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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욱 단편동화 할아버지를 살린 강아지 삐삐

한국작가회의/문학행사공모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6. 1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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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욱 단편동화 할아버지를 살린 강아지 삐삐

나른한 토요일 오후, 태경이네 집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어이구, 어서 오세요.”
엄마는 반갑게 이모할머니를 맞았습니다.
“그래, 잘 있었냐?”
이모할머니는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더니 소파에 앉으셨습니다. 모처럼 멀리 전주에서 서울까지 올라오신 것입니다.

그때 갑자기 강아지 삐삐가 이모할머니를 보고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크르르!”
“삐삐야, 조용히 해. 이모할머니야.”
태경이가 쓰다듬자 삐삐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품에서 빠져나가기만 하면 또 할머니 곁을 비틀비틀 맴돌면서 냄새를 맡고 안절부절못했습니다.
“이상하네. 얘가 이렇게 사람보고 짖지 않는데?”
엄마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모할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늙은이가 와서 싫은 모양이다.”
삐삐는 계속 이상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것은 할머니를 물겠다는 것도 아니고, 할머니와 싸우겠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모할머니는 암 환자셨습니다. 얼마 전에 몸에서 암 덩어리를 떼어 내는 수술을 하고 지금 치료를 받는데 잘 낫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태경이는 할머니가 암 환자라니까 무서웠지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할머니, 암 걸리면 아파요?”
“그럼, 아프지.”
“근데 암은 걸리면 다 죽는다던데 나을 수 있어요?”
“요즘은 수술하고 치료를 받으면 나을 수 있단다.”
이모할머니는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그러고는 맛있는 음식도 입에 대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그날 오후 삼촌네 집으로 가셨습니다.
삼촌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이모할머니가 떠나시자 태경이는 삐삐를 야단쳤습니다.
“삐삐야, 너 왜 그러니? 왜 이상하게 안 하던 짓을 해?”
삐삐는 잘못했다고 야단맞는 줄도 모르고 태경이에게 꼬리를 쳤습니다.

태경이네 집에 삐삐가 온 건 약 서너 달 전입니다. 길거리에 내버려져 떨고 있는 한쪽 다리 못 쓰는 강아지를 동정심 많은 태경이가 차마 지나치지 못해 데리고 온 거였습니다.
엄마는 새카맣고 지저분한 삐삐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못쓰는 한쪽 다리를 보고는 차마 내다버리라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태경이네 할아버지가 장애인이셨기 때문입니다.
“깨끗이 씻겨서 잘 길러 봐.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태경이는 삐삐를 씻기고 잘 돌봐 주었습니다. 우유와 죽을 먹이자 삐삐는 이내 기운을 차렸고 예쁜 강아지로 거듭났습니다. 금세 태경이네 가족이 된 삐삐는 머리가 좋았습니다. 집에 온 손님에게는 절대 짖지 않았으니까요.
“참, 할아버지 오셨을 때도 삐삐가 으르렁거렸잖아요? 그때도 이상했어요.”

태경이 할아버지는 어린 시절에 걸린 소아마비로 장애인이 되셨다고 합니다. 비록 한쪽 다리를 저는 불편한 몸이었지만 할아버지는 늘 적극적이고 모든 일에 열심인 분이셨습니다. 그런 할아버지를 보고 삐삐가 이상한 행동을 보인 게 한 달 전이었습니다. 이번에 이모할머니가 오셨을 때도 비슷했습니다.  
저녁 때 아빠는 태경이와 이야기를 나누다 삐삐가 이상하게 행동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빠, 삐삐가 왜 그랬을까요? 개에 대해서 잘 아시니까 알려 주세요.”
“특별한 재능이 있는 개들이 있긴 한데…. 할아버지하고 이모할머니가 늙으셔서 그런가? 노인 냄새가 나서.”
“아니에요, 동네 할아버지나 할머니한테는 안 그래요. 전에 공원에 갔을 때 할아버지들 보고도 아무렇지 않았어요.”
“그래? 그러면 왜 그랬을까? 이모님은 암 때문에 몸도 안 좋으신데.”

아빠는 곰곰이 뭔가를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태경이가 말했습니다.
“아빠, 혹시 삐삐가 암 냄새를 맡은 건 아닐까요?”
“뭐? 암 냄새?”
“네. 개는 코가 사람보다 10만 배나 발달했다고 하잖아요.”
“그런가? 인터넷으로 한번 찾아볼까?”

아빠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인터넷을 뒤지다 깜짝 놀랐습니다.
“태경아, 정말 있다. 암 탐지견.”
인터넷을 보니 건강한 사람과 암 환자의 숨 냄새가 다르다는 거였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런 차이를 알아차리는 개가 유명하다고 합니다. 미국의 어떤 병원에서는 개들이 암 냄새를 구별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서 큰 효과를 본다고도 했습니다.
“이모할머니가 암 환자셔서 그랬나 봐요. 그래도 할아버지는 건강하신데 왜 짖은 걸까요?”

아빠는 재빨리 할아버지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였습니다. 병원에 가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아 본 결과 할아버지가 폐암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일찍 발견한 게 천만다행이라며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암 검사를 받으시라고 아버님께 말씀하셨죠?”
“우리 집에 개 한 마리가 있는데 암 환자인 이모님께 이상하게 짖더라고요. 우리 아버님께도 똑같은 행동을 하기에 혹시나 해서 모셔 온 거예요.”

삐삐는 온 집안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태경이는 자기가 주워 온 삐삐가 이렇게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기뻤습니다.
“삐삐야, 고마워. 할아버지를 네가 살렸어. 앞으로 우리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자.”
태경이가 꼭 끌어안자 삐삐는 답답하다는 듯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날 이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암이 있나 없나 알아봐 달라는 통에 삐삐와 태경이는 도망을 다녀야 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글 고정욱

- 《아이찬》2009년 6월호

출처 : 인터넷 좋은생각 사람들


퍼온 곳 : 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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