 읽혔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음향과 분노'로 노벨상을 수상한 윌리엄 포크너가 "현대문학의 최고봉"이라고까지 평가한 작품으로, 이 책은 사춘기, 성장기 때 읽고 다시 성인이 되어서도 두고두고 읽어도 좋을 책이다.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제목이 좀 그렇지만, 잔인한 이야기가 아니라 순수 성장 소설 이다. 주인공 남매 중 여동생의 관점에서 가족과 친척, 이웃 등을 바라보며 그들의 행동이 여동생에게 어떻게 미치는지, 어떻게 자라나는지를 상세히 알 수 있다.

 

커티스 시튼펠드의 <사립학교 아이들>, 아이비리그 진학을 목표로 한 명문 사립 기숙학교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 작가 충동적이지만 진지했던 사춘기에 이 책을 바친다고 적었는데, 그만치 십대들의 대담하면서 솔직한 이야기를 담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국외 배경이고 최상류층이라는 단서가 붙어서인지 우리나라에는 접목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 성장소설이다.

 

포리스트 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인디언의 세계를 어린 소년의 순수한 감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따뜻한 할아버지의 손으로 표현되는 소박하고 진실한 인디언의 삶과 위선, 탐욕으로 점철된 백인사회의 모습이 선명한 대비를 이루는 이야기다.

 

베티 스미스의 <나를 있게 한 모든 것들>, 이 책은 프랜시라는 어린아이가 미국에서 빈민가의 대명사로 알려진 브루클린이라는 빈민촌에서 자라난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이다. 수채화처럼 묘사되는 아기자기한 풍경과 마음에 와 닿는 따스한 구절들이 기억에 오래도록 남아 있는 책이다. 레이다르 옌손의 <개 같은 내 인생>도 한번쯤 읽어볼 만한 성장소설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볼 만한 성장소설

 

또, 작년 한해를 뜨겁게 달궜던 김려령의 <완득이>, 활력만점의 성장소설이다. 집은 가난하고 공부는 못해도 싸움만큼은 자신 있는 도완득. 괴짜 선생 '똥주'와 이에 대항하는 완득이와 여러 즐거운 군상들이 어우러진 스펙타클한 이야기다.

 

그리고 김혜원 <열일곱 살의 털>, 이 책은 <완득이>와는 또 다른 이야기다. ‘완득이’가 자기 생활 주변을 하나하나 들춰가며 새로운 삶을 진작시켰다면, 열일곱 살의 털의 ‘일호’는 현재 자신의 모습 속에 지난 세월의 삽화를 그려냄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공감을 갖게 한다. 격한 감정을 자극하지 않은 글인데도 고개를 끄떡이며 등장인물들과 마음이 동한다. 바로 내 이야기인 듯한 삶의 단면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 <꼬마 난장이 미짓> 표지 열다섯 살 난쟁이 소년의 삶을 그린 작품 <꼬마 난장이 미짓>. <리버보이>의 작가 팀 보울러가 10년간의 집필 끝에 펴낸 첫 소설이다.
ⓒ 다산책방
난장이

그리고 이번에 읽은 팀 보울러의 <꼬마 난장이 미짓>, 열다섯 살 꼬마 난장이의 가슴 시린 성장기다. 때문에 유년의 아픈 상처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뒤틀린 손과 발, 작은 키, 더듬거리는 말소리를 지닌 소년 ‘미짓’(미짓은 주인공 소년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난장이, 꼬마라는 뜻)은 이제 열다섯 살이 됐다. 그렇지만 여전히 아버지에게는 짐이고, 형에게도 잘라내 버리고 싶은 고통이다. 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에겐 호기심의 대상이다.

 

성장을 해야 할 때가 됐지만, 그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은 변한 게 없다. 그 절대적인 괴리감 속에서 미짓이 의지할 만한 것이라고는 ‘자신의 배를 가지고 바다로 나아가겠다.’는 꿈뿐이다. 물론 그에게는 꿈꾸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놓는 순간 추락해 버린다는 것을 알기에 그 꿈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버텨나간다.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된다. 그러나 형에게 끊임없이 학대를 받는 미짓의 고통스러운 사춘기는 좌절과 고난, 분노와 슬픔으로 점철돼 있으나, 동시에 열망과 희망, 기적과 용서라는 가장 소중한 가치들과도 연결되어 있다. 단 한순간도 평범할 수 없었던 작은 난장이 소년은, 살면서 잃는 것과 얻는 것, 포기해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게 무엇인지 점차 깨닫는다.

