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교수 124명이 현 정부 출범 이후 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까지의 일련의 상황을 '민주주의 후퇴' 상황으로 규정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성찰과 국정기조 전환, 이에 따른 정부여당의 국민적 화합 등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명박 정부의 '반성'을 촉구하는 지식인들의 목소리는 서울대 교수들 뿐 아니라, 향후 연세대와 중앙대 등 다른 대학들 까지 잇따라 예고되고 있어,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정부여당을 향한 비판 여론이 급속도로 확산될 전망이다.
"민주주의 어려움 빠진 현 시국에 깊은 염려"…MB 사과 등 촉구
이준호 생명과학부 교수와 김명환 영문과 교수 등 서울대 교수 124명은 3일 오전 교내 신양인문학술정보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한 이후 5년 만에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지난 수십 년간 온갖 희생을 치러가며 이루어낸 민주주의가 어려움에 빠진 현 시국에 대해 우리들은 깊이 염려하고 있다"며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는 국민적 화합을 위해 민주주의의 큰 틀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 서울대 교수들은 3일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 등을 촉구하는 124명 명의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 CBS노컷뉴스 | |
이들은 지난해 촛불집회를 시작으로 정부여당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 언론관계법, 촛불재판 개입논란을 불러온 '신영철 사태', '4대강 살리기 사업', 올해 용산참사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상황 등을 거론한 뒤, 현 정부의 근본적인 자기 성찰을 주문했다.
구체적으로 교수들은 현 정부 출범 이후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이 훼손됐다고 지적, "주요 방송사가 바람직하지 못한 갈등을 겪는가 하면, 국회에서 폭력사태까지 초래한 미디어 관련 법안들은 원만한 민주적 논의절차를 거쳤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문제는 정치노선의 차이나 이념의 대립이 아니라 기본적인 인권 존중과 민주적 원칙의 실천"이라며 "모든 국민의 삶을 넉넉히 포용하는 열린 정치를 구현하는 정부의 노력이 참으로 절실한 시점"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특히 교수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해 이른바 '검찰 책임론'을 제기했다. 이들은 "안타깝게도 전직 대통령과 관련한 검찰의 수사 과정 또한 이전 정권에 대한 정치보복의 의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고 잘라 말했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소환조사까지 마친 뒤, 3주가 지나도록 사건 처리 방침을 명확히 밝히지 못했으며, 추가 비리 의혹을 언론에 공개해 노 전 대통령 자신과 유족들에게 인격적 모독을 가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통령과 현 정부가 전직 대통령에 대한 범국민적 애도 속에 주어진 국민적 화해의 소중한 기회를 잘 살리고 국민의 뜻에 부응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교수들은 △표현·집회·언론의 자유 보장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이 대통령 사과 및 검찰 수사의 근본적 개선, △용산참사 피해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등 소외계층에 대한 기본권 보장 등을 현 정부에 촉구했다.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과 현 집권층이 국민 모두의 가슴에서 타오르고 있는 민주적 요구에 대해 진지하고 성의있게 대응함으로써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국민적 화합과 연대를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의 큰 길로 나아가는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교수들의 대표성 갖고 있어"
이날 시국선언문에 이름을 올린 서울대 교수들은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정국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지난주 월요일 부터 선언문 발표에 대한 논의에 착수했다.
이과정에서 100여명 이상의 교수들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민주주의가 훼손됐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했으며, 2일 저녁 최종 선언문이 완성된 뒤, 기자회견 직전인 이날 오전 9시 경 124명의 교수 명단이 확정됐다.
이준호 교수는 "최근에 민주화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균형을 잡지 못하는 쪽으로 빠지는 게 아닌가,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것 같은 느낌 때문에 균형을 잡는다는 생각으로 나서지 않을 수 없다는 공감대가 (교수들 사이에서) 형성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번 발표가 서울대 교수들의 대표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 "이명박 정부 15개월 동안 민주주의가 후퇴됐다. 국정 전반이 국민들 반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며 "(시국선언문에 담긴 내용은) 학내 의견이라고 봐도 된다"고 말했다.
▲ 지난해 촛불정국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의 '소통부재'를 단적으로 보여준 이른바 '명박산성'. ©CBS노컷뉴스 | |
김명환 교수 역시 이날 오전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 "정부가 스스로 자기 쇄신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며 "고인의 국민장을 계기로 어렵게 주어진 범국민적인 화해와 화합, 소통의 기회를 정부가 살려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특히 김 교수는 용산참사와 '4대강 살리기' 사업을 거론, "너무 일방적인 국정운영이 심해지고 있다"며 "전체적인 국정운영의 방향을 일단 바꾸어야 된다"고 촉구했다. 연대-중앙대 등도 잇따라 선언문 발표, MB정부에 부담될 듯
서울대 교수들을 중심으로 한 지식인들의 비판적 성토는 다른 대학들로 까지 확산되는 양상이다. 중앙대 교수 50여 명도 이날 오후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등을 촉구할 예정이다.
이밖에 연세대 교수들도 국정기조 전환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키로 했으며, '서거 정국' 당시 비판적 목소리가 정점에 이르고 있는 경찰의 집회 시위 원천봉쇄, 이에 따른 민주주의 후퇴 등을 거론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날 서울대 교수들의 기자회견에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회견 장소 안으로 들어와 시국선언문 발표에 항의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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