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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들이여! 순수하되 순진해서는 안 된다"

한국작가회의/오마이뉴스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2. 14.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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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들이여! 순수하되 순진해서는 안 된다"
[서평] 손석춘의 <순수에게>
  박종국 (jongkuk600)

  
▲ 손석춘의 <순수에게> 표지 <순수에게>는 세상을 넓게 보지 않으며, 자신에게 익숙한 방법대로만 길들여져 살려고만 하는 10대들이 세상에 대해 고민하도록 이끄는 좋은 지적 자극제 같은 책이다
ⓒ 사계절
순수에게

손석춘. 그의 이름을 입에 담았을 때가 언제쯤이었을까? 기억이 까맣다. 그러나 그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익히 알려진 사람이다. 그는 오랫동안 언론계에 몸담으면서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우리 사회와 정치의 문제점을 짚어내고, 사회적 진실을 공론의 장으로 펼쳐내는 데 앞장서 온 비판적 진보 언론인이다.

 

그런 그가 이즈음에 신작 에세이 <순수에게>를 통해 역사적 진실과 우리 사회의 모순, 아름다운 사랑의 힘겨움 등의 우리 인생 이야기를 오직 10대들의 눈높이에서 띄우는 글을 내놓았다.

 

"대학을 졸업해 직업을 가지더라도 살아갈 집을 빌릴 목돈을 마련하기 전까지는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여도 결혼하기 어려운 사회, 자식을 대학에 보내려면 등록금만 해도 연간 1000만 원이 드는 사회, 가족 가운데 누군가 암에 걸리면 가세가 가파르게 기우는 사회, 서울 강남 아파트 값이 하루 자고 나면 1억 원씩 오르는 사회."

 

<순수에게> 저자 손석춘이 소개하는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이다. 10대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지금 대부분 10대들에게 미래는 있는 것일까? 10대들은 어렵사리 대학관문을 들어섰다 해도 청년실업과 비정규직이라는 절망을 맛보아야 하고, 결국엔 88만 원 봉급을 받으며 초호화판으로 펼쳐지는 소비 세계를 버텨나가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10대들에게 향후 삶이란 자기가 얼마나 무가치한지를 확인해나가는 과정이라고 단정한다.

 

청년들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언론인 손석춘

 

손석춘은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라는 사르트르의 말을 자주 끌어다 쓴다. 여기서 B는 Birth(탄생), D는 Death(죽음)이며, C는 Choice(선택)이다. 그는 선택의 C를 책 곳곳에서 여러 표현으로 바꾸고 있다. 즉 C는 Create(창조)이고, Candle(촛불)이기도 하다. 그런데 ‘촛불’은 저자가 이 책을 쓰도록 강한 영감을 준 단어다. 그는 광우병 소 수입 파동 때 촛불을 들었던 10대들에게서 희망을 찾는다. 그리하여 <순수에게>는 그네들이 창조적이고 올곧은 선택을 하도록 이끌기 위해 주고자 하는 메시지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순수에게>를 통하여 10대들에게 '순수함'을 지켜 나가야 한다고 권하며, 열 가지 실천적 명제를 제시하고 있다. 진보나 보수 같은 색안경에 속지 말고 언제나 진실을 추구하며, 남에게 기대지 말고 자기 발로 우뚝 서야 하고, 역사를 바로 보아야하며, 민주주의를 알고, 자아실현을 위해 창조적 노동의 길 선택해야 하며, 성과 사랑을 배워야 하고, 자기 주도적 학습을 해야 하고, 신문과 TV를 꼼꼼히 짚어보아야 하며, 정치를 좀 알아야 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어야 한다며 저자는 10대들에게 ‘순수하되 순진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하고 있다.

 

'촛불'은 저자가 이 책을 쓰도록 강한 영감을 준 단어

 

  
광우병 위험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지난해 5월 13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재협상을 촉구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 남소연
미쇠고기수입반대

이렇듯 저자는 10대들에게 조용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순수함’을 지켜 나가야 한다고 권한다. 그러나 이 실천 명제들을 설명하면서 저자는 결코 독자를 쉬운 길로 데려가지 않는다. 순수함을 지키며 사는 일은 거짓과 차별을 용인하며 사는 일이 아니기에 그렇다.

 

저자는 우리가 얼마나 쉽게 거짓을 진실로 믿는가를 뼈아픈 역사적 사실을 통해 알려주기도 하며, 외면하고 싶은 사실들도 여지없이 폭로한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들을 통해 삶과 사회를 성찰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이끌어내며, 순수함을 지켜 살아가기를 당부하고 있다.

