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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기도_이해선

박종국에세이/단소리쓴소리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6. 2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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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에세이 / 이달의 에세이
[ 월간에세이 ] 2009년 6월호
사람들의 공간 chapter1 / 이해선, 칼럼니스트
어떤 기도

 히말라야 잔스카르 지방을 여행하던 중 나는 한 여행자를 만났다. 서로의 여행담을 주고받다 그가 문득 신비스런 ‘푹탈곰파’ 이야기를 했다. 잔스카르 파둠이라는 곳에서 일주일쯤 걸어서 히말라야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면 가파른 벼랑 동굴 아가리에 마치 제비집처럼 사원이 붙어 있다고 했다. 그곳에 잠시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한 생 동안 누적된 마음의 상처가 치유된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레 시내에서 한 노승을 만났다. 놀랍게도 그는 푹탈곰파에서 왔다고 했다. 히말라야 깊은 골짜기 동굴 속에 있다는 전설 속의 사원, 머무르는 것만으로 마음의 상처가 치유된다는 그 사원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티베트의 신화 속에 그려진 현자들의 사원을 상상했다. 그러나 그는 보통 라다크 사원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노승이었다. 그는 일을 보고 며칠 후 그곳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나는 그곳을 방문해도 되겠느냐고 조심스럽고 정중하게 물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함께 가자고 했다. 그렇게 동굴사원에서 나는 여름 한 철을 보내게 되었다.

(......)

동굴 사원 중심에는 불탑이 있다. 그 불탑을 돌며 기도를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며 어린 라마승 남걀이 기도를 한다. 여덟 살짜리 저 아이의 고사리 손으로 올리는 기도는 무엇일까? 소년의 기도가 끝난 후 나는 그에게 물었다. 무슨 소원을 빌었냐고? 소년은 머뭇거리다 손가락으로 내 카메라 가방을 가리켰다.
“저도 이런 가방을 갖게 해 달라고 부처님께 빌었어요.” 나는 소년을 꼭 껴안아 주었다. 그리고 탑을 돌 때 비는 내 소원이 바뀌어졌다.
“신이시여 저 아이들 책가방을 갖게 해 주세요.”

(......)

불탑을 돌며 가방을 갖게 해 달라고 기도하던 막내 남걀. 가방을 갖게 해 달라던 남걀의 기도가 이루어진 것일까. 그곳에 가방을 보내주시겠다는 후원자가 나타났다. 소년의 기도를 들어 주신 분은 동굴 사원의 신이 아닌 가방을 만들어 이태리로 수출하시는 지인이셨다. 가방이 내가 그곳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보내졌다. 히말라야 산맥에 눈이 녹는 여름쯤이면 사원으로 가는 길이 열리고, 아이들의 가방은 일주일 동안 말에 실려 사원으로 향할 것이다. 가방과 사진을 받고 좋아할 어린 아이들 생각에 절로 입가에 미소가 스친다. 그곳에 잠시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상처가 치유된다던 말뜻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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