 

자기애를 잃고서 끊임없이 흔들렸던, 한 소년의 성장기

 

그의 아름답고도 가슴 아픈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며 아름다운 서정성과 함께 이어지는 개성 강한 인물들을 통해서 과연 인생에서 진정한 기적이란 무엇인지, 무언가를 열망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용서를 통해 구원을 이루어낸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찬찬히 곱씹을 기회를 가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미짓은 기적과 욕망의 진정한 이면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는 기이한 노인을 만난다.

 

“지금 자네들한테 필요한 건 기적이야.”

노인이 두 사람에게 눈을 부라리며 내뱉듯이 말했다.

“아니라니까요. 이제 그만하세요.”

“기적. 그게 답이라니까. 불가능한 건 없단 말이야.”

우두머리가 머리를 뒤로 젖혔다.

“불가능한 게 없다니, 그게 말이 됩니까? 어떻게 해도 안 되는 일이란 게 있는 법이라니깐.”

노인은 돌연 몸을 돌리더니 요트 쪽으로 급하게 걸어왔다.

“또 시작이군. 안 된다,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여태 기적이 안 일어났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 결국은 그렇게 된다. 하지만 처음엔 내면에서 시작하는 거야. 우선 너만의 조선소에서 기적을 만드는 거지…….”

노인은 자신의 머리를 다시 톡톡 두드렸다.

“완전하게 그려보고 완전하게 원하고 완전하게 믿어라.”

노인의 얼굴이 일순 밝아졌다.

“그런 후에 네 기적의 요트를 진수대 위에 올려놓으면 그것이 네 삶 속으로 들어올 거야.”

 

우여곡절 끝에 미짓은 기이한 노인이 남기고 간 배를 결국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러면서 그것에 신비한 힘이 서려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낀다. 작고 뒤틀린 몸 안에 갇혀 있기만 했던 그였지만, 이제는 그 배의 힘을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고 그것을 이용해 자신이 꿈꿨던 것들을 이루어내려 작정한다. 어렵고 힘들지만 혼자서 항해를 시작하여 요트경기에서 당당하게 우승을 거머쥔다. 그것을 통해서 미짓은 난생 처음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호사다마라고 할까. 미짓이 살아있음 느끼게 했던 그 힘은 그동안 은밀하게 서로를 증오하고 경멸했던 두 형제 사이를 갈라놓는 시발점이 된다. 약자의 입장에 놓여 있었던 미짓이 힘을 거머쥐자,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던 힘의 저울은 비로소 수평이 된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두 형제는 끊임없이 충돌한다. ‘엄마를 죽이고 태어난 흉측한 동생’에 대한 형의 분노와 ‘자신을 밤마다 학대했던 형’에 대한 동생의 증오는, 이제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필연의 결과일까 마는 결국 서로의 가슴에 칼을 겨누게 된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미짓은 무엇에 의지해야 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꿈의 결정체였던 힘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시한폭탄이 돼 버린다. 미짓은 힘이 없었던 때도 힘을 거머쥐었을 때에도 단 한순간도 스스로를 조절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그 고통의 순간을 거치는 동안 비로소 ‘온전히 자신이 되는 법’을 배운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스스로에 대한 사랑을 기억하며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들여다본다. 모든 것을 직시하고 다시 선택한다. 형을 용서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한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용서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책

 

<꼬마 난장이 미짓>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사랑과 용서’다. ‘온전한 자신이 되는 법’을 찾는 미짓의 가슴 저리는 선택은, 아직도 완전한 어른이 되지 못한 독자들에게 누군가를 진정으로 용서한다는 게 무엇인지 알려준다. 스스로 용서를 선택하는 순간, 상대방에게도 자신에게도 진정한 구원의 순간이 도래한다는 메시지다.

 

이것이야말로 매순간 좌절과 성장의 고비를 넘나드는 모든 성장통을 앓고 있는 ‘미짓’들에게 저자 팀 보울러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통을 다루고 있다. 미짓은 좌절과 성장의 고비를 넘나들면서도 그러고도 이 책은 속도감 있는 전개와 아름다운 서정성, 개성 강한 인물이 첫 장부터 시선을 완벽하게 사로잡고 있다. 책을 덮은 후에도 가슴 짠한 여운이 남는다.

덧붙이는 글 | * 도서명 : 꼬마 난장이 미짓
* 지은이 : 팀 보울러
* 출판사 : 다산책방
* 책가격 : 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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