 

과거로 회귀해 본다. 지금 10대 청소년들은 이전 세대에 비하여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현상적으로 민주주의가 정착한 시대에 태어났다. 이렇게 '세상 좋아진' 시대의 십대, 과연 잘 지내고 있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는 즉답이 곧추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나온 지 20년이 지났다. 그렇지만 현실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기성세대는 10대를 염려한다 하면서도 '조용히 학업에만 열중하라'고, '조금만 인내하라'고 속삭일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행복은 성적순이고 세상은 냉혹한 경쟁 질서를 받아들이라'며 10대를 옥죄고 있다. 기성세대는 이런 상황을 알고도 모른 척 해왔다. 대한민국 10대는 행복하게 살 권리를 저당 잡히고 사회 속에서 유배당한 외로운 세대이다.

 

현재 이 땅의 10대의 자아는 간단없이 흔들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두렵다. 그렇지만 10대는 어느 세대의 성장통과 비슷하다. 그 무엇보다 친구와의 우정이 소중하고, 때 묻지 않은 열정에 휩싸이며, 아무런 조건 없이도 누군가를 사랑할 줄 아는 순수한 나이다. 누구나 자신이 지나온 그 시절을 돌아본다면 이 말에 동감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 한국 사회는 청소년들에게 그 누구도 10대의 순수함을 지켜 나가라고 말하지 못한다. '순수하게', '정의롭게', '아름답게' 살아가는 법,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보다 단편적인 지식을 달달 외는 일이 우선이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10대의 자아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두려워

 

누구의 책임인가? 그것은 바로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기성세대가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라'고 격려하기보다 '부자 되세요'라고 말하는 데 익숙하다. '순수'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일이다. 때문에 결과만이 삶의 과제였다. 과정이야 어떻든 돈만 많이 벌면 최고요, 물질적 혜택이지만 독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 풍조가 만연했다. 남이야 어떻든 나 먼저 앞서기를 바라는 이기주의를 부추겨 왔다. 그 결과는 사회 양극화와 경제 위기, 도덕적 타락으로 나타났다.

 

이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물론 여기에는 최상위 1%의 계층은 예외다)  생존 경쟁으로 내몰려 제각기 힘겨운 인생의 싸움을 해나가야 한다. 삶의 문제와 사회의 문제에서 십대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가장 밀접한 교육의 문제에서조차 십대는 주체가 아니라 대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0교시 수업을 반대해도 10대들에게는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가 보아도 돌아온 것은 진실과 거리가 먼 무책임한 질타뿐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저자는 10대들에게 '순수'를 어떻게 지켜가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는 것일까? 저자가 던지는 문제들은 우리를 삶과 사회를 성찰하는 근본적인 물음이다. 누군가의 삶이 아니라 나 자신의 삶을 사는 일, 누군가의 생각을 나의 생각으로 믿는 대신 나의 사고를 시작하는 일, 우리 모두 지금 다시 시작해야 할 일이다.

 

사실 순수함을 잃어버린 세대들은 지금 무엇이 문제인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래서 저자가 10대에게 건네는 말들은 단지 10대에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실천 명제들은 순수함을 잃어버린 기성세대들에게도 순수한 꿈과 희망을 되살리게 할 작은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10대들에게 건네는 말, '순수한 희망을 되살리는 작은 디딤돌'

 

그러나 지금도 뭇 언론들이 알게 모르게 그릇된 판단을 10대들에게 불어넣고 있음을 볼 때, "10대는 자기 발로 우뚝 서야 한다"며 비판적으로 이야기의 물꼬를 트고 있는 <순수에게>를 10대들에게 권한다는 것은 너무 '이념적'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더구나 현 정부의 기준으로 보자면 '좌파세력(?)'의 분위기가 오롯이 풍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10대들은 너무나 순종적으로 입시공부에 파묻혀 현실사회에 대한 감수성을 잃고 있다. 또 어찌 보면 저자의 말마따나 우리 교육 현실이 10대들을 '정치적 뇌사자'로 만들고 있다.

 

그래서 <순수에게>는 세상을 넓게 보지 않으며, 자신에게 익숙한 방법대로만 길들여져 살려고만 하는 10대들이 세상에 대해 고민하도록 이끄는 좋은 지적 자극제 같은 책이다. 

 

덧붙이는 글 | * 도서명 : 순수에게 - 십대에게 말 거는 손석춘 에세이
* 지은이 : 손석춘
* 출판사 : 사계절
* 책가격 : 